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7. 12:20ㆍ 인물열전
승정원일기
고종 30년 계사(1893, 광서19)
8월 5일(갑인) 맑음
좌목
30-08-05[24] 경무대에서 일차 유생의 전강을 방외를 통틀어 시취할 때 행 도승지 송병서 등이 입시하였다
○ 오시(午時).
상이 왕세자와 함께 경무대에 나아가 제술로 강을 대신한 일차 유생의 전강을 방외를 통틀어 시취하였다. 이때 입시한 행 도승지 송병서(宋秉瑞), 행 좌승지 송도순(宋道淳), 행 우승지 김철희(金喆熙), 좌부승지 민영철(閔泳喆), 우부승지 김병직(金炳稷), 동부승지 유진옥(兪鎭沃), 가주서 정인욱(鄭寅旭)ㆍ서병찬(徐丙贊), 기사관 서상훈(徐相勛)ㆍ이시재(李蓍宰), 검교직제학 윤용구(尹用求)ㆍ김규홍(金奎弘)ㆍ김종한(金宗漢)ㆍ민종식(閔宗植)ㆍ이준용(李埈鎔)ㆍ민병승(閔丙承), 검교직각 남규희(南奎熙)ㆍ심상찬(沈相瓚)ㆍ유진필(兪鎭弼), 검교대교 조정구(趙鼎九)ㆍ이은용(李垠鎔), 부교리 권연(權沇)이 차례로 시립하였다.
때가 되자, 통례가 외판(外辦)을 무릎 꿇고 계청하니, 상이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여(輿)를 타고 광림문(廣臨門)을 나갔다. 약방 제조 민영달(閔泳達)과 부제조 송병서가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아침 일찍 수고로이 거둥하셨는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이어 신무문(神武門)을 나가 경무대에 나아갔다. 통례가 여에서 내리기를 무릎 꿇고 계청하니, 상이 여에서 내려 어좌(御座)에 올랐다. 왕세자가 뒤를 따라 여에서 내려 시좌(侍坐)하였다. 송병서가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표신(標信)을 내어 포성(布城)을 연 다음 유생들을 입장(入場)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내린 표신으로 거행하라.”
하였다. 송병서가 아뢰기를,
“시위(侍衛)와 종승(從陞) 가운데에서 시관으로 낙점받은 사람이 있는데, 내려가서 일체 예를 행하도록 합니까?”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인의의 인도로 독권관인 영의정 심순택(沈舜澤), 행 지돈녕부사 이승오(李承五), 독판내무부사 정기회(鄭基會), 행 대호군 남정순(南廷順), 행 호군 성대영(成大永), 호조 참판 이우면(李愚冕), 예조 참판 윤헌(尹瀗)과 대독관인 이조 참의 김정규(金定圭),행 부호군 윤상연(尹相衍)ㆍ김천수(金天洙)ㆍ이석영(李石榮)ㆍ정세원(鄭世源)ㆍ조동필(趙東弼),부사과 송병옥(宋秉玉), 지평 심상황(沈相璜), 부사과 윤덕영(尹悳榮), 검열 서상훈(徐相勛)ㆍ이시재(李蓍宰), 홍문관 정자 조영희(趙英熙)가 사배례(四拜禮)를 행하고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갔다. 상이 제(題)를 ‘문체는 부(賦), 시제(試題)는 만년차일경장신(萬年此日慶長新), 시간은 신시(申時)까지’라고 쓰도록 명하니, 이승오와 정기회가 무릎 꿇고 쓴 다음 읽어 아뢰었다. 이어 이시재와 조영희가 받들고 나가 제를 내걸었다. 송병서가 아뢰기를,
“먼저 제출한 시권이 이미 들어왔으니, 시권을 바친 유생들을 차례차례 내보내도록 표신을 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내린 표신으로 거행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시위한 군병, 배위(陪衛)한 군병, 배립(排立)한 군병들에게 각각 그 군영으로 하여금 건호궤(乾犒饋)하도록 하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시권을 편전(便殿)에 대령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환궁(還宮)은 자내(自內)의 예(例)로 할 것이니, 해방은 그리 알라.”
하였다. 상이 어좌에서 내려와 대내로 돌아가고 왕세자도 대내로 돌아갔다. 송병서가 표신을 내어 계엄(戒嚴)을 풀기를 청하였다. 신하들이 차례로 잠시 물러나왔다.
