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용동재사중수기[龍洞齋舍重修記
용동재사중수기[龍洞齋舍重修記]주1)
전구(全球 1724-1806)주2)
칠성산(七星山)의 남쪽 줄기가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언덕을 이루고 또 몇 리를 뻗었는데 우리9대조 이하 2대의 옷과 신발을 묻은 곳이다. 또 한 줄기가 남쪽으로 달려 언덕의 안산(案山)이 되니 손으로 만질 듯하다. 언덕을 등지고 안산주3)을 향하여 그 가운데 재사(齋舍)가 있으니 실로 봄가을로 일가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올리는 장소이다.
[七星山南榦。西迤而爲垞。又數里而爲我九代祖以下二世衣履之藏。又一榦南。走爲垞之案。 以手可摩。背垞面案。中有齋舍。實維春秋會宗人 供粢盛之所也。]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재사는 곧 지지(地誌)에서 이른바 봉사(烽寺)라고 하였다. 선대에 생원공(生員公)주4)이 매입하여 재사를 삼았는데 그러나 고찰할 만한 글이 없이 보낸 해가 이미 오래되었다. 집이 기울고 비틀어지며 물이 스미고 새어 여러 차례 수리하고 지붕을 이어왔는데 갑오년(1774)에 일가 어른 두세 분이 개탄하면서 거듭 보수할 계책을 내었다.
이 해 1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봄이 끝나기 전에 공사가 이루어졌다. 이때는 곧 일가 안의 몇 분 어르신 및 우리 할아버님께서 실로 일을 담당하고 감독하셨으니 묵한공(墨漢公)주5)의 소기(小記)를 보면 알 수 있다.
[或云。是舍也。卽地誌所謂烽寺。而先世生員公。買以爲齋舍。然而無文可攷。第歷年旣久。傾歪滲漏。 屢經修葺。而歲甲午。宗長二三公。慨然以重補經紀。是年元月始役。春未盡而功就。時則宗中數長老曁我王考。 實掌董役焉。觀於墨漢公小記。可知矣。]
아! 거의 이제야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힘이었던가? 이로부터 세월이 많이 지난다면 보수하고 지붕을 잇는 일도 또한 앞 사람을 이어 조금도 늦출 수 없음이 마땅하도다!
올 봄에 종손 전중술(全重術)과 일가 전치정(全致貞)이 아울러 그 일을 돈독히 하여 여러 일가에게 두루 고하여 수레를 이어 일에 나아가도록 하였다. 혹은 몸소 삼태기와 가래를 만들기도 하고,그 혹은 부리는 사람을 보내오고, 혹은 품팔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이 대저 다섯 달 만에 이루어지니 아! 또한 고생스러웠다. 썩은 서까래는 바꾸었고 기운 기둥은 바로잡았고, 기와를 고쳐 다스렸다. 이에 주방과 다락이 옛 모습대로 새로워졌다. 모여 재계할 곳이 비좁아 또 대청 하나를 열어 온돌을 놓고 또 동쪽으로 대청을 내었으니 이것이 규모를 더한 바이다. 대개 5개월이 지나 공사를 마치었다.
[鳴乎。汔今免於上雨旁風。是誰之力也。自是。歲月又多。則補葺之役。亦宜踵前人而不可少緩矣。今春。宗孫重述宗人致貞。幷敦其事。遍告諸宗。俾鱗輪而赴役。或躬造簣鍤。 厥或送隸。有或雇傭。役凡五周。吁亦艱矣。椽桶之朽者易之。柱棟之傾者正之。改庀瓦焉。於是乎。廚房焉。樓室焉。 仍舊制而新之。會齋之所挾。又闢一廳而炕之。又東而廳之 是則 所增也。蓋五閱月而功告訖。]
아! 우리 일가가 쇠하고 침체됨이 심하도다. 봉록의 영화는 오래 끊기었고 본래 봉(封)해 받은 것이 넉넉했는데 또 부족해졌다. 고을 안에 흩어져 사는 약간의 사람들이 조그마한 것으로써 모아오고, 손과 발을 놀려 일하여 옛 것을 수리하여 새롭게 하며 그 무너진 것을 정돈하여 우뚝 드러난 것이 여러 일가의 부지런하고 수고함과 종손의 어질고 애씀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러니 대저 우리 일가 자손들이 진실로 마땅히 우리 조상으로써 우리 부모의 마음과 같이하여 마음으로 삼았으니, 이 집에 오르게 되면 선배의 유적은 곧 긍당(肯堂)의 도리에서 또 누군들 슬퍼하면서 서로 경계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또 예량위(兒郞偉)주6)로 상량문을 기록함이 있다면 오늘부터 이 뒤로 비록 수백 년 오래 가더라도 또 상고할 만한 문자가 없음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리라! 올해의 겨울에 모두 모여 낙성하고 그 전말을 위와 같이 적는다.
