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6. 14:51ㆍ 인물열전
1. 승정원일기 한글 번역 [ 김황→전황으로 변경 ]
승정원일기 > 고종 > 고종 9년 임신 > 3월 5일
고종 9년 임신(1872) 3월 5일(기축) 맑음
09-03-05[26] 문묘에 나아가 전배한 뒤 만월대에 나아가 정시 문과를 시취할 때 행 도승지 한경원 등이 입시하였다
○ 진시(辰時).
대가가 문묘에 나아가 전배(展拜)한 뒤 이어 만월대(滿月臺)에 나아가 친림하여 정시 문과(庭試文科)를 시취(試取)하였다. 이때 입시한 행 도승지 한경원, 좌승지 김성근, 우승지 홍원식, 좌부승지 조정희, 우부승지 이승우, 동부승지 왕정양, 가주서 이태용ㆍ정원화, 기사관 조종익(趙鍾翼)ㆍ이근명(李根命), 원임 직제학 이승보(李承輔), 검교직제학 민승호(閔升鎬)ㆍ조영하(趙寧夏)ㆍ이재면(李載冕), 검교직각 이호익(李鎬翼)ㆍ강찬(姜𧄽), 검교대교 김규식(金奎軾), 대교 한기동(韓耆東), 검교부제학 이명응(李明應), 검교전한 이기호(李起鎬)가 차례로 시립(侍立)하였다.
때가 되자, 통례가 무릎 꿇고 외판(外辦)을 계청하니, 상이 군복을 갖추어 입고 좌마(座馬)를 타고 행궁의 문밖으로 나갔다. 약방 제조 강노, 부제조 한경원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여러 날 동안 묵으시느라 노고가 많으셨는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선전관이 무릎 꿇고 징을 두 번 울리는 동시에 대취타하게 하기를 여쭈었다.
출발을 하여 문묘의 강여소(降輿所)에 이르렀다. 통례가 무릎 꿇고 좌마에서 내려 여(輿)를 타기를 계청하였다. 상이 좌마에서 내려 여를 탔다. 선전관이 무릎 꿇고 징을 세 번 울리는 동시에 군악을 정지하게 하기를 여쭈었다. 이어 문묘의 대문 밖으로 나아갔다. 통례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리기를 계청하였다. 상이 여에서 내려 소차 안으로 들어갔다.
전배(展拜)할 때가 되자, 통례가 무릎 꿇고 소차에서 나가기를 계청하니, 상이 면복(冕服)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찬례가 앞에서 인도하고서 판위(版位)로 나아갔다. 찬례가 무릎 꿇고, 허리를 구부려 네 번 절하고 일어나 몸을 펴라고 아뢰었다. 상이 사배례를 행하였다. 이어 문묘 안으로 나아가서 봉심하였다. 봉심을 마치자, 찬례가 상을 인도하고서 도로 소차로 들어갔다. 전교하기를,
“반열에 참가한 유생들을 어가 앞으로 대령시키라.”
하였다. 조금 뒤에 통례가 무릎 꿇고 소차에서 나가기를 계청하였다. 상이 군복으로 갈아입고 소차에서 나갔다. 통례가 무릎 꿇고 여를 타기를 계청하였다. 상이 여를 탔다. 전교하기를,
“반열에 참가한 유생들은 입시하라.”
하였다. 유생 전황(全晃) 등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유생들 가운데 몸에 관디[冠帶]를 걸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하니, 전황이 아뢰기를,
“신 전황으로, 일찍이 혜릉 참봉(惠陵參奉)을 지냈습니다.”
