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5마리를 잡아 가선대부에 오르다 [ 전후장( 全厚章) ]

2022. 11. 28. 22:15 인물열전

전후장 [ 全厚章 ]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울산광역시 동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출처

디지털울산문화대전-전후장

 

정의

조선 후기 울산목장의 산행장.

 

가계

본관은 옥산(玉山)[경산]. 자는 군장(君章). 부인은 정충 김광려(金光麗)의 딸이다. 아들은 전성택(全性澤)이며, 딸은 박만일(朴萬逸)에게 시집갔다.

 

활동 사항

전후장(全厚章)[1705~1772]은 산행장(山行將)이다. 산행장은 목장에 소속된 호랑이 전문 사냥꾼이다. 울산목장에는 두 명의 산행장이 소속되어 있었다. 산행장은 호랑이나 표범이 목장 안에 들어오면, 호랑이 발자국을 찾는 심종군(尋踪軍)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목장 안의 군정(軍丁)과 포수(砲手)를 동원하여 창군(槍軍)과 함께 부대를 만들어 사냥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1746년(영조 22)에 사복시에서 아뢰기를, “호랑이가 울산목장에 들어와 말 8마리를 잡아먹었는데, 감목관(監牧官)이 포수를 이끌고 호랑이를 찾아 둘러싸고, 산행장 전후장이 앞으로 나가 먼저 총을 쏘아 맞혀 모두 다섯 마리를 잡았으니 감목관 이인석(李仁錫)과 산행장을 논상해야 한다” 하니, 국왕이 이를 윤허하였다. 이리하여 전후장은 절충장군에 올랐다. 전후장은 1757년(영조 33)에도 호랑이를 포획하여 가선대부에 올랐다.

 

묘소

울산광역시 동구 마골산에 전후장의 묘소와 비석이 있다.

 

상훈과 추모

울산광역시 동구 남목 불당골에 전후장의 공적을 기리는 착호비가 남아 있다. 착호비(捉虎碑)는 2003년에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울산목장목지(蔚山牧場牧誌)』

「전후장묘비(全厚章墓碑)」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제공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로고 http://www.aks.ac.kr

[네이버 지식백과] 전후장 [全厚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착호비 후면

 

 

 

 

전후장(全厚章)

 

영조 22년 1746년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은 공로를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이 절충장군(折衝將軍)을 제수하라고 명하였다.

영조 33년 1757년 호랑이를 잡은 공로를 임금에게 아뢰니 가선대부 행 용양위부호군을 제수하라고 명하였다.

(以捉虎五頭之功因覆啓判下折衝將軍 以捉虎之功又因覆啓判下嘉善大夫行龍驤衛副護軍)

 

[출처] 玉山(慶山)全氏 大同譜 卷之一 兵判公派

 

[자료제공]  전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