정선전씨 고려 개국 공신 충열공 전이갑 장군 이야기

2008. 5. 10. 08:08 인물열전

 

16세.     통합삼한개국공신  충열공  

                (統合三韓開國功臣 忠烈公)       

            전이갑(全以甲)  

 

  고려시대에 통합삼한개국공신(統合三韓開國功臣) 입니다.

부인은 한국부인(韓國夫人) 기씨(箕氏)이시다.

묘소는 경기도 장서군에 있습니다.

  왕 건 드라마에도 나옵니다.

 

 고려개국 삼충공(三忠公)인 전이갑(全以甲), 전락(全樂)등 3형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후삼국 통일의 야망을 키우던 왕건이 팔공산 오동숲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와 일대 접전을 벌이다 적에게 포위를 당하자

 

  전이갑이 왕건으로 가장하여 적의 주력부대를 유인하여 왕건을 탈출시키고 3형제는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 한다.

 

  전공(全公)은 휘(諱)는 이갑(以甲)이요. 자는 자경(子經),  장호(腸號)는 도원(挑源)으로 정선사람이다.

 

  정선전씨 중시조 정선군(中始祖 旌善郡)  선(宣)의 7세손  우상(禹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公이 태어날 때 그 어머니 꿈에 푸른 옷을 입은 세 노인이 한 아이를 안 고와 주면서 『"이 아이는 장차 명예와 공(功)이 한나라에 충만하리니 잘 보호하여 키우라."』는 이야기를 하고 사라졌다.

 

 그 후 태기가 있어 公이 출생하였는데 태어날 때 온 집안에서 서기(瑞氣)가 충만하여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으며,

 

  公이 자라면서 부터는  골상이  자못 보통 사람과 달라서 燕頷鳳眼(연함봉안: 제비턱에  봉황눈)에  거북등(龜背)을 하고

 

신장이 8척이며, 힘은  강궁(强弓)을  당기고 고 지용(智勇)이  절윤(絶倫)하여  문사(文詞)에도 통달(通達)하시었다.

 

公의 동생 의갑(義甲) 또한 그 어머니가 기이한 꿈을 꾸고 낳았으며 훌륭히 자라니 그때의 사람들이 두 영웅(英雄)이라고 칭찬하였다.

 

公의 벼슬이 기랑(騎郞)이 되었을 때 왕건(高麗太祖)을 만나니  왕건(王建)이 그 임물됨을 알아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세상의 영웅(英雄) 이라  삼수(三秀)의  창생(蒼生)들이 크게  구제(救濟)하기를   기대(期待)한다〕고 하였다.

 

그후  왕건(王建)을   왕(王)으로 모시고  고려(高麗)를  세우니  무오년(戊午年)에  양주(楊洲)를 정벌하여 평정하고  경신년(庚申年)에 광청주(廣靑州)등지를 정벌하여 적을 전멸하고, 병인년(丙寅年)에 견훤을   상주(尙州) 에서 몰아 내고 그 땅을 개척하였으며  정묘년(丁卯年)에 또 견훤을  나주(羅州)에서  대파(大破)하여

 

진(陳)을 설치하고 돌아오니 그때에 태조太祖(王建)의 이름이 크게 떨치어 조정과 백성이 모두 그를 따르게 되었다.

 

  태조(太祖)3년에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므로 신라의 사신(使臣)  김율(金律)이 와서 도와줄 것을 간청하여  태조(太祖)가  公  신숭겸(申崇謙)에  명(命)하여  정기장군(精騎將軍)을 삼아 가서  구원(救媛)케하니 견훤이 그 소문을 듣고 싸우지도 않고  퇴각(退却)하였다.

 

  이때 公이 신숭겸(申崇謙)에게 이르기를 견훤이  강폭(强暴)해서 항상 변방의 우환꺼리가 되니 이 기회에 그를 전멸시킴이 좋겠다 하고 그를 끝까지 쫓아 추격하니 그의 군사는 거의 전멸하고 견훤만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쳤다.

 

  태조(太祖)8년에 公으로 하여금 태사(太師)를 삼았으며  태조(太祖)10年에 다시 견훤과  달성(達成) 팔공산 오동나무 숲에서 격전하다가 드디어 패(敗)하여 궁지에 몰리었다.

 

견훤이 포위하고 맹공을 가하므로 사태가 위급한지라  태조(太祖)와 옷을 바꾸어 입어  왕(王)을 탈출시키고 公은 동생  의갑(義甲), 사촌동생 락(樂)과 더불어 끝까지 싸우다가  견훤의 부하인 애술에게 전사하였다. 

 

  그후 태조(太祖)가 크게 슬퍼하시며, 公에게 정선군(旌善君)  봉호(封號)와  시호(諡號)를 충렬(忠烈)이라 내리시고, 公의 동생 의갑(義甲)에게는  죽산군(竹山君)  봉호(封號)와   시호(諡號)  충강(忠康)을 사촌동생 락(樂)에게는 천안군(天安君)  봉호(封號)와   시호(諡號)  충달(忠達)을 내리시고 후손(後孫)에게는 조세와 각종 국가의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이 삼충공(三忠公)의  충행(忠行)을 기리기 위하여 그 후손들이 1933年 동면 석곡 2리에 삼충사(三忠詞)라는 제당(祭堂)을 지어놓았다

또한 

 한천서원은 녹동서원으로 가는 길목인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에 있는 서원입니다.    이 서원은 고려개국공신 충렬공 전이갑과  충강공 전의갑 형제를 배향하는 서원입니다. 

 

  정사(正史)에는 이 때 왕건을 구하고 순직한 여덟 장수 가운데 장절공 신숭겸과 당악공  김락만 기록하고 있으나

 

   고려 태조때 ‘공신 전이갑, 의갑 형제는 삼한을 통합할 때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으니 현철(賢哲)을 제사하는 사당에 배향(配享)해야 마땅할 것이고 자손들에게 은덕을 입게 해야 할 일이니 적자 서자를 논할 것 없이 과거를 볼 수 있게 하고 과거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천역(賤役)에서는 면케 하라.

 

  조선시대 태조(太祖朝)에서도 고려 때의 고사(故事)에 의거해 이러한 교지(敎旨)를 해당사무처에 내렸다’라는 내용의 전교를 내려 정사가 누락한 부분을 공인했으니 전이갑, 의갑 형제분의 공적에 대해서는 이론(異論) 이 있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전문(全門)과 유림에서는 옛날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를 가르쳤던 행단(杏壇)의 유래를 본받아 조선조 현종 4년(1838), 이곳에 충렬공(以甲), 충강공(義甲)을 기리는 한천서원(寒泉書院)을 세웠다.

 

매년 4월5일과 9월15일에는 전국에서 500여명의 정선전씨 후손들이 한천서원에서 춘, 추계 향사를 올리며 충렬공(以甲), 충강공(義甲)의 충의를 기리고 있다.

 

  특히 전두환 전대통령이 정선 전씨(旌善全氏)의 도시조 전 섭의 52대손으로 매년 춘계와 추계 향사 때 참석하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89년 서원으로 복원되었습니다.

 

 한천서원 가는 길은

 

대구 신천대로 -> 가창방면으로 직진 -> 가창댐, 허브힐즈 (구 냉천 자연랜드), 스파밸리 -> 스파밸리에서 얼마 못가 좌회전 후 200미터 남짓. 이정표를 놓칠 수 있으므로 한 눈 팔지 말아야 합니다.

 

 

                대구시 충열공 순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