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 20:38ㆍ 인물열전
전유흠(全有欽)
[생원시] 광해군(光海君) 10년(1618) 무오(戊午) 증광시(增廣試) [생원] 2등(二等) 5위(10/100)
[인물요약]
본인본관 옥천(沃川)
거주지 영천(榮川)
[관련정보]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가족사항]
[부]
성명 : 전성헌(全成憲)
품계 : 선교랑(宣敎郞)
[출전]
「정사사마방목[만력45년](丁巳司馬榜目[萬曆四十五年])」(『성암공실기(星巖公實記)』,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고) 920.0515 박문엄ㅂ])
▶ 선교랑[宣敎郞 ]
조선시대 동반관계(東班官階)의 하나.
동반은 문관에게 수여한 관계로서, 이는 무관에게 수여하는 무산계와 함께 관계의 근간을 이루었다. 선교랑은 종6품 상(上)의 관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교랑 [宣敎郞] (두산백과)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중초본] 121권, 광해 9년 11월 25일 병술 3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관학 유생들의 폐비 문제에 대한 상소
관학 유생인 김상하(金尙夏)·김극수(金克修)·최상질(崔尙質)·유진정(柳震楨)·박희(朴憘)·이전방(李傳芳)·이홍순(李弘詢)·유창길(柳昌吉)·조후겸(曺厚謙)·이책(李江)·최광필(崔光弼)·이선철(李善徹)·조원규(趙元規)·김대진(金大進)·하인준(河仁俊)·정기(鄭淇)·신경업(辛敬業)·유의남(柳義男)·이건원(李乾元)·나만기(羅萬紀)·채유제(蔡有濟)·여응백(呂應伯)·이덕무(李德茂)·정희립(鄭希立)·임기지(任器之)·오운(吳霣)·배홍우(裵弘祐)·여후망(呂後望)·정성(鄭晟)·민심(閔葉)·정미(鄭渼)·정준(丁駿)·신홍업(辛弘業)·신경함(申景涵)·이광업(李光業)·이영구(李榮久)·조익형(趙益亨)·이정(李綎)·박훤(朴箮)·민설(閔渫)·민준(閔濬)·이진서(李震瑞)·고대허(高大虛)·김경원(金慶遠)·민성(閔娍)·송대정(宋大庭)·전유흠(全有欽)·배경생(裵慶生)·서긍(徐兢)·김주국(金柱國)·송사성(宋思誠)·최흘(崔屹)·금대아(琴大雅)·남길(南佶)·서상안(徐尙顔)·한지업(韓志業)·금대진(琴大進)·신환(申渙)·김치우(金致禹)·김탁(金鐸)·박준영(朴俊英)·윤사은(尹事殷)·박유빈(朴由彬)·한성(韓晟)·이발(李渤)·황정필(黃庭弼)·김첩(金穕)·마계변(馬繼卞)·장응한(張應翰)·김윤겸(金允兼)·김홍원(金弘愿)·이훤(李箮)·이광계(李光啓)·최준(崔準)·한영(韓瑛)·남순(南恂)·임취(任悍)·임원(任楥)·김경(金璥)·양응징(梁應澄)·박빈(朴彬)·이호겸(李好謙)·남숙(南淑)·권이급(權以伋)·이광홍(李光弘)·송석우(宋錫祐)·김창(金暢)·권덕여(權德輿)·선방호(宣方虎)·정응선(鄭應善)·이정관(李廷冠)·임징지(任徵之)·정주한(鄭周翰)·전홍량(全弘諒)·이송수(李松壽)·윤지임(尹之任)·전시헌(全時獻)·윤진(尹震)·정시현(鄭時賢)·이성립(李誠立)·김옥장(金玉章)·오행철(吳行哲)·한천정(韓天挺)·정사길(鄭士吉)·한의방(韓義方)·강식(康軾)·방여징(方汝澄)·강철(康轍)·박용빈(朴用賓)·박률(朴嵂)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서궁의 죄악은 말하기에도 참혹합니다. 요사한 무당을 신봉하여 의인 왕후의 능묘에 저주를 행하라고 요구한 결과 썩은 뼈를 능 위에 묻어 욕됨이 지하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며 살점에다가 왕후의 휘를 써가지고 까마귀와 솔개에게 나누어주어 먹게 한 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아들 이의(李㼁)를 귀하게 만들려고 억누르기를 도모하여 여우 뼈와 나무로 만든 인형을 궁궐 안 각처에다 묻었으며 흉악한 소경을 은밀히 끌어들여 요사스런 경문을 외우게 한 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선왕이 병이 났을 때 밖으로는 최영경·홍로와 결탁하여 형세로 서로 의탁하였으며 은밀히 역적 이진(李珒)과 약속하여 왕위를 그에게 물려주었다가 이의가 성장하기를 기다려 넘겨주려고 한 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남몰래 김제남을 사주하여 대군집의 종 1천여 명을 단속하여 은밀히 각 부서(部署)에 배치해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활용하게 한 것이 네 번째 죄입니다. 좌의정 정인홍이 최영경을 공격한 상소가 들어오자 감히 간악한 마음을 먹고 기회를 틈타 세자를 바꾸려고 선왕에게 울면서 고하여 엄한 하교를 누차 내리게 해서 나라의 근본이 위태로울 뻔한 것이 다섯 번째 죄입니다. 