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4. 09:38ㆍ 인물열전
수래정[ 修來亭 ]
시대
조선/조선 후기
출처
디지털영암문화대전-수래정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개설
수래정(修來亭)은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중의 정자이다. 천안 전씨는 전사민의 강진 유배로 처음 영암 지역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이후 그의 5세손인 전승문(全承文)이 1504년(연산군 10)에 이곳 영암으로 이주하면서 주로 엄길 마을을 중심으로 천안 전씨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후손 중에는 전광택[?~1819], 전광정[1754~1809], 전영택[1776~1835](주1), 전종행[1788~1835](주2) 등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4인이 제일 학덕이 뛰어났고, 수래정 또한 이들과 관련이 있다.
위치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천안 전씨 동족 마을인 엄길 마을 중앙에 있다. 정자 바로 앞으로는 작은 하천이 있고, 주변에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전몽성(全夢星)[1561~1597] 외 2인을 배향한 장동사(長洞祠)와 전씨 문중의 강학소인 원경재(遠景齋)가 있다.
변천
수래정은 정자 내부에 걸려 있는 「수래정기(修來亭記)」가 갑술년(甲戌年)에 쓰인 것으로 보아 1814년(순조 14)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래정기」에 전광택, 전광정, 전영택, 전종행 등 4인에 대한 학덕을 언급하고 이들을 위해 본 정자가 지어졌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인 19세기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래정은 1924년에 중수되었고 1950년대에 기둥 하부를 모두 장초석으로 교체하는 등 또 한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형태
수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정자다. 정자 내부 바닥은 지표에서 1m 정도 높여져 있고 사면은 모두 낮은 평난간만 설치된 개방형으로 되어 있다. 두리기둥 하부는 1.3m 높이의 장초석을 사용하였고,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고 그 위로는 화반(花盤)[초방 위에 장여를 받치기 위하여 끼우는 널조각]을 한 구씩 배치하였다.
공포는 두 개의 쇠서가 서로 마주보는 이익공식(二翼工式)으로 형상이 다소 복잡하다. 가구는 5량가로 전후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짧은 포대공을 놓고 종량[마룻보]을 걸었다. 좌우 측면에서 대들보 상부로 걸은 매우 자연스럽게 휜 충량이 특히 눈에 띈다. 지붕 네 귀에는 무엇을 받치거나 버티는 데에 쓰는 굽은 기둥인 활주를 세웠다.
현황
엄길 마을 중앙 안쪽 길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관리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정자 바로 옆에는 수령이 400년쯤으로 보이는 회화나무와 소나무가 있다. 정자 내부에는 「수래정기」, 「수래정 중수기」, 원운(原韻) 4수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천안 전씨 동족 마을의 정자로 비교적 정자 건립의 유래와 역사가 잘 드러나 있다. 건축 양식도 조선 후기 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쓰였던 이익공식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목포 대학교 박물관, 『문화 유적 분포 지도』-전남 영암군(전라남도·영암군, 1999)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수래정 [修來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순조28년 식년시 문과급제자 | 丙科 09위 | 전영택(全榮澤) (주1) | 1828 무자 | 천안(天安) |
순조34년 식년시 문과급제자 | 丙科 12위 | 전종행(全宗行) (주2) | 1834 갑오 | 천안(天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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