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5. 15:32ㆍ 인물열전
進高麗史節要箋
修史官
[修史官]
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右議政 領集賢殿 經筵事 監春秋館事 世子傅臣 金宗瑞
正憲大夫 工曹判書 集賢殿大提學 知經筵 春秋館事 兼成均大司成臣 鄭麟趾
資憲大夫 議政府右參贊 集賢殿提學 知春秋館事 世子右賓客臣 許翊
嘉善大夫 藝文館提學 同知春秋館事 世子左副賓客臣 李先齊
嘉善大夫 吏曹參判 修文殿提學 同知 經筵 春秋館事臣 李季甸
通政大夫 集賢殿副提學 知製 敎 世子左輔德 兼春秋館編修官臣 辛碩祖
中直大夫 集賢殿直提學 知製 敎 世子右輔德 兼春秋館記注官 知承文院事臣 申叔舟
中訓大夫 集賢殿直提學 知製 敎 經筵侍讀官 兼春秋館記注官臣 朴彭年
奉正大夫 直集賢殿 知製 敎 世子左弼善 兼左中護 春秋館記注官臣 金禮蒙
奉列大夫 守藝文館直提學 兼春秋館記注官臣 金孟獻
朝奉大夫 集賢殿應敎 知製 敎 世子左文學 兼春秋館記注官臣 梁誠之
通德郞 集賢殿校理 知製 敎 經筵副檢討官 兼春秋館記注官臣 李芮
通善郞 吏曹正郞 兼春秋館記注官臣 金之慶
通善郞 成均直講 兼春秋館記注官臣 金閏福
奉直郞 守成均直講 兼東部儒學敎授官 春秋館記注官臣 金漢啓
奉直郞 集賢殿副校理 知製 敎 世子右文學 兼春秋館記事官臣 柳誠源
奉訓郞 集賢殿副校理 知製 敎 世子左司經 兼春秋館記事官臣 李克堪
奉訓郞 承文院校理 知製 敎 兼春秋館記事官臣 尹起畎
奉訓郞 行工曹佐郞 兼春秋館記事官臣 朴元貞
承議郞 成均注簿 兼春秋館記事官臣 金礩
承訓郞 成均注簿 兼中部儒學敎授官 春秋館記事官臣 洪若治
承訓郞 行司贍注簿 兼春秋館記事官臣 李孝長
承訓郞 行司醞注簿 兼春秋館記事官臣 李翊
宣務郞 行藝文奉敎 兼春秋館記事官臣 全孝宇
務功郞 藝文奉敎 兼春秋館記事官臣 李尹仁
啓功郞 行藝文待敎 兼春秋館記事官臣 金勇
啓功郞 行藝文檢閱 兼春秋館記事官臣 韓瑞鳳
通仕郞 行藝文檢閱 兼春秋館記事官臣 尹子榮
[출처] 고려사절요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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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세종
부록
세종실록 편수관 명단
○경태(景泰 3년 임신(壬申) 3월에 춘추관(春秋館)이 어명(御命)을 받아 편찬(編纂)을 시작하여 경태 5년 갑술(甲戌) 3월에 이를 끝내었다.
찬수관(纂修官) 【전후관(前後官)을 아울러 기록한다.】
감관사(監館事)
수충 위사 협찬 정난 공신 대광 보국 숭록 대부 의정부 좌의정 영집현전 경연사 하동 부원군(輸忠衛社協贊靖難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領集賢殿經筵事河東府院君) 신(臣) 정 인지(鄭麟趾)
지관사(知館事)
자헌 대부 예조 판서 지경연사(資憲大夫禮曹判書知經筵事) 신(臣) 김 조(金銚)
수충 위사 협찬 정난 공신 자헌 대부 병조 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경연사 겸 성균 대사성 한산군(輸忠衛社協贊靖難功臣資憲大夫兵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經筵事兼成均大司成韓山君) 신(臣) 이 계전(李季甸)
자헌 대부 이조 판서 집현전 제학 동지경연사(資憲大夫吏曹判書集賢殿提學同知經筵事) 신(臣) 정 창손(鄭昌孫)
동지관사(同知館事)
가선 대부 이조 참판 집현전 제학(嘉善大夫吏曹參判集賢殿提學) 신(臣) 신 석조(辛碩祖)
수충 위사 협찬 정난 공신 가선 대부 이조 참판 집현전 제학 영성군(輸忠衛社協贊靖難功臣嘉善大夫吏曹參判集賢殿提學寧城君) 신(臣) 최 항(崔恒)
편수관(編修官)