주상(정조) 10년 병오년(1786) 10월 하순에 후손인 진사(進士) 전구(全球)가 삼가 쓰다.
[噫。吾宗之衰替甚矣。俸祿之榮久絶。素封之饒又乏。如干散居於郡中者。錙銖而鳩聚。手足而拮据。葺其舊而維新。整其頽而突亢者。莫非諸宗之勤苦。宗孫之賢勞。則凡我諸宗之子孫。固當以乃祖若乃父之心爲心。而登斯閣也。先軰遺跡。則其於肯搆之道。又孰無惕焉相戒之心哉。又有兒郞偉而記之 則從今以往 雖屢百年之久 亦不患無文之可攷矣 是歲 冬。咸聚而落之。書其顚末如右云。]
上之十年丙午陽月下澣 後孫進士球謹書
주1)용동재사중수기 : 전구(全球)의 『반암집(半巖集)』에는 제목이 『용동재사중건기(龍洞齋舍重建記)』로 되어 있다.
주2)전구(全球 1724-1806) :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사정(士正), 호는 반암(半巖)이다. 시서화에 모두 능하였다. 저서로 『반암집』이 있다.
인 명 | 자 | 호 | 생몰년 | 본 관 | 합 격 등 급 | 비고 |
|
|
주3)안산(案山) : 풍수설(風水說)에서,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 여러 산이 거듭하여 있을 때에는 내안산과 외안산으로 구별한다.
주4)생원공(生員公) : 전희철(全希哲 1425-1521).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원명(原明), 호는 휴계(休溪).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낙향하여 절개를 지켰다.
주5)묵한공(墨漢公) : 전창문(全昌文). 본관은 옥천(沃川). 호는 반암(半巖). 긍당(肯堂) : 긍구긍당(肯構肯堂)의 준말로, 자손이 선대의 유업을 잘 계승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고가(古家)를 자손들이 중수(重修)한 것을 가리킨다.
주6)예량위(兒郞偉) : 젊은 사람을 뜻하는 아랑(兒郞)의 복수형으로, 상량문에서 도목수(都木手)가 장인(匠人)들을 싸잡아 부를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原文]
龍洞齋舍重修記
七星山南榦。西迤而爲垞。又數里而爲我九代祖以下二世衣履之藏。又一榦南。走爲垞之案。 以手可摩。背垞面案。中有齋舍。實維春秋會宗人 供粢盛之所也。或云。是舍也。卽地誌所謂烽寺。而先世生員公。買以爲齋舍。然而無文可攷。第歷年旣久。傾歪滲漏。 屢經修葺。而歲甲午。宗長二三公。慨然以重補經紀。是年元月始役。春未盡而功就。時則宗中數長老曁我王考。實掌董役焉。觀於墨漢公小記。可知矣。鳴乎。汔今免於上雨旁風。是誰之力也。自是。歲月又多。則補葺之役。亦宜踵前人而不可少緩矣。今春。宗孫重述宗人致貞。幷敦其事。遍告諸宗。俾鱗輪而赴役。或躬造簣鍤。 厥或送隸。有或雇傭。役凡五周。吁亦艱矣。椽桶之朽者易之。柱棟之傾者正之。改庀瓦焉。於是乎。廚房焉。樓室焉。 仍舊制而新之。會齋之所挾。又闢一廳而炕之。又東而廳之 是則 所增也。蓋五閱月而功告訖。噫。吾宗之衰替甚矣。俸祿之榮久絶。素封之饒又乏。如干散居於郡中者。錙銖而鳩聚。手足而拮据。葺其舊而維新。整其頽而突亢者。莫非諸宗之勤苦。宗孫之賢勞。則凡我諸宗之子孫。固當以乃祖若乃父之心爲心。而登斯閣也。先軰遺跡。則其於肯搆之道。又孰無惕焉相戒之心哉。又有兒郞偉而記之 則從今以往 雖屢百年之久 亦不患無文之可攷矣 是歲 冬。咸聚而落之。書其顚末如右云。
上之十年丙午陽月下澣 後孫進士球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