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디자이너 박정희' 펴낸 전상인 (全相仁) 교수

2019. 8. 30. 07:29 인물열전

활력과 자유 넘치는 서울, 그에게서 시작됐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 펴낸 전상인 (全相仁) 교수

"셋방살이가 흔하던 시절을 한번 생각해 보시죠."

 

전상인(61)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대뜸 말했다. "집주인도 세입자도 프라이버시 같은 건 없었지요. 화장실도 순서가 있고, 내 자식이 집주인 아들보다 공부를 잘해서도 곤란하고요." 물론 지금은 이런 풍경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아파트가 대중화됐기 때문"이다. "늘 집을 보느라 '집사람' '안사람'이라 불리던 여성들은 또 어떻게 됐나요? 현관을 잠그고 자기만의 자유로운 일상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전 교수는 대한민국의 20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이러한 변화를 '공간 혁명'이라 불렀다. 그가 최근 펴낸 연구서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도 같은 맥락에서 태어났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1960~70년대는 국토와 도로, 도시 공간이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고, 그 중심에 있었던 디자이너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을 시작하면서 이미 '공간'을 염두에 두고 전체 국토를 바꾸는 일에 나섰습니다."





강남 개발의 시발점이자 경부고속도로의 출발점인 남산 1호 터널 앞에 선 전상인 교수는 박정희의 근대화 혁명은 국가의 공간 구성을 바꿔놓은 공간 혁명이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풍수론이 대세를 이룬 조선시대에는 국토 개발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길이 없어야 안전하다(무도즉안전·無道則安全)'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엔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한 남북 불균형 발전이 이뤄졌다. 전쟁을 겪은 1950년대엔 복구에 정신이 없어 임시방편적인 대응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면 총괄계획가 박정희의 종합적인 설계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국토와 교통, 도시·주택·환경이 긴밀하게 연결된 계획이었다. 수도권과 남동 임해권을 중심으로 산업단지가 건설됐고, 철도와 도로, 핵심 물류 인프라인 항만과 항공 교통이 그것을 연결했다.

 

'어디 공장만 만든다고 경제가 발전하는 줄 아시오? 도로도 만들고 항만도 지어야지.'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총리의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뒤 자동차가 쏜살같이 달리던 아우토반을 보고 아예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파격적 발상이 나온다. 경부고속도로다. 전 교수는 "길이라곤 비포장 자갈길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는 그 자체로 '성공에 대한 확신이자 미래에 대한 기대'였다"고 말했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도시 과밀 현상엔 '선제적 주택 정책'으로 대응했습니다." '건축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막았다'(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말)19세기 프랑스처럼, 박정희는 아파트의 대량 공급으로 중산층을 육성해 대한민국을 체제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아파트가 가져다 준 '공간 혁명'을 통해 공동체적 삶에서 개인 사생활이 보장되는 '도시형 개인'으로 단기간에 탈바꿈했습니다." 정부가 '총화단결'을 외치던 유신 시절에 '개인의 공간'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전 교수는 "박정희의 공간 정책은 효율성을 강조하다 보니 평준화와 공산품화( )가 두드러졌고 결과적으로 수도권에 과도한 쏠림 현상이 일어났던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큰 기념물로 '거대한 연극 세트장'을 만들었던 김일성의 평양과는 달리, 박정희의 서울은 개인 숭배와 도시계획을 결합하지 않았고 화려하고 과시적인 모습을 오히려 자제했다. "그 결과 서울은 활력과 자유가 넘치는 '시민의 도시'가 됐던 것입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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