통정 대부 집현전 부제학 지제교 경연 시강관(通政大夫集賢殿副提學知製敎經筵侍講官) 신(臣) 박 팽년(朴彭年)
통정 대부 예조 참의(通政大夫禮曹參議) 신(臣) 어 효첨(魚孝瞻)
통정 대부 집현전 부제학 지제교 경연 시강관(通政大夫集賢殿副提學知製敎經筵侍講官) 신(臣) 하 위지(河緯地)
수충 정난 공신 사간원 좌사간 대부 지제교(輸忠靖難功臣司諫院左司諫大夫知製敎) 신(臣) 성 삼문(成三問)
기주관(記注官)
통훈 대부 행집현전 직제학 지제교 경연 시독관 겸 지승문원사(通訓大夫行集賢殿直提學知製敎經筵侍讀官兼知承文院事) 신(臣) 신 숙주(申叔舟)
통훈 대부 행집현전 직제학 지제교 경연 시독관(通訓大夫行集賢殿直提學知製敎經筵侍讀官) 신(臣) 조 어(趙峿)
중직 대부 수판전의감사(中直大夫守判典醫監事) 신(臣) 김 맹헌(金孟獻)
중직 대부 집현전 직제학 지제교 경연 시독관(中直大夫集賢殿直提學知製敎經筵侍讀官) 신(臣) 이 석형(李石亨)
중직 대부 지승문원사(中直大夫知承文院事) 신(臣) 김 예몽(金禮蒙)
봉정 대부 수예문관 직제학(奉正大夫守藝文館直提學) 신(臣) 신 전(愼詮)
봉정 대부 직집현전 지제교 경연 검토관(奉正大夫直集賢殿知製敎經筵檢討官) 신(臣) 양 성지(梁誠之)
봉정 대부 성균 사예(奉正大夫成均司藝) 신(臣) 원 효연(元孝然)
봉렬 대부 수예문관 직제학(奉列大夫守藝文館直提學) 신(臣) 김 득례(金得禮)
봉렬 대부 수제용감 정(奉列大夫守濟用監正) 신(臣) 윤 사윤(尹士昀)
봉렬 대부 직예문관(奉列大夫直藝文館) 신(臣) 이 보흠(李甫欽)
조산 대부 집현전 응교 지제교 경연 검토관(朝散大夫集賢殿應敎知製敎經筵檢討官) 신(臣) 이 예(李芮)
선절 장군 용양 시위사 좌령 호군 겸 부지승문원사(宣節將軍龍驤侍衛司左領護軍兼副知承文院事) 신(臣) 김 인민(金仁民)
조봉 대부 수직집현전 지제교 경연 검토관(朝奉大夫守直集賢殿知製敎經筵檢討官) 신(臣) 유 성원(柳誠源)
조봉 대부 수성균 사예(朝奉大夫守成均司藝) 신(臣) 김 지경(金之慶)
통덕랑 성균 직강 겸 동부유학 교수관 승문원 교리(通德郞成均直講兼東部儒學敎授官承文院校理) 신(臣) 김 한계(金漢啓)
통선랑 수성균 사예(通善郞守成均司藝) 신(臣) 권 효량(權孝良)
통선랑 집현전 교리 지제교 경연 부검토관(通善郞集賢殿校理知製敎經筵副檢討官) 신(臣) 이 극감(李克堪)
통선랑 집현전 부교리 지제교 경연 부검토관(通善郞集賢殿副校理知製敎經筵副檢討官) 신(臣) 윤 기견(尹起畎)
봉직랑 수이조 정랑 겸 승문원 교리(奉直郞守吏曹正郞兼承文院校理) 신(臣) 조근(趙瑾)
봉직랑 수사간원 우헌납 지제교(奉直郞守司諫院右獻納知製敎) 신(臣) 최사로(崔士老)
봉직랑 수성균 직강(奉直郞守成均直講) 신(臣) 이함장(李諴長)
봉직랑 수성균 직강(奉直郞守成均直講) 신(臣) 최한경(崔漢卿)
기사관(記事官)
통선랑 행성균 주부 겸 중부유학 교수관(通善郞行成均注簿兼中部儒學敎授官) 신(臣) 김명중(金命中)
봉훈랑 집현전 부교리 지제교 경연 부검토관(奉訓郞集賢殿副校理知製敎經筵副檢討官) 신(臣) 서강(徐岡)
봉훈랑 교서 교리 겸 승문원 교리(奉訓郞校書校理兼承文院校理) 신(臣) 성희(成熺)
봉훈랑 행이조 좌랑(奉訓郞行吏曹佐郞) 신(臣) 김필(金㻶)
봉훈랑 행공조 좌랑(奉訓郞行工曹佐郞) 신(臣) 이익(李翊)
봉훈랑 행승문원 부교리(奉訓郞行承文院副校理) 신(臣) 이효장(李孝長)
승의랑 승문원 부교리(承議郞承文院副校理) 신(臣) 홍약치(洪若治)
승의랑 승문원 부교리(承議郞承文院副校理) 신(臣) 강미수(姜眉壽)
승의랑 행훈련 주부(承議郞行訓鍊注簿) 신(臣) 유자문(柳子文)
승훈랑 성균 주부 겸 중부유학 교수관(承訓郞成均注簿兼中部儒學敎授官) 신(臣) 이계전(李季專)
승훈랑 성균 주부 겸 서부유학 교수관(承訓郞成均注簿兼西部儒學敎授官) 신(臣) 이문경(李文炯)
진용 교위 우군 섭부사직 겸 승문원 부교리(進勇校尉右軍攝副司直兼承文院副校理) 신(臣) 이유의(李由義)
