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문제는 학교 수학에서 방정식을 배운 독자라면 십중팔구 방정식을 이용하여 이렇게 풀 것이다. 사람 수를 x라 하고, 은의 총수량을 y라 하면, y=7x+4 …………① y=9x-12 ………② ②식에서 ①식을 빼면, 0=2x-16 ∴ x=8 ………………③ ③식을 ①식에 대입하면, y=(7×8)+4=60
그리고 많은 독자들은 이것만이 정확하고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이것만이 가장 바람직한 계산 방법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입시를 목표로 한 중고교 수학 교육을 통해 효율적으로 잘 짜여진 단일한 계산법을 습득하고 또 그것을 기준으로 평가받았던 경험이 강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다양한 국면에서는 ‘이미 누군가가 잘 짜놓은 단일한 해법’이란 있을 수 없다. 자연과 사회를 막론하고 동일한 상황이 무한 반복되기보다 예측을 비켜난 변화로 가득 찬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문제 상황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여러 가지 가능한 해법들을 떠올리고 그중에 가장 적합한 것을 모색하는 과정을 거쳐 ‘자기만의 독자적인 해법’을 고안해 내야 하는 것이 교실 밖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학교 수학에서도 ‘문제 해결 능력’의 고양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 학생들이 단일한 해법을 수동적으로 습득하기보다 다양한 풀이법을 능동적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의 중점이 옮겨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새로운 발명은 모두 모방에서 비롯되었다. 독일의 근대 철학자이자 미적분의 기초를 세우는 등 수학사에도 큰 족적을 남긴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가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 등 중국에 다녀온 선교사들의 번역서를 통해 『주역(周易)』을 접하고서 2진법의 체계를 완성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음효(陰爻 --)와 양효(陽爻 -)의 순열(順列)로 이루어진 괘(卦)를 가지고 자연과 사회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주역(周易)』에서 영감을 얻어 2진법의 체계를 완성하고 컴퓨터의 전신인 ‘기계적 계산기’에 적용하여 ‘라이프니츠 휠’을 만들었다.
동아시아 수학, 인도 수학, 아랍 수학 등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 발생하여 변화 발전해온 다양한 수학 체계와 수 관념들 속에는 다른 문명의 눈으로 보았을 때 창의적인 모방의 원천이 될 만한 요소가 무수히 많다. 현대 수학과 전혀 다른 체계를 따라 고도로 발달했던 동아시아 전통 수학이 우리 선조들의 기록 속에서 낯선 눈빛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기록으로 남긴 수학 문제와 그 해법들 중에 대표적인 것들을 예제를 중심으로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위 문제에 대한 전통 수학의 풀이법을 여기서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우므로 얼개만 소개하기로 한다.
1명당 받는 차이 ‘9냥-7냥’ : 1명 = 총인원이 받는 차이 ‘4냥+12냥’ : 총인원 ……④ ∴ 총인원=(1명×16냥)÷2냥=8명 은의 총수량=(8명×7냥)+4냥=60냥
위는 『산학정의』에 제시된 세 가지 풀이법 중 가장 간단한 첫 번째 것으로, 문제에 제시된 두 가지 조건으로부터 1명당 받는 차이와 총인원이 받는 차이를 비교하여 사람수를 먼저 구한 것이다. ④의 비례식에서 ‘9냥-7냥’은 남을 때와 부족할 때의 1명당 할당량 차이고, ‘4냥+12냥’은 사람들에게 7냥씩 할당해 준 뒤에 남는 수와 9냥씩 할당해 준 뒤에 부족한 수를 합한 것이므로 남을 때와 부족할 때 할당량 총합의 차이다. 단, 전통 산학에서는 ④의 비례 식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그 비례관계가 이용되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남을 때의 조건[盈]’과 ‘부족할 때의 조건[朒]’을 가지고 딱 맞는 수를 구하되,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숫자의 사칙연산만으로 해답을 구하는 계산법을 영뉵술(盈朒術) 또는 영부족술(盈不足術)이라고 한다. 영뉵술은 전통 수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구장산술(九章算術)』 ‘영부족장’에서 이미 위와 같은 간단한 예제부터 복잡한 예제까지 정교하게 다루어진 만큼 전통 수학의 고유 영역 중 하나이다. 이는 9C에 이미 아랍으로 전해지고 12C에 유럽으로 전해져 이중가정법(method of double false position)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방정식을 이용한 계산과 영부족술을 이용한 계산에서 어떤 차이를 찾을 것인지, 그러한 차이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등의 문제는 모두 독자의 눈에 달려 있다. 동일한 물체를 가시광선으로 보았을 때, x선으로 보았을 때, 적외선으로 보았을 때 각기 달리 보이듯이 다른 눈빛이 다른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마이클 J 브래들리(Michael J. Bradley)의 『수학의 개척자들(Pioneers in Mathematics)』을 번역한 『달콤한 수학사』의 ‘추천의 글’에서 박창균 교수는 수학 실력이 그 나라의 국력에 거의 비례한다고 하면서 ‘진정한 수학 강국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수학 문화’를 강조하였다.
“… 수학 강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수학 문화’이기 때문이다. 곧,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자국이 배출한 수학자들의 업적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기리는 등 그들 문화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국제수학경시대회에 나가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을 자랑하기 이전에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수학 문화’가 있느냐는 것이다. … 수학이 가지는 학문적 가치와 응용 가능성을 외면하고, 수학을 단순히 입시를 위한 방편이나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한 진정한 수학 강국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
18~19세기 조선의 양반 지식인들은 천문학과 수학을 유학과 분리된 전문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저술하였다. 오랜 기간 천문학과 수학을 가업(家業)으로 이어온 중인 신분의 전문적인 천문학자, 수학자들과 공동 연구와 저술을 진행하는 등 학문적 활기로 충만하였다. 박창균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수학 문화’가 있었다고 할 만하다. 당시의 수학 문화는 비단 수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학문 전반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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