선왕이 세상을 하직하던 날에 유언을 조작하여 자기 아들인 이의를 여러 재상에게 부탁하여 보호하게 한 것이 여섯 번째 죄입니다. 성상이 임어하신 후에는 무당에게 저주를 행하게 해서 여러 해 동안 계속하여 닭·개·양·돼지 등의 짐승을 대궐 뜰에다 버리지 않는 날이 없는 등 기필코 성상을 해치고야 말겠다는 심산이었으니, 이것이 일곱 번째 죄입니다. 김제남을 사주하여 불평 분자들과 결탁하고 무사들과 짜서 나라에 틈이 생길 때를 기다렸다가 국정(國政)을 옮기려고 하였으니, 이것이 여덟 번째 죄입니다. 발칙한 말을 지어내어 전하를 속이고 그의 족속들에게 말을 퍼뜨렸으며 심지어는 반역의 잔당으로 하여금 흉측한 격문에 써넣게 하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아홉 번째 죄입니다. 내탕고의 돈을 많이 꺼내서 서양갑에게 두둑하게 주어 왜국에 가서 결탁하여 외원(外援)이 되게 하였으며 이의를 세운 뒤에는 중국을 배반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열 번째 죄입니다.
이 열 가지나 되는 큰 죄를 지었으니 여후(呂后)나 무후(武后)의 죄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는 아직도 어미의 도리로 대우하고 있으며 온 나라에서도 국모로 받들고 있으니, 순(舜)이나 문왕(文王)과 같은 전하의 효성이야 지극하다 하겠지만 종묘 사직을 안정시켰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온 나라에서 떠받드는 정성은 예라고 하더라도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윤리가 막히고 간사한 말들이 유행하여 우리 나라 수천리에 절반 이상이 전하를 반대할 군사이므로 위급한 상황이 금방이라도 닥칠 것만 같은데, 전하께서는 사사로운 은혜를 보전하려 하시고 신하들은 아침 문안을 폐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삼강(三綱)은 두절되고 구법(九法)은 문란하여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망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러 유생들의 상소가 내려가서 대책이 곧 나올 것이지만, 신들은 삼가 바라건대 《춘추(春秋)》의 필법으로 온 나라에다 정의를 알리고 서궁의 존호(尊號)를 강등시키고 분조(分朝)를 철거하고 시위하는 일과 공물 바치는 것과 조회하는 것을 일체 중지하소서. 그리고 전하께서는 단지 음식만을 제공하여 그로 하여금 여생을 잘 마치게 하소서. 그리고 그 동안의 전후 곡절을 적어서 예부에 정문(呈文)을 보내 윤이(尹彝)·이초(李初)가 참소하던 길을 근절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급무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조정의 사대부를 불러 좋은 의견에 따라 처리해서 속히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러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옛날에 장간지 등이 중종(中宗)을 옹립하였는데, 송유(宋儒)인 호인(胡寅)이 말하기를 ‘간지 등이 중종에게는 고하지 않고 태묘(太廟)에만 고하고 수죄(數罪)하여 주벌을 가하는 것이 춘추의 의리에 부합한다.’ 하였습니다. 무씨(武氏)는 중종에게 있어서 낳아서 길러준 은혜가 있는데도 대의(大義) 앞에서는 조금도 용서받지 못하였는데, 더구나 낳아서 길러준 은혜도 없고 무씨와 같은 나쁜 행실만 있는 경우이겠습니까.〉
기자헌은 영의정이 되어 국정을 맡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큰 변란을 당하여는 의리상 정성을 다하여 토죄하기를 청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는 않고 음흉하게 다른 속셈을 가지고 역적의 괴수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또 조정의 논의를 널리 수합하려 들지는 않고 도리어 흉측한 차자만 올리고 있으니, 그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만합니다. 기자헌을 처벌하지 않으면 국시(國是)를 정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왕법을 내리셔서 모든 관료들을 경계하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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