선교랑 수성균 주부 겸 남부유학 교수관(宣敎郞守成均注簿兼南部儒學敎授官) 신(臣) 전효우(全孝宇)
선무랑 통례문 봉례랑(宣務郞通禮門奉禮郞) 신(臣) 이윤인(李尹仁)
선무랑 도관 주부(宣務郞導官注簿) 신(臣) 김용(金勇)
선무랑 행예문 봉교(宣務郞行藝文奉敎) 신(臣) 한서봉(韓瑞鳳)
무공랑 예문 봉교(務功郞藝文奉敎) 신(臣) 박찬조(朴纘祖)
선무랑 행예문 대교(宣務郞行藝文待敎) 신(臣) 윤자영(尹子濚)
계공랑 행예문 대교(啓功郞行藝文待敎) 신(臣) 이제림(李悌林)
통사랑 예문 대교(通仕郞藝文待敎) 신(臣) 권윤(權綸)
계공랑 행예문 검열(啓功郞行藝文檢閱) 신(臣) 민정(閔貞)
통사랑 행예문 검열(通仕郞行藝文檢閱) 신(臣) 권이경(權以經)
통사랑 행예문 검열(通仕郞行藝文檢閱) 신(臣) 김겸광(金謙光)
승사랑 행예문 검열(承仕郞行藝文檢閱) 신(臣) 이문환(李文煥)
종사랑 예문 검열(從仕郞藝文檢閱) 신(臣) 최한보(崔漢輔)
【원전】 6 집 214 면
【분류】 *역사-편사(編史)
[주D-001]景泰 : 명나라 대종(代宗)의 연호. 조선 문종(文宗) 2년 곧 A.D.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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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문종 즉위년 경오(1450,경태 1)
9월7일 (무신)
공조 판서 정인지가 문과의 가액 선발 절목을 아뢰자 의정부 등과 의논하게 하다
공조 판서(工曹判書) 정인지(鄭麟趾)가 문과(文科)의 가액(加額)과 시험보아 뽑는 절목(節目)을 아뢰니, 의정부(議政府)·예조(禮曹)·집현전(集賢殿)·춘추관(春秋館)으로 하여금 이를 의논하게 하였다.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연(河演)·예조 판서(禮曹判書) 허후(許詡)·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이선제(李先齊)·예조 참판(禮曹參判) 정척(鄭陟) 등이 의논하기를,
“문과(文科)의 수효는 33인인데도 문관(文官)의 참외(參外)가 55인이므로, 해마다 자리에 결원(缺員)이 많이 있게 되니 메워 보충하지 못한다면 부득이해서 또 별시(別試)를 설치하여 뽑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자(士子)가 학업(學業)을 배양(培養)할 여가도 없으며, 마음도 또한 부동(浮動)하게 되어, 제배(儕輩)의 저술을 다투어 베껴서 요행을 바라는 풍습(風習)이 크게 일어납니다. 또 지방의 과거(科擧) 보는 선비들이 시험에 참여하지 못하여 선비를 뽑는 길이 넓지 못하니, 마땅히 시험보는 해에 50인을 뽑고, 별시(別試)는 없애고, 그들로 하여금 학업(學業)에 전심(專心)하도록 하소서. 또 주군(州郡)의 교관(敎官)이 결원(缺員)이 있으면 대개 교도(敎導)로써 임명하여 사유(師儒)가 많지 못한 것은 또한 그 폐단입니다.”
하였다. 좌참찬(左參贊) 정갑손(鄭甲孫)은 의논하기를,
“33인이 정원(定員)은 《육전(六典)》에 기재되어 있는데, 지금의 인재(人才)가 옛날보다 더 많지도 않고 또 관직을 비우고 결원(缺員)되는 폐단도 없으니, 마땅히 다시 성헌(成憲)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시학(視學)하고 선비를 뽑는 것은 조종(祖宗)의 문치(文治)를 숭상하고 학문을 일으키는 성대(盛大)한 행사이니, 50명의 정원을 뽑고서 시학까지 폐지하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합니다.”
