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5. 14:44ㆍ 인물열전
제감감찰(祭監監察)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전홍교(全洪敎)]
승정원일기
고종 18년 8월 30일 (기축) 원본2891책/탈초본133책 (29/59) 1881년 光緖(淸/德宗) 7년
○ 以明陵親祭時亞獻官以下別單, 傳于閔昌植曰, 亞獻官領府事李最應, 內下大豹皮一令賜給, 終獻官經理事閔謙鎬, 內下豹皮一令賜給, 贊禮禮曹判書閔泳穆, 執禮副司果尹祖榮, 大祝副司果金學洙加資, 陵司參奉李文淵陞六, 令該曹, 六品職待窠, 首先擬入, 本陵令趙鍾禹陞敍, 參奉李文淵陞六, 典祀官奉常正李鳳德, 執尊副應敎洪世燮, 祝史直閣金文鉉, 齋郞待敎閔泳韶, 贊者引儀安喆榮·玄景運, 謁者兼引儀任百夏·崔光在, 贊引假引儀鄭根燮·洪泰彦, 祭監監察(주1)全洪敎·文俊永, 各兒馬一匹賜給, 其餘守僕·員役等, 竝依判下施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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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18년 신사(1881, 광서7)
8월 30일(기축) 맑음
좌목 18-08-30[33]
명릉 친제 때의 아헌관 이하의 별단에 대해, 영중추부사 이최응 등에게 시상하라는 전교
○ 명릉 친제 때의 아헌관 이하의 별단에 대해, 민창식에게 전교하기를,
“아헌관 영중추부사 이최응(李最應)에게는 내하 대표피(內下大豹皮) 1령(令)을 사급하고, 종헌관 경리사 민겸호(閔謙鎬)에게는 내하 표피 1령을 사급하고, 찬례 예조 판서 민영목(閔泳穆)과 집례 부사과 윤조영(尹祖榮), 대축 부사과 김학수(金學洙)에게는 가자(加資)하고, 능사 참봉 이문연(李文淵)은 승륙(陞六)하되 해조를 시켜 6품 벼슬 자리가 나거든 맨 먼저 의망(擬望)하여 들이고, 본릉의 영(令) 조종우(趙鍾禹)는 승서(陞敍)하고, 참봉 이문연(李文淵)은 승륙하고, 전사관 봉상시 정 이봉덕(李鳳德), 집준 부응교 홍세섭(洪世燮), 축사 직각 김문현(金文鉉), 재랑 대교 민영소(閔泳韶), 찬자 인의 안철영(安喆榮)ㆍ현경운(玄景運), 알자 겸 인의 임백하(任百夏)ㆍ최광재(崔光在), 찬인 가인의 정근섭(鄭根燮)ㆍ홍태언(洪泰彥), 제감 감찰(주2) 전홍교(全洪敎)ㆍ문준영(文俊永)에게는 각각 아마(兒馬) 1필을 사급하고, 그 나머지 수복(守僕)과 원역(員役) 등에게는 모두 판하(判下)한 대로 시상하라.”
하였다.
(주1)감찰[ 監察 ]
정의
조선시대 사헌부의 종6품 관직.
내용
관리들의 비위 규찰, 재정 부문의 회계 감사, 의례 행사 때의 의전 감독 등 감찰 실무를 담당하였다. 고려시대 어사대의 감찰어사 직을 계승한 것이다.
1392년(태조 1) 7월 조선 개국 직후의 관제 제정 때 20인을 정원으로 했다가, 1401년(태종 1)에 25인으로 증원하였다.
그 가운데 일부는 다른 관원으로 겸직시켰으나, 1455년(세조 1)에 모두 실직화(實職化)하고 1인을 감원해 24인을 정원으로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문관 3인, 무관 5인, 음관 5인으로 13인만 두었다.
이들은 맡은 업무가 본래 광범위하고, 때로는 지방관의 비위를 조사하기 위해 분대(分臺 : 암행어사의 전신으로 행대(行臺)라고도 함)라는 이름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또 각 관서의 청대(請臺 : 회계감사의 요청)에 응해야 하며, 수많은 의전 행사에 감독 임무를 맡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관직에 비해 많은 인원이 배정되었다.
청대에 나가는 것은 대표적인 감찰 직무였다. 초기에는 모든 관서가 연말 업무 마감 전에 이를 행하도록 했으나, 후기에는 군자감·광흥창·봉상시·장흥고 등 재정담당 부서에서만 하게 되었다.
감찰이 청대에 나서면 해당관서의 관리들과 엄숙한 예를 거행하고 난 뒤, 장부와 창고의 현물을 대조, 확인한 다음 장부에 서명하고 창고에는 봉인을 붙였다.
사헌부의 관원으로 탄핵·서경(署經)·간쟁 등의 대간 업무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요직으로 간주되어 명망있는 인물들이 임명되었고, 다른 관원들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도록 지위를 보장하였다.
또, 그들만이 입식(笠飾 : 갓 장식)에 수정 정자(頂子)를 붙이고, 조복의 관(冠)에 해치(獬豸 :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분간해 선인(善人)을 보호하고 악인을 미워한다는 뿔이 하나 달린 전설의 동물로 해태라고도 함)를 부착하는 등 법관으로서의 권위를 부여받았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조선초기(朝鮮初期)의 언관·언론연구(言官·言論硏究)』(최승희, 서울대학교한국문화연구소, 1976)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감찰 [監察]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주2) 祭監監察
감찰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일은 지방 수령에 대한 감찰! <!--[endif]-->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금전출납과정에서의 감찰만큼 조선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지내는 제사에 대해 감찰이 파견되어 제사 준비 과정까지도 감독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조선이 유교적 의례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빚어진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국조의례의]에 의하면 1년에 치러지는 57종의 제사 중 36종에 감찰이 파견되었습니다.
이렇게 파견되는 감찰을 제감감찰(祭監監察)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행사 7일전부터 파견되어 다른 제관(祭官)들과 마찬가지로 부정한 행위를 멀리하고 몸을 깨끗이 하였습니다. 이들은 제사에 쓸 희생(犧牲)과 제물은 준비되었는지, 제기는 제대로 갖추어졌는지, 제사상 주변은 잘 청소되었는지, 각종 제수가 격식에 맞추어 제대로 진설되었는지, 제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복장과 행동이 의례를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등을 일일이 점검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로 따지면 광복절이나 현충일 기념식에 감찰이 파견되어 행사 진행 과정을 감독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이현정의 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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