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3. 19:49ㆍ 인물열전
임생이 기러기를 읊은 시를 차운하다 [次林生詠雁韻]
규천 전극항
대부분 흰 마름 붉은 여뀌 핀 섬에 있으며
날아오고 날아가느라 얼마나 쉬는가
찬 모래밭 급한 파도에 새벽 잠결에 놀라고
오래된 변방에 하늘 높으니 먼 근심 일으키네
등불 아래 몇 줄기 소리에 장신궁의 밤은 긴데
달빛 아래 외로운 그림자는 동정호의 가을이네
위태로운 기색을 보고 절로 높이 날아오르지만
강가엔 응당 화살로 쏘려는 사람이 없는데
[原文]
多在白蘋紅蓼洲
飛來飛去幾時休
寒沙浪急驚殘夢
古塞天高起遠愁
燈下數聲長信夜
月中孤影洞庭秋
色斯自有冥冥翼
江上應無弋者謀
※ 장신궁
반 첩여(班 婕妤)는 한 성제(漢 成帝)의 후궁 중에 재색(才色)이 뛰어났던 여인으로, 한때는 성제의 총애을 독차지했다가 뒤에 조비연(趙飛燕)으로 인해 총애를 잃고는 스스로 장신궁(長信宮)의 태후(太后)를 봉양하겠다는 이유로 천자(天子)의 곁을 떠나 동궁(東宮)으로 물러가 거처하면서, 자신을 깁부채(紈扇)에 비유하여 〈원가행(怨歌行)〉을 지었다.
[출처] 충간공 사서 전식 종가 유물 탐구
[ 옥천전씨 판서공파 노동종중 (沃川全氏 判書公派 魯洞宗中) ]
@ 전극항 [ 全克恒 ]
호/ 규천(虯川)
생몰년도/ 1590년(선조 24) ~ 1636년(인조 14)
출생지/ 경북 상주(尙州)
본관/ 옥천전씨(沃川全氏) 판서공파(判書公派)
충간공 사서 전식(全湜)의 맏아들, 조선 시대 예문관검열,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 백빈 (白蘋)
흰 마름꽃.
@ 紅蓼 (홍료)
붉은빛을 띤 여뀌
@ 동정호[ 洞庭湖 ]
호남성[湖南省] 북부, 장강[長江] 남쪽에 위치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 동정호는 산천이 아름답고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여 예부터 '동정호는 천하제일의 호수이다'라는 칭송을 들었음.
[네이버 지식백과] 동정호 [洞庭湖]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 冥冥之中 (명명지중)
듣거나 볼 수 없이 은연(隱然) 중(中)에 느껴지는 가운데.
@ 弋者(익자)
새를 잡는 사람
주살을 가진 사람
@ 한성제 [ 漢成帝 ]
출생 – 사망/BC 52년 ~ BC 7년
유오(劉驁). 전한의 제11대 황제. 자는 태손(太孫)이다. 원제(元帝)의 맏아들이다. 즉위한 뒤 주색(酒色)에 빠져 가희(歌姬) 조비연(趙飛燕)을 총애하고 황후로 삼았다. 또 조비연의 언니는 소의(昭儀)로 삼았다. 외척 왕씨(王氏)들이 정권을 잡아 외할아버지 왕봉(王鳳)과 왕숭(王崇), 왕상(王商), 왕근(王根) 및 외삼촌 왕망(王莽) 등이 모두 봉후(封侯)되어 고위직에 올랐다. 정치는 부패하고 백성들은 떠돌아다녀 이로 인해 민중들의 항쟁이 야기되었다. 27년 동안 재위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성제 [漢成帝]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임종욱, 김해명)
@ 婕妤(첩여)
한대(漢代) 궁녀의 관명. [비빈의 칭호] (=倢伃, 婕母)
@ 반첩여[ 班婕妤 , Bān Jiéyú ]
① 한 성제의 후궁
누번(樓煩,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일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성은 반(班) 이고 이름은 분명치 않다. 한 성제(漢成帝)의 후궁이어서 반첩여라고 부르는데, 첩여는 후궁 중에서 품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상경에 해당하는 궁중 여성들의 관직 이름이다. 부친 반황(班況)은 한 무제 때 흉노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공신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색을 겸비하여 시와 문장을 잘했고 책도 무척 많이 읽었다. 처음에는 소사(少使)로 궁에 들어왔다가 성제의 은총을 입어 첩여가 되었다. 어질고 우아하여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했고, 성제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까지 낳았지만 둘 다 요절했다. 이후 자태가 남다르고 노래와 춤에 능한 조비연 자매가 궁에 들어오면서 황제의 총애가 식기 시작했다.
조비연 자매에 빠진 성제는 교지를 내려 조비연을 ‘소의(昭儀)’로, 조합덕은 ‘첩여’로 봉했다. 소의는 황후에 버금가는 지위였다. 그러나 조씨 자매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다. 특히 조비연은 오래전부터 황후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온갖 궁리를 해서 허황후와 반첩여 등을 내쫓고자 했다.