하였다. 좌찬성(左贊成) 김종서(金宗瑞)는 의논하기를,
“신이 지난 해에 문과(文科)의 정원 수[額數]를 첨가(添加)하기를 청하니, 세종(世宗)께서 신에게 이르시기를, ‘33인 안에서도 혹시 문리(文理)를 통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하물며 감히 많이 뽑을 수가 있는가?’ 하시므로, 신이 또 청하기를, ‘그렇다면 재능에 따라서 선비를 뽑되, 혹은 30명에서 그치기도 하고, 혹은 40명에서 그치기도 하고, 혹은 50명에서 그치기도 하면서, 50명에 지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세종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그렇다면 유사(有司)가 된 사람이 비록 혹시 재주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50명을 채워 뽑게 될 것이니, 선거(選擧)가 정도에 지나침이 장차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시므로, 신이 부끄러워 땀을 흘리면서 능히 대답하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성훈(聖訓)이 매우 간절하고 환하게 명백하므로 감히 경솔히 의논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하연(河演)은 의논하기를,
“문과(文科)의 초장 의의(初場疑義)는 지금에 와서 익히는 것이 아니고, 또 추장(秋場)은 해가 짧으니, 마땅히 표(表) 1장(場), 부(賦) 1장(場), 책(策) 1장(場)만 시험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김종서(金宗瑞)·정갑손(鄭甲孫)·허후(許詡) 등이 의논하기를,
“초장(初場)에는 경학(經學)을 시험하고, 중장(中場)에는 문사(文詞)를 시험하고, 종장(終場)에는 시무(時務)를 시험하게 되니, 과거(科擧)의 격례(格例)에 해가 짧고 긴 이유로써 경학(經學)을 시험보는 것을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또 과거 보는 선비가 의의(疑義)를 처음 익히고 난 후에 생원시(生員試)에 나가고, 의의(疑義)를 익히지도 않고서 사부(詞賦)와 책문(策問)을 익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물며 경학(經學)을 밝히는 것은 어찌 반드시 상시로 이습(肄習)한 연후에야 능히 의의(疑義)를 제술할 수가 있겠습니까? 초장(初場)은 그전대로 따라 의의(疑義)로써 시험하게 하소서.”
하였다. 이선제(李先齊)는 의논하기를,
“추장(秋場)은 해가 짧으니, 초장(初場)의 의의(疑義) 내에서 오경(五經)의 경의(經義)를 각기 1개씩만 시험하고 의문(疑問)은 제외시키고, 중장(中場)의 부·표(賦表) 내에서 표(表)만 시험하고 부(賦)는 제외시키고, 종장(終場)은 그전대로 따라 하게 하소서.”
하였다. 정척(鄭陟)은 의논하기를,
“초장(初場)은 의의(疑義)를 시험하고, 중장(中場)은 부·표(賦表)를 시험하는 것은 《육전(六典)》에 기재된 바이니 다시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장(秋場)은 해가 짧으니, 초장(初場)은 의의(疑義)를 시험하고, 중장(中場)은 표(表)를 시험하고, 종장(終場)은 그전대로 따라 하소서.”
하였다.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신석조(辛碩祖), 직제학(直提學) 노숙동(盧叔仝), 직전(直殿) 이석형(李石亨), 응교(應敎) 김예몽(金禮蒙), 교리(校理) 이개(李塏), 수찬(修撰) 유성원(柳誠源)·이극감(李克堪)·서거정(徐居正), 부수찬(副修撰) 윤기견(尹起畎)·윤자운(尹子雲)·허조(許慥), 박사(博士) 서강(徐岡)·한계희(韓繼禧)·최선복(崔善復),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 김순(金淳)·김지경(金之慶), 기사관(記事官) 김한계(金漢啓)·김명중(金命中) 등은 의논하기를,
“과목(科目)의 정원[額]은 고려(高麗)에서부터 시작하여 시행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진실로 고칠 만한 폐단은 없겠습니다. 지금 시장(試場)의 일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다만 33인만 뽑더라도 정문(程文)이 격식에 맞는 것은 1, 2편(篇)에 지나지 않으므로, 겨우 1, 2분(分)을 얻은 사람까지도 또한 모두 뽑아서 그 수효를 채우게 되니, 지금 만약 정원을 더 보탠다면 아마 취재(取才)할 만한 것이 없을 듯합니다. 만약 문신(文臣) 참외(參外)의 자리에 결원을 보충할 수 없다는 일을 가지고 말한다면, 삼관(三館)의 사무는 바쁘지 않으므로 1식년(式年) 동안에 비록 결원(缺員)이 있더라도 특별히 폐단의 일은 없을 것이니 정원을 더 보탤 필요는 없습니다. 초장(初場)에서 의의(疑義)를 시험하는 것은 그들이 경서(經書)를 강습(講習)했는가를 보려고 하는 것이니 그런 까닭으로 경서(經書)를 강(講)하지 않았으면 반드시 의의(疑義)로써 시험하게 되며, 또 삼장(三場)에는 부·표(賦表)와 책문(策問)으로써 시험하게 되니, 이장(二場)을 하는 것은 많고 적은 것을 참작하여 헤아려 제도를 만든 것인데, 지금 의의(疑義)를 없애고 부·표(賦表)를 가지고 나누어 초장(初場)·중장(中場)을 삼는다면 이는 경서(經書)는 폐지하고서 다만 이장(二場)으로써 선비를 뽑는 것입니다. 만약 추장(秋場)이 해가 짧다고 한다면 책문(策問)을 제술하는 공력(功力)도 부·표(賦表) 양편(兩篇)보다 아래가 되지는 않을 것인데, 책문(策問)을 이미 나눌 수 없는데도 어찌 부·표(賦表)를 나누어 이장(二場)으로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 중국의 해시(解試)도 모두 가을에 하고, 삼장(三場)의 증감(增減)도 없는데, 하물며 부(賦)는 다만 사장(詞章)의 소기(小技)인데, 부(賦) 1편(篇)을 가지고 책문(策問)에 준하여 나누게 된다면 경중(輕重)이 균등(均等)하지 않으므로 실제로 옳지 않다고 할 수 있으니, 다시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물며 이 두 법은 모두 《육전(六典)》에 기재되어 있으며, 정원을 첨가해야 한다는 일은 또한 세종조(世宗朝)에서도 헤아려 의논했는데도 마침내 시행되지 못했는데, 지금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신 처음에 갑자기 조종(祖宗)의 성헌(成憲)을 고치시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합니다.”