상이 시관에게 입시하라고 명하니, 신하들이 차례로 시립하였다. 고시(考試)하도록 명하니, 심순택이 고시하였다. 상이 소차(小次)에 들어갔다. 송병서가 사알을 통해 여쭙기를,
“이번에는 몇 사람을 뽑습니까?”
하니, 100인을 뽑으라고 명하였다. 송병서가 사알을 통해 과차(科次)할 것을 여쭈었다. 상이 소차에서 나왔다. 심순택이 편차(編次)하였다. 송병서가 아뢰기를,
“시권을 읽는 것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독관이 읽으라.”
하였다. 조영희가 첫째 장을 읽어 셋째 구(句)에 이르니, 상이 그만두라고 명하였다. 심순택이 아뢰기를,
“등차(等次)를 쓰는 것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3장은 정삼하(正三下)로 쓰고, 17장은 초삼하(草三下)로 쓰고, 나머지는 모두 차상(次上)이라고 쓰라.”
하였다. 심순택이 등차를 썼다. 송병서가 아뢰기를,
“봉미(封彌)를 뜯는 것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지가 봉미를 뜯으라.”
하였다. 송병서가 봉미를 뜯은 다음 읽어 아뢰었다. 상이 쓰라고 명하고 전교하기를,
“제술로 강을 대신한 일차 유생의 전강에서 부(賦)에 수석으로 삼하일(三下一)을 맞은 생원 조성재(趙性載), 삼하이(三下二)를 맞은 유학 안필호(安弼鎬), 삼하삼(三下三)을 맞은 진사 홍현철(洪顯哲)은 모두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하고, 그 다음 초삼하(草三下)를 맞은 유학 이장직(李章稙), 전명련(全命鍊), 최수열(崔樹烈), 오연근(吳璉根)은 모두 진사시(進士試)의 방목(榜目) 끝에 붙이고, 그 다음 초삼하를 맞은 유학 여범구(呂範九) 등 13인은 모두 직부회시(直赴會試)하게 하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한명선(韓命瑄) 등 15인에게는 모두 2분(分)을 주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동몽(童蒙) 김순석(金淳碩) 등 17인에게는 모두 1분을 주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정익교(鄭翊敎) 등 23인은 모두 감시(監試) 초시(初試)의 방목 끝에 붙이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유시진(柳時鎭) 등 25인에게는 각각 《규장전운(奎章全韻)》 1건을 사급(賜給)하라.”
하였다. 이어 쓰라고 명하고 전교하기를,
“입격한 유생 김용범(金容範)은 계방(桂坊)이니, 수령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 제일 먼저 의망하여 들이라.”
하였다. 또 쓰라고 명하고 전교하기를,
“입격한 유생은 내일 대령하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신은 먼저 물러가라.”
하고, 이어 시관에게 먼저 물러가라고 명하였다. 또 사관에게 자리로 돌아가라고 명하고, 이어 물러가라고 명하니,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나왔다.
[주D-001]만년차일경장신(萬年此日慶長新) : 만년토록 이날의 경사가 무궁하고 새로우리라는 뜻이다. 이는 올해가 계사년으로서 선조(宣祖)가 임진년(壬辰年)에 파천하였다가 경운궁(慶運宮)으로 환궁한 해와 같은 해이므로 이를 추념하여 경축하려는 의도에서 낸 시제(試題)로 보인다.
전명련(全命鍊)
[진사시] 고종(高宗) 31년(189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290위(319/1055)
[인물요약]
자 용팔(用八)
생년 갑술(甲戌) 1874년(고종 11)
합격연령 21세
본관 천안(天安)
거주지 구성(龜城)
[관련정보]
[이력사항]
선발인원 1055명
전력 유학(幼學)
시험과목 이부(二賦)
부모구존 구경하(具慶下)
[가족사항]
[부]
성명 : 전경룡(全坰龍)
품계 : 종사랑(從仕郞)
관직 :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
[안항:제]
성명 : 전응련(全應鍊)
성명 : 전항련(全恒鍊)(주1)
[출전]
『상지즉조32년갑오식년사마방목(上之卽祚三十二年甲午式年司馬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B13LB-40])
(주1) 승정원일기 141책 (탈초본 3237책) 순종 3년 8월 30일 병오 -1/3 기사 1909년 先統(淸/溥儀) 1년
○ 郡主事金斗鉉依願免本官, 鹿又國藏任郡主事, 郡主事孫應麟任道主事, 金恒鍊, 前副訓導張淳應任郡主事, 道主事孫應獜命平安北道觀察道在勤, 郡主事全恒鍊命慈城郡在勤, 郡主事張淳應命平安北道觀察道在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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