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산에 검화가 피고, 장삼봉의 전설이 시작된다

2009. 11. 7. 06:49게시판

 
무당산에 검화가 피고,
장삼봉의 전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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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호북성(湖北省) 단강구(丹江口) 남쪽에 위치한 무당태화산(武當太和山). 도교에서는 북극진무현천상제(北極眞武玄天上帝)가 있는 곳이라 하여 성지로 숭배하는 산으로 흔히들 무당산이라고 부른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산 전체에 푸른 기운이 만연하여 무당 선산(武當仙山)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곳 무당산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인근 고을에 퍼졌다. 달이 밝은 밤이면 천주봉 정상에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싸늘한 칼춤을 춘다는 것이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엔 귀신의 통곡 소리가 골짜기를 메운다고 했다.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하나 둘 늘고,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타면서 살이 붙고 뼈가 더해져 귀신은 구미호가 변한 것으로, 구름을 타고 다니며 처녀만을 잡아간다고도 했다.

 

 

무당산

 * 짙은 운해에 감싸인 무당산. 영화 '와호장룡'의 마지막 장면의 무대이기도 했다.

 

무당산에 예로부터 전해지는 전설 중에는 천주봉 정상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운해로 뛰어들면 사랑하는 이가 다시 살아난다는 얘기가 있다. 이에 사람들은 연인의 희생으로 되살아난 망자(亡者)가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산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추측했다. 이 소문 때문에 무당산 천주봉 일대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날도 천주봉에 보름달이 걸렸다. 과연 어김없이 백의인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났는데 머리는 길게 풀어헤쳤고, 손에는 한 자루 장검을 쥐었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가볍게 몸을 흔들더니만 이내 어지러이 검을 움직였다. 쉭쉭. 예각을 지닌 물체가 밤공기를 가르는 경쾌한 파열음이 천주봉에 가득하고,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달빛이 반사되어 아름다운 광채를 사방에 흩뿌렸다.


어느덧 검을 든 이는 보이지 않고 이따금 달빛에 반사된 검광(劍光)만이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힌다. 귀신의 조화인가. 사람도 검도 보이지 않고 단지 눈부신 섬광만이 봉우리를 에워싼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형체는 뚜렷이 보이지 않고 도깨비불인 양 검화(劍花)가 피고 지니 정말로 귀신의 소행으로 알 만하다.

 

무당태화무술원

* 무당산에서 무술을 익히고 있는 중국인들. 이들이 연마하는 게 장삼봉의 내가권 계열인지 현대 우슈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예를 아는 이가 유심히 들여다보면 백의인의 검은 공격과 방어의 이치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검법에 몰두하다 보면 절로 흥에 겨워 보법과 신법이 빨라지고 덩달아 검이 움직이는 폭이 커지고 궤적이 순간순간 변하면서 검의 잔상이 마치 꽃봉오리가 피는 듯 아름다운 광채를 발한다. 이를 검화(劍花)라 한다. 웬만큼 검을 연마해서는 한 송이도 제대로 피우기 어려운 게 검화다. 지금 천주봉엔 그 검화가 눈부시게 피어났다. 이는 분명 귀신이 아니라 사람, 그것도 절정 고수의 움직임이다.


세인들이 귀신이라고 착각한 백의인은 다름 아닌 장삼봉(張三峰)이다. 혼자서 적 100여 명을 죽였다는 믿기지 않는 전설의 주인공이자 내가권(內家拳)을 만든 인물이다. 내가권은 태극권의 원류로 알려져 있으며 소림 무술과 더불어 중국 무술을 양분하는 거대한 뿌리다. 무림에는 많은 문파들이 있고 그만큼 많은 수의 고수들이 있다. 이들은 일신에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저마다 빼어난 기예로 후인들의 존경과 감탄을 자아낸다.


무예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고수들 중에서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 장삼봉이다. 그의 본명은 장군보(張君寶)였는데, 무당산에 오기 전 머물렀던 보계산(寶쬆山)의 봉우리가 세 개여서 장삼봉(張三峰)이라는 별호가 생겼다.

 

 

킬빌

 * 영화 '킬빌'에서 복수를 꿈꾸는 우마 서먼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사부. 무당 내가권의 도사 차림의 복장이다.

 

 

장삼봉은 속세를 떠나 이곳 무당산에서 은둔 생활을 즐기며, 무술을 수련하고 도(道)를 닦는 중이었다. 귀신 소문이 떠돌았지만 이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은근히 스스로 조장한 면도 있다. 수행 중에 사람들이 얼씬거리며 말을 걸거나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다. 그래서 나무꾼이나 약초 캐는 이가 오면 괜히 숨어서 장난치기도 했다. 외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예를 연마하며 수행에 몰두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예로부터 깊은 산이나 인적 드문 곳에서 수행을 하는 이들 중에는 무술을 몸에 대한 공부의 한 방편으로 익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산짐승이나 도적에게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술이 필요했으며, 또한 수양을 위한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도 무술은 아주 요긴한 방편이 되었다. 무술이 아니더라도 몸에 대한 건강법으로 기공이나 도인법(導引法) 한두 가지쯤은 대개 할 줄 알고, 또한 해야만 했다.


소림사도 마찬가지다. 소림의 승려들이 꼭 무술을 익히기 위해서 출가를 한 것이 아니라 불법을 닦고 수행에 정진하기 위한 공부 중 하나로 무술을 한 것이다. 장삼봉은 어릴 적부터 무술에 재능이 있고, 또한 무술을 즐겨하는 성격이라 입산 후에도 무술 연마를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원래 소림 제자였다. 그것도 보통 제자가 아니라 소림 무술의 정수를 터득한 몇 안 되는 제자였다.


그의 천부적인 자질은 천하 무술의 태두를 자처하는 소림에서도 두각을 보여, 소림 무술을 빛낼 차세대 주자 중 첫 번째로 꼽혔다. 하지만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소림 문중에서 나와 천하 명산을 찾아다니며 도(道)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항간에는 그가 죄를 지어 파문당했다느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스스로 하산하였다느니, 동문 사형들의 시기심에 모함을 받았다느니 온갖 억측이 난무했지만 정작 본인은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그는 평생이 걸리더라도 해결해야 할 숙제와 씨름 중이다. 다름 아닌 소림 무술을 능가하는 새로운 무술을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소림 제자이자 소림권의 달인인 그가 왜 새로운 무술을 만들려고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만약 소림에서 파문당했다면 그 분풀이를 하기 위함일 것이고, 소림 무술에 만족을 못하고 스스로 하산했다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도전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물론 단순히 천재의 심심풀이 여가 활용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새로운 무술, 지금껏 보지 못한 무술, 기존의 힘에 대한 개념을 뒤집는 뭔가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것이 뭔지는 자신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