하였다. 집현전 행 직제학(集賢殿行直提學)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이예(李芮)·이승소(李承召),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 김윤복(金閏福)·박원정(朴元貞)·전효우(全孝宇)·금이영(琴以詠)·김용(金勇) 등은 의논하기를,
“우리 국조(國朝)의 식년(式年) 과목(科目)의 수효는 시행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진실로 구습(舊習)에 따라 행해야 하겠지마는, 그러나 시대에 따라 손익(損益)이 된다면 법도 또한 변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역대(歷代)의 선비를 뽑는 정원[額]은 많고 적은 것이 정원이 없는데, 우리 국조(國朝)의 33인의 정원은 어디에 의거해서 정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선비를 뽑는 것은 관직에 보충하려고 하는 일인데, 지금에는 문관(文官)의 결원이 많으므로 반드시 변경하여 융통시켜서 그전의 정원보다 조금 증가시켜 관직에 결원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니, 다만 50인으로써만 제한하여 그 얻은 바 정문(程文)에 따라서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할 것입니다. 초장(初場)의 의의(疑義)는 시험에 나가는 사람이 누구나 평소부터 이습(肄習)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종장(終場)의 대책(對策)이 초장(初場)의 의의(疑義)와 중장(中場)의 부·표(賦表)와 많고 적은 것이 서로 비등(比等)하니, 반드시 해가 짧은 이유로써 유독 초장과 중장만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 경중(輕重)을 비교하여 그 폐해를 바로잡으려고 한다면 잗다랗고 번거로움이 없지 않을 것이니 삼장(三場)의 제술(製述)하는 법은 진실로 그전대로 따라 시행해야 할 것이며, 별시(別試)는 선비의 마음으로 하여금 경솔히 흔들리게 할 것이니 자주 시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 양성지(梁誠之)는 의논하기를,
“문과(文科)의 별시(別試)는 본디는 좋은 뜻이었지마는, 그러나 인심(人心)이 부동(浮動)되어 능히 전심(專心)해서 학업을 익힐 수가 없으니 그 폐단이 더욱 심합니다. 지금부터는 별시는 없애고 식년(式年)에 이르러 50인만 뽑아서 일정한 정원[定額]으로 삼도록 하소서. 초장(初場)의 의의(疑義)는 본디는 사서(四書)의 의문(疑問)되는 점과 오경(五經)의 뜻[義]만 상고하였는데, 지금 임시로 강경(講經)을 폐지하고, 또 의의(疑義)까지 없애게 되니, 이는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을 모두 합쳐서 폐지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부·표(賦表)를 나누어 이장(二場)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모람(冒濫)될 폐단이 있을 것이니, 그전대로 따라 행하여 의의(疑義)로써 시험하게 하소서.”
하였다.
【원전】 6 집 279 면
【분류】 *인사-선발(選拔)
[주D-001]가액(加額) : 첨가한 정원.
[주D-002]참외(參外) : 7품 이하의 계급.
[주D-003]시학(視學) : 임금이 성균관(成均館)에 거둥하여 유생(儒生)들이 공부하는 상황을 돌아보던 일. 이때 석전(釋奠)을 행하고 유생을 시험하여 인재(人才)를 뽑는 것이 상례였음.
[주D-004]추장(秋場) : 가을의 과장(科場).
[주D-005]과목(科目) : 과거(科擧).
[주D-006]정문(程文) : 과거를 보일 때 독권관(讀券官)이 채점(採點)을 하기 위하여 만들던 모범 답안지(答案紙).