하였다. 상이 유생들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명하였다. 하교하기를,
“백미 30석, 면포 50필을 내려줄 것이니 선비를 양성하는 자본으로 삼을 것이며, 칠서(七書) 1질을 내려줄 것이니 모름지기 부지런히 공부하여야 한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유생들에 대한 유안(儒案)이 있는 것은 명분을 바르게 하고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이 개성부는 바로 우리 태조의 옛 터전이고 전 고려의 도읍지로, 명분과 기강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규모가 있다. 그런데 요즈음 듣건대, 유안이 점차 어지럽게 된 탓에 문벌이 좋은 자들은 대부분 꺼리면서 그 안에 같이 끼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고 한다. 500년간이나 전래되어 온 아름다운 일이 무너지도록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이 개성부는 우리 조선 왕가에게 있어서 왕업을 처음으로 일으킨 곳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먼저 종정경(宗正卿)부터 유안에 등록하라. 그런 다음 그 뒤를 이어 차례대로 엄격하게 잘 선발하고 각별히 바로잡아, 전처럼 잡스럽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개성부에 분부하라.”
2. 잘못된 번역 수정 과정
오류신고
접수번호 | 896 |
제목 | 한글 번역문 오류 수정 요청 [김황--전황] |
신고자 | 전과웅 |
신고일자 | 2017-11-06 |
아이템명 | 승정원일기 |
오류유형 | 번역내용 오류 |
DCI |
|
처리상태 |
|
오류URL | http://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grpId=&itemId=ST&gubun=book&depth=4&cate1=&cate2=&dataGubun=일&dataId=ITKC_ST_Z0_A09_03A_05A URL 바로가기 |
오류내용 | ○ 傳曰, 參班儒生入侍。 儒生全晃等入侍, 上曰, 儒生中身着冠帶者, 誰也? 晃曰, 臣晃曾經惠陵參奉矣。 上命儒生等進前, 敎曰, 白米三十石, 綿布五十疋, 當賜給矣。 以爲養士之需七書一帙, 亦當賜送矣。 必須勤學敦工, 可也。 傳曰, 儒而有案, 所以正名分立紀綱, 而是府, 卽太祖舊基勝國故都也。 名分紀綱, 自有規模, 近聞儒案, 漸至淆亂, 有地閥者, 率皆厭避, 恥與之同列云, 五百年傳來美事, 一任其毁劃而止乎? 是府之於我家, 無異豐沛之地, 先自宗正卿, 爲首錄, 繼卽次第峻選, 另加釐正, 俾無如前濫雜之患事, 分付松營。 傳曰, 明日麗太祖顯陵親行奠酌禮, 還宮時, 當詣敬德宮舊基展拜矣, 該房知悉。 傳曰, 明日麗太祖顯陵親行奠酌禮時, 勝國後裔, 竝入參事, 分付本府。 傳曰, 勝國後裔, 有異他人, 績久沈滯, 是未遑而然也。 自今有地閥之人, 文之槐院, 蔭之齋郞, 武之宣薦, 無礙收用事, 分付。 宣傳官跪稟鳴金二下, 大吹打。 傳曰, 當詣穆淸殿舊基展拜矣, 該房知悉。 先後廂中央路上留駐, 詣穆淸舊基, 通禮跪啓請降馬, 上降馬, 通禮前導詣展拜位, 通禮跪啓請鞠躬四拜興平身, 上行四拜禮, 仍爲看審訖。 通禮跪啓請乘座馬, 上乘座馬, 仍詣善竹橋, 歷覽舊跡, 仍入英廟朝御筆碑閣所, 奉審訖, 命展鄭文忠公遺像圖。 上曰, 圖像藏奉之樻子, 使之新備, 可也。 傳曰, 鄭文忠公, 卽是東國儒宗, 矧其節義, 可貫日月, 今來此地, 豈可無示意? 崧陽書院, 遣本府留守致祭, 其祀孫問名, 初仕擬入。 進發至滿月臺, 通禮跪啓請降馬, 上降座馬乘座。
|
' 인물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승정원일기[ 김홍교→전홍교로 수정 ] (0) | 2017.11.20 |
---|---|
[스크랩] 승정원일기 오류 수정[김홍교→전홍교] (0) | 2017.11.18 |
[스크랩] 정선전씨 중시조 旌善君 諱 愃 (全 愃) 시향 (0) | 2017.11.14 |
[스크랩] 전이민(全以敏) (0) | 2017.11.12 |
[스크랩] 전사서(全思敍) (0) | 2017.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