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때 광화문 모습 그대로
일제가 뒤튼 역사 바로잡다
목조 광화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전쟁 때 불탄 뒤 반세기가 훨씬 지나서다. 1968년 중건(重建) 때 콘트리트로 지었던 누각이 매끈한 금강송 목재로 뼈대를 갈아입었다. 일제 조선총독부 청사에 맞춰 비뚤어졌던 중심축과 위치도 바로잡았다. 가림막이 걷히면 경복궁의 늠름한 정문으로서 세종로를 마주 보게 된다.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광화문이 27일 상량식을 치렀다. 2006년 12월 ‘경복궁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 이후 3년 남짓 만이다. 상량식은 전통 건축의 하이라이트 행사다. 광화문 복원이 클라이맥스에 오른 셈이다. 도편수 신응수(67) 대목장은 “등산으로 치면 8부 능선을 넘은 셈”이라고 말했다.
경복궁의 얼굴 광화문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7일 광화문 상량식에서 행사 관계자들이 오색 천을 잡아당겨 장여를 들어올리고 있다. 문화재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의식은 축문을 읽고 잔을 올리며 절을 하는 등 30분 남짓 진행됐다. [최승식 기자] | |
하이라이트는 처마지붕 용마루를 받칠 마룻도리를 올리는 일. 관계자들이 오색 천을 잡아당기자 도르래에 연결된 우람한 목재가 천천히 들렸다. 마룻도리 아래 놓일 장여다. 길이 8.5m, 무게 130㎏에 이르는 장여가 문루 꼭대기 한가운데 자리를 잡자 목수들이 도르래를 풀었다. 이어 목수 10여 명이 양쪽에서 마룻도리를 들어 장여 위에 얹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이날 상량식을 치른 광화문은 문루 목공사(2010년 3월)와 상·하층 지붕 공사(5월), 문루 단청 공사(8월), 가설덧집·설치미술을 철거(9월)한 뒤 2010년 10월 달라진 모습을 드러낸다. 현판은 1900년대 초 사진을 근거로 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디지털 복원기술로 원형 복원할 예정이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상량(上樑)=전통 건축에서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얹은 다음 마룻도리를 올리는 일. 술과 떡을 돌리며 목수의 노고를 치하하고 남은 공사의 안녕을 기원한다. 공사 개요·의의 등을 적은 상량문을 상량함에 봉안하고, 이를 맞춰 끼운 장여를 건물 최상단에 올린 다음 마룻도리를 얹는 절차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