[주D-007]삼관(三館) : 성균관(成均館)·교서관(校書館)·예문관(藝文館).
[주D-008]해시(解試) : 중국의 향시(鄕試).
[原文]
○工曹判書鄭麟趾, 啓文科加額, 及試取節目, 令政府、禮曹、集賢殿、春秋館, 議之。 領議政府事河演、禮曹判書許詡、同知春秋館事李先齊、禮曹參判鄭陟等議: “文科之數三十三人, 而文官參外五十五人, 每年多有窠闕, 不能塡補, 則不得已, 又設別試以取之。 由是士子, 學業未暇培養, 心亦浮動, 競寫儕輩之述, 僥倖之風大起。 又外方擧子, 不得與試, 取士之路不廣, 宜於試年, 取五十人, 除別試, 使之專心學業。 且州郡敎官有闕, 率以敎導差之, 師儒不廣, 亦其弊也。” 左參贊鄭甲孫議: “三十三人之額, 載在《六典》, 今之人才, 不加多於昔日, 又無曠官闕職之弊, 不宜更改成憲。 視學取士, 祖宗右文興學之盛擧, 以取五十之額, 而竝罷視學, 尤爲不可。” 左贊成金宗瑞議臣於往年, 請加文科額數, 世宗謂臣曰: ‘三十三人內, 或有不成文理者, 況敢多又?’ 臣又請曰: “然則隨才而取, 或三十而止, 或四十而止, 或五十而止, 毋過五十何如?’ 世宗曰: ‘若然則爲有司者, 雖或非才, 必取盈五十, 選擧猥濫, 將自此始矣。’ 臣汗赧不能對, 以今思之, 聖訓深切著明, 不敢輕議。” 河演議文科初場疑義, 非今所肄。 且秋場日短, 宜試表一場、賦一場、策一場。” 金宗瑞、鄭甲孫、許詡等議: “初場試經學, 中場試文詞, 終場試時務, 科擧格例, 不可以日之短長, 而廢試經學。 且擧子, 初習疑義, 赴生員試, 未有不習疑義, 而習詞賦、策問者也。 況明經學, 則何必常常肄習, 然後能製疑義乎? 初場仍舊, 試以疑義。” 李先齊議: “秋場日短, 初場疑義內試五經義各一, 除疑問, 中場賦、表內, 試以表除賦, 終場仍舊。” 鄭陟議: “初場疑義, 中場賦、表, 《六典》所載, 不可更改。 然秋場日短, 初場義, 中場表, 終場仍舊。” 集賢殿副提學辛碩祖、直提學盧叔仝、直殿李石亨、應敎金禮蒙、校理李塏、修撰柳誠源ㆍ李克堪ㆍ徐居正、副修撰尹起畎ㆍ尹子雲、許慥、博士徐岡ㆍ韓繼禧ㆍ崔善復、春秋館記注官金淳ㆍ金之慶、記事官金漢啓ㆍ金命中等議: “科目之額, 始自高麗, 行之已久, 固無可改之弊。 以今試場之事觀之, 雖只取三十三人, 程文之中式者, 不過一二篇, 僅得一二分者, 亦皆取之, 以充其數, 今若加額, 恐無可取之才也。 若以文臣參外窠闕未充言之, 三館事務不劇, 一式年之閒, 雖有闕員, 別無弊事, 不必加額。 初場試疑義, 欲觀其習經書也。 故不講經, 則必以疑義。 且三場, 以賦、表與策, 爲二場者, 所以酌重多小而爲之制也。 今除疑義, 而以賦、表分爲初、中場, 則是廢經書, 而只以二場取之也。 若以秋場日短, 則製策之功, 不下於賦、表兩篇, 而策問旣不得分之, 何必分賦、表爲二場? 且中國解試皆以秋, 而三場無所增減。 況賦特詞章之小技, 以賦一篇, 准策給分, 則輕重不均, 實謂不可, 不須更改。 況此二法, 皆載《六典》, 加額之事, 亦於世宗朝擬議, 而竟不行, 今當卽位之初, 遽改祖宗成憲, 尤爲不可。” 集賢殿行直提學崔恒、副校理李芮ㆍ李承召、春秋館記事官金閏福ㆍ朴元貞ㆍ全孝宇、琴以詠、金勇等議: “我朝式年科目之數, 行之已久, 固宜因循, 然因時損益, 則法亦不得不變。 歷代取士之額, 多小無定, 我朝三十三人之額, 未知何所據而定耶。 取士欲以補官, 今也文官多缺, 要必變而通之, 稍增前額, 使官無缺員, 但限以五十人, 而隨其所得程文, 以爲多小。 初場疑義, 則赴試者, 誰非素所肄習? 且終場對策, 與初場疑義、中場賦表, 多小相等, 不必以日短, 獨減初、中場也。 如欲盡較其輕重, 以矯其弊, 則不無細碎, 三場製述之法, 固宜仍舊。 若別試, 則令士心輕擾, 不可數行。” 集賢殿校理梁誠之議: “文科別試, 本是美意, 然人心浮動, 不能專心肄業, 其弊尤甚。 自今除別試, 至式年, 取五十人, 以爲定額。 初場疑義, 本以考四書之疑、五經之義, 今權罷講經, 而又除疑義, 是擧四書五經而廢之也。 況賦、表分爲二場, 則必有冒濫之弊, 仍舊試以疑義。”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30장 A면
【영인본】 6책 279면
【분류】 *인사-선발(選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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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단종 즉위년 임신(1452,경태 3)
