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황성옛터, 알뜰한 당신」을 작곡한 전수린 [全壽麟]

2018. 2. 23. 15:44 인물열전

전수린 [全壽麟]





요약

일제강점기 작곡가·작사가(유행가). 경기도 개성(開城) 출생. 빅타레코드사의 전속작곡가(專屬作曲家).

출생 - 사망

1907~ 1984


전수린

송도고보(松都高普) 재학 중 장봉손(張奉孫)에게 바이올린 기초를 배웠고, 호수돈(好壽敦)여학교 교장인 니콜스(Nichols) 부인으로부터 정식으로 바이올린의 개인 지도 및 악전을 사사하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바이올린을 통해 폭넓은 음악의 세계로 접근하게 됐고, 동요를 작곡해서 발표한 뒤에는 작곡에도 뜻을 두게 됐다.  본명은 전수남(全壽南)이다


15세 때 송도고보를 중퇴하고 1925년에 상경해 홍난파(洪蘭坡)가 주도하는 연악회(研樂會)에서 동요작곡가로 활약했다. 빅타사의 전속작곡가로 있으면서 빅타음반에 아홉 곡을 남겼다. 22세 때 무용가 조택원(趙澤元)의 권유로 동방예술단(東方藝術團)에 가담하여 연극 장면의 극적인 무드를 고조시키기 위해 바이올린 연주로 음악적 효과를 냈다.


1929년 늦가을 순회공연단에 개성에 머물게 됐을 때, 그는 고려왕조의 옛 영화(榮華)는 간 곳 없고 잡초만 무성한 옛 궁터 만월대(滿月臺)를 거닐 때 문득 떠오른 "황성 옛터"의 가락을 오선지에 올리고 가사를 극단의 왕평(王平)에게 부탁하였다. 동방예술단의 여배우 신일선(申一仙)에게 이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게 한 결과, 관중들의 반응이 너무 열광적이었기 때문에, 당시 폴리돌레코드사의 문예부장 왕평은 이애리수(李愛利秀)에게 "황성 옛터"를 취입시켜 인기를 끌면서 그는 작곡가의 위치를 굳혔다.


1930년 무렵 극단 연극사(演劇舍)에서 왕평·전수린·이애리수와 함께 공연활동을 전개했다. 1931년 시에론사의 창립 때 "한숨 고개"로 데뷔했다. 1932년 빅타사의 전속작곡가가 되어 "황성 옛터"·"고요한 장안"으로 일약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다.


1935년 무렵 홍난파와 함께 연악회 멤버가 되어 방송국에 드나들며 합주활동에도 열을 올렸다. 1936년 황금심(黃琴心)에게 "알뜰한 당신"(李扶風 작사)을 취입시켰으며, 1937년 박단마(朴丹馬)에게는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를 취입시켜 가수의 출세 길을 열어주었다. 일제강점기 그가 작사·작곡한 "삼천리 강산 에라 좋구나"라는 신민요를 선우일선(鮮于一扇)에게 취입시켰다. 1942년 일제의 압력으로 누구나 그랬듯이 다마가와(玉川)라고 창씨개명(創氏改名)하고 위문대를 만들어 만주에서 홋카이도(北海島)의 오지 탄광까지 순회하며 징용으로 끌려간 우리 동포를 위문했다.


일제강점기 그가 작곡한 "고요한 장안"은 그 곡의 멜로디에 "아다나사케(仇情)"라는 제목을 붙여 일본어로도 애창됐다. 그가 작곡하고 윤백남·윤혁·이애리수와 함께 관현악반주로 취입한 "가오리"·"갈대꽃"·"갈바람은 산들산들"·"견우화"(牽牛花)·"고요한 장안"을 포함한 70여 곡의 유행가는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일제강점기 그가 작곡한 만극(漫劇) "사랑의 불길유행소곡 "연모소곡"(戀慕小曲)·"온양 온천노래" 등은 시에론음반에 전한다. 그가 작곡하고 이경설·임서방·신카나리아·강금자가 취입한 유행소패(流行小唄) "외로운 꽃"·"방랑가", 만곡(漫曲) "내버려 두서요"와 유행소패 "사랑의 불길"," 만극 "사랑의 불길, 유행소패 "연애소패"(戀愛小唄)"웅대한 이상," 유행소패 "온양 온천노래""명사십리"(明沙十里), 유행소패 "외롭다 내 마음," 유행소패 "한숨 고개"와 가극소패(歌劇小唄) "사랑아 곡절(曲節) 없어라," 유행소패 "황혼의 비()"와 민요 "무궁화 강산"三千里(1932) 47·8호의 시에론음반에 소개되었다.


참고문헌

한겨레음악인대사전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 781~82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전수린 [全壽麟] (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11. 2., 도서출판 보고사)









출처 : 전씨(全氏) 광장
글쓴이 : 전과웅 (55세/정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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