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부르는 건물의 吉相

2015. 8. 22. 18:50게시판

[Why] 뾰족하거나 둥글거나 네모반듯하거나… 복을 부르는 건물의 吉相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김두규 교수 國運風水]

미즈노 남보쿠(水野南北·1754~1834)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발소에서 3년, 목욕탕 때밀이로 3년, 화장터에서 3년을 일하면서 관상을 익혀 일본의 전설적 대가가 되었다. 그가 보았던 것은 단지 얼굴뿐만 아니라 알몸 그리고 시신의 전신이었다. 걸음걸이만 봐도 그 사람의 운명을 말할 정도였다.

풍수에도 가상(家相)이란 것이 있다. 이른바 '건물 모양의 축복과 저주'이다. 관상에 길상(吉相)과 흉상(凶相)이 있듯 가상에도 길상과 흉상이 있다. 풍수 고전 양택십서(陽宅十書)는 "건물 전체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면 내부가 풍수에 맞더라도 끝내 길하지 못하다"고 책머리에서 강조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대기업의 사옥 건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이 엠 페이(I.M.Pei·貝聿銘)가 설계한 중국은행(Bank of China) 우후춘순(雨後春筍).
올해 98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아이 엠 페이(I. M. Pei·貝聿銘)가 중국은행(Bank of China)으로부터 홍콩사옥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의 일이다. 그때 그는 3가지 즉, 건축비용·지리적 위치·풍수를 고려하였다. 지리적 위치와 풍수는 비슷한 개념이므로 결국은 건축비용과 풍수 두 가지가 설계의 핵심 사항이었다.

그는 중국은행뿐만 아니라 홍콩의 번영과 중국인들의 포부를 형상화하고자 했다. 풍수를 참고한 것은 "풍수를 잘 모르지만 풍수에 어떤 이치가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설계안은 우후춘순(雨後春筍), 즉 '봄비 내린 뒤의 죽순'이었다. 중국은행뿐만 아니라 중국이 죽순 자라듯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중국은행 사옥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632m)인 상하이타워(Shanghai Tower)는 용이 승천하는 비룡상천(飛龍上天)을 형상화했다. 용의 나라 중국의 미래를 상징한 것이다. 이렇듯 대기업의 사옥은 소유주와 건축사의 철학뿐만 아니라 그 국가의 운명을 선취(先取)하곤 한다. 건축사와 오너가 가져야 할 '시대복무정신'이다.

서울에도 그러한 철학이 반영된 사옥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당시 삼성본관(동방생명빌딩)을 지을 때 제일미관(第一美觀)을 강조했다. 풍수적으로 가장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세계 제일의 기업이 되고자 함이었다. 제2롯데월드 외형이 문방사보(文房四寶, 종이·붓·벼루·먹) 가운데 으뜸인 붓을 형상화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1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1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第一美觀”의 옛 삼성본관 ‘동방생명빌딩’. 2 청송백학포란(靑松白鶴抱卵)을 형상화한 남산의 구(舊) 외교구락부(현재 숭의여대 별관).
한때 주요 정객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곳이 남산 외교구락부였다. 현재 숭의여자대학 별관이 들어서 있다. 당초 학교 별관을 설계할 때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재단을 소유한 창업주 백성학(白聖鶴·영안모자 회장)의 이름에서 뽑은 백학(白鶴), 알(卵)에 비유되는 학생', 이 세 가지를 참고해 청송백학포란(靑松白鶴抱卵)을 상징화했다. '푸른 솔에 흰 학이 알을 품는 형국'의 건물이다.

대도시를 답사하다 보면 이렇듯 건물주와 건축사의 염원이 반영된 길상의 건물들이 많다. 대개 뾰족하거나 둥글거나 네모반듯하면서 균형 잡힌 건물들이다.

그러나 흉상의 사옥들도 적지 않다. 기울었거나 함몰되거나 갈라지거나 깨져 있어 보기에도 불안한 건물들이다. 이러한 흉상들은 "아무런 문화적 의미가 없는 건물과 과도한 상징과 개인적 표현주의로 충만한 건축"(이상헌 건국대 교수·건축학)이다. 그러한 사옥은 오너뿐만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전망을 흐리게 한다. 대기업이 무너질 때마다 풍수술사들이 흉상인 '건물의 저주' 탓이라고 수군거리곤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균형과 조화를 갖추지 못한 건축물들로 만들어진 도시는 기업과 국가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선(善)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