6월20일 (신사)
예문 봉교 전효우 등이 경연 및 모든 일을 의논함에 사관이 참여하도록 상소하다
예문 봉교(藝文奉敎) 전효우(全孝宇) 등이 상서하기를,
“신 등은 그윽이 듣건대 예전에 사관(史官)을 두어 시사(時事)를 기록하는 것을 맡게 한 것은 후세의 귀감이 되게 한 것입니다. 본조(本朝)에서 이 예를 모방하여 사관으로 하여금 윤번으로 들어와 경연에서 정사(政事)를 보게 하였습니다. 세종조에 있어 지신사(知申事) 조서로(趙瑞老)가 일을 아뢸 때에 사관을 꺼리어 문 지키는 자로 하여금 저지(沮止)하게 하였는데, 세종이 알고 조서로에게 명하기를, ‘이제부터 사관을 금하지 말라.’ 하고, 그 뒤에 일을 기록하는 것이 넓지 못하다 하여 겸춘추(兼春秋)의 직책을 증가하고, 또 정사(政事)를 볼 때에 사관 두 사람이 함께 전서합(殿西閤) 밖에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대행 대왕께서 신 등의 상소로 인하여 신 등으로 하여금 나누어 동서(東西)로 들어오게 하고, 또 풍우가 있는 날을 염려하여 미처 일 아뢰는 것을 듣기 전에 전내(展內)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여 때없이 알현(謁見)하게까지 하였고, 대소 신하와 대성(臺省)도 또한 들어와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니, 선왕께서 사관을 대하고 기사(記事)를 중하게 여긴 뜻을 대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상 전하께서 새로 천명을 이으셨으니, 모든 시위(施爲)가 마땅히 이루어진 법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근자에 일을 의논할 때에 사관이 혹 참여하여 듣지 못하니 신 등의 유감됨이 없지 못하였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또한 경연에도 입시(入侍)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더욱 유감됨이 있습니다. 만일 전하가 바야흐로 최질(衰絰)에 있어서 대인(待人)·접물(接物)하는 것을 평상 의절(儀節)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면, 무릇 직책이 경연을 띤 대신이 모두 들어오는데 어찌 홀로 한 사관이 들어오는 것이 번거로운 것이 되겠습니까? 하물며 전하가 어린 나이에 위(位)를 이어서 처음으로 경연(經筵)에 나아가는데, 사관을 물리쳐서 참여하지 못하게 하면 후세의 의논이 어떠하겠습니까? 만일 참찬관(參贊官)이 또한 춘추관의 직임을 겸하여야 족히 임금의 거지(擧止)를 쓸 수 있다고 한다면, 참찬관으로서 춘추를 겸하지 않은 자도 간혹 있으니 또한 장차 어찌 하겠습니까?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그 덕을 잇는 것은 처음 정사에 있지 않은 것이 없다.’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예전 헌장을 좇으시어 경연 및 모든 일을 의논함에 아울러 사관으로 하여금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여 일을 기록하는 것을 넓히면 공도(公道)에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때에 윤자영(尹子濚)이 예문 검열(藝文檢閱)이 되어 경연에서 사관을 물리치는 것이 불편한 사건을 들어 정부에 고하였는데, 거짓 응하기를 ‘장차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겠다.’ 하고는 마침내 따르지 않았다.