② 궁중 암투 속 현명한 처신
성제 홍가(鴻嘉) 3년인 기원전 18년 반첩여는 조비연 자매를 둘러싼 궁중 암투 때문에 자신이 모함에 빠져 해를 입을까 걱정하여 스스로 장신궁(長信宮)으로 물러나 왕태후(원제의 황후이자 성제의 모후)를 모시며 지냈다.
당시 성제는 조비연 자매의 모함을 믿고 반첩여를 내치려 했는데 그녀는 차분하게 이 상황에 대처했고, 성제도 이러한 그녀의 처신에 감복하여 특별히 상까지 내렸다. 그 후로도 반첩여는 궁중 암투에 얽힐 수밖에 없었으나 그때마다 냉철한 판단력과 처신으로 암투를 피해갔다.
성제가 미앙궁(未央宮)에서 죽자 반첩여는 성제의 무덤을 지키며 평생 살게 해달라고 했다. 이에 왕태후는 반첩여에게 능원을 지키는 직무를 주었다. 결국 반첩여는 무덤을 수호하는 돌로 된 사람과 말을 벗 삼아 외롭고 쓸쓸한 만년을 보냈다. 이렇게 하길 약 1년 후 반첩여도 성제를 따라 세상을 떠났고, 성제와 함께 안장되었다.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 그녀의 전기(傳記)가 있다. 그녀는 『한서』를 편찬한 반고의 동생이자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사학자 반소와 역시 반고의 동생으로 서역을 개척한 반초의 고모할머니이다.
③ 작품
재녀(才女)였던 반첩여는 중국문학사상 사부(辭賦, 중국 고전시가의 하나)에 조예가 깊었고, 시부(詩賦)에도 능했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전하지 않지만, 현존하는 작품으로 <자도부(自悼賦)>, <자상부(自傷賦)>, <도소부(搗素賦)>, <원가행(怨歌行)>이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원가행>은 ‘원망의 노래’라는 뜻으로, 한때 사랑을 받았던 부채가 가을이 되니 버려진다는 내용이다. 이 시에 나오는 ‘추풍선(秋風扇)’이라는 말은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나 총애를 잃은 여자의 비유로 많이 쓰인다.
④ 관련 유적
반첩여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무덤이 남아 있다. 산시성(陝西省) 셴양시(咸陽市)에 있는 성제의 무덤인 연릉(延陵)에서 동북쪽으로 약 600미터 떨어진 곳이다. 현지 사람들은 이 무덤을 ‘수녀분(愁女墳)’ 또는 ‘낭랑묘(娘娘墓)’라 부른다. 이 무덤의 동쪽으로 7좌의 배장묘(陪葬墓, 가족이나 신하의 무덤)들이 늘어서 있다.
참고문헌
『한서(漢書)』 권(卷)97(下) 「외척전(外戚傳)」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반첩여 [班婕妤, Bān Jiéyú] (중국인물사전)
@ 조비연 [ 趙飛燕 ]
한(漢)나라 성황제(漢成帝)의 부인이며 효성황후(孝成皇后)가 되었다. 고대 중국 한나라를 대표하는 미인상으로 일컬어지지만 악행과 문란한 행위로 오점을 남겼다.
성양후(成陽候) 조임(趙臨)의 딸이며 원래 미천한 신분이었다. 한(漢)나라 성황제(漢成帝)의 첩(婕)으로 들어갔다가 용모가 뛰어나고 춤과 노래를 잘해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성황제의 부인으로 효성황후(孝成皇后)까지 올랐다. 본명은 조의주(趙宜主) 였으나 "날으는 제비"라는 뜻의 별명 조비연(趙飛燕)으로 불리었다. 갸날픈 몸매와 뛰어난 가무(歌舞)는 당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일화에 의하면 황제가 호수에서 베푼 선상연(船上宴)에서 춤을 추던 도중 강풍이 불어 갸냘픈 몸이 바람에 날리자, 황제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 물에 빠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비연은 그 상황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고 임금의 손바닥위에서 춤을 추었다하여 "물 찬 제비 또는 날으는 제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때 임금이 조비연이 물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발목을 급히 붙잡다가 치마폭의 한쪽이 길게 찢어지게 되었는데 이렇게 찢어진 치마는 오늘날 중국 여인들의 전통 의상인 유선군(留仙裙)의 유래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자식을 낳지 못해 궁녀들에 대한 횡포가 심했는데 자식을 낳은 궁인들을 모두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고 스스로는 성적으로 문란하여 궁중에서 온갖 음탕한 짓을 일삼았다. 조비연은 황제가 살아있는 10년간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다가, 황제가 죽자 탄핵되어 서인(庶人)으로 전락하였고 이후 걸식으로 연명하다가 자살하였다. 이후 조비연의 미모를 두고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로 상징되었고 당나라 때 현종 비로 아방궁에서 호사스러운 사치를 누렸던 양귀비는 풍만한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지지만 모두 생의 마지막을 불행하게 마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비연 [趙飛燕] (두산백과)
@ 장신궁 (長信宮)
중국 한(漢)나라 때 장락궁 안에 있던 궁전. 주로 태후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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