【원전】 6 집 512 면
【분류】 *역사-사학(史學) / *왕실-경연(經筵)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政論)
[原文]
○辛巳/藝文奉敎全孝宇等上書曰:
臣等竊聞, 古者, 置史官, 掌記時事, 爲後世鑑。 本朝倣此例, 令史官輪入, 視事經筵。 在世宗朝, 知申事趙瑞老啓事時, 忌史官, 令守門者沮之。 世宗知之, 命瑞老曰: “自今, 毋禁史官。” 厥後謂記事未廣, 增兼春秋之職, 且視事時, 史官二人俱入殿西閤外。 大行大王因臣等之疏, 令臣等分入東西, 又慮風雨日, 未及聞啓事, 許入殿內, 至於無時賜見, 大小臣及臺省, 亦許入參, 先王待史官、重記事之意, 蓋可想已。 今我主上殿下, 新服厥命, 凡所施爲, 宜遵成憲, 近者議事時, 史官或不得與聞, 臣等不能無憾, 乃至今日, 亦於經筵不許入侍, 尤有憾焉。 若曰: “殿下方在衰絰, 待人接物, 不可如常儀。” 則凡職帶經筵大臣, 皆得入焉, 何獨一史官之入, 爲煩乎? 況殿下幼沖嗣位, 初御經筵, 辟史官不參, 於後世之議, 何如? 若曰: “參贊官亦兼春秋, 足以書君擧。” 則參贊官未兼春秋者, 間或有之, 亦將如之何哉? 《書》曰: “嗣厥德, 罔不在初服。” 伏望殿下, 率由舊章, 許於經筵及凡有議事, 竝令史官獲參, 以廣記事, 公道幸甚。
啓下議政府。 時, 尹子濚爲藝文檢閱, 將經筵屛史官, 不便事件, 告于政府, 佯應曰: “將更議施行。” 竟不從。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7장 A면
【영인본】 6책 512면
【분류】 *역사-사학(史學) / *왕실-경연(經筵)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政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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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단종 즉위년 임신(1452,경태 3)
6월21일 (임오)
허후가 사관 전효우에게 사관을 경연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해 해명하다
허후(許詡)가 춘추관에 앉아 있는데 사관(史官) 전효우(全孝宇)가 행주(行酒)하였다. 허후가 말하기를,
“대간과 사관(史官)이 경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그르게 여기고 사관은 상서하여 논계(論啓)하기까지 하였는데, 대신의 의논은 대간과 사관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어린 임금이 부끄러워서 편안하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고 다른 뜻은 없다.”
하였다. 전효우가 말하기를,
“우리들의 직분이라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그의 동료 윤자영(尹子濚)이 듣고 전효우에게 말하기를,
“왜 힘껏 말하여 다투지 않았는가?”
하니, 전효우가 말하기를,
“나는 이존충(李存忠)일 뿐이다. 어찌 반드시 항거하는 말로 대신의 노여움을 격동시킬 것이 있는가?”
하였다. 처음에 대간과 사관을 경연에 들이지 않는다는 의논은 허후가 실로 주장하였다. 옛날에 이존충이란 사람이 녹사(錄事)가 되어 근무한 것이 만기가 되어 보관(補官)하게 되었는데, 죄와 견책을 얻을까 두려워하여 항상 엎드려 숨어서 나오지 않고 보관하기만 기다렸다. 때에 전효우가 또한 벼슬을 옮기게 되었기 때문에 이 말이 있었다.
【원전】 6 집 514 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인사(人事)
[原文]
○許詡坐春秋館, 史官全孝宇行酒, 詡曰: “臺諫、史官以不參經筵爲非, 史官至上書論啓, 大臣之議以爲, 臺諫、史官俱入, 則恐幼主羞澁, 未安, 無他意也。” 孝宇曰: “我等職分, 不敢不言。” 其僚尹子濚聞之, 謂孝宇曰: “何不力陳以爭之?” 孝宇曰: “我是存忠, 何必抗言以激大臣之怒?” 初, 臺諫、史官不入經筵之議, 詡實主之。 昔有李存忠爲錄事, 及仕滿當補官, 恐獲罪譴, 常伏匿不出, 以待補官。 時, 孝宇亦當遷官, 故有是語。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0장 A면
【영인본】 6책 514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인사(人事)
세조 1년 을해(1455,경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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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세조 1년 을해(1455,경태 6)
12월27일 (무진)
의정부에 전지하여 연창위 안맹담 등을 원종 공신에 녹훈하다②
예조 판서(禮曹判書) 김조(金銚)·호조 판서(戶曹判書) 이인손(李仁孫)·지돈녕(知敦寧) 강석덕(姜碩德)·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연(河演)·예조 판서 이승손(李承孫)·동지돈녕(同知敦寧) 노물재(盧物載)·대사헌(大司憲) 노숙동(盧叔仝)·판중추원부사(判中樞院副使) 김순(金淳)·동지중추(同知中樞) 황치신(黃致身)·부윤(府尹) 안숭효(安崇孝)·좌참찬(左參贊) 안숭선(安崇善)·도절제사(都節制使) 김윤수(金允壽)·부윤 마승(馬勝)·도절제사 이종목(李宗睦)·행 첨지중추(行僉知中樞) 김개(金漑)·도절제사 하한(河漢)·행 첨지돈녕(行僉知敦寧) 김한(金澣)·판중추(判中樞) 조혜(趙惠)·판한성(判漢城) 기건(寄虔)·판한성 이견기(李堅基)·좌참찬(左參贊) 이숙치(李叔畤), 행 상호군(行上護軍) 이령(李齡)·연경(延慶), 동지돈녕(同知敦寧) 심회(沈澮)·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심결(沈決)·증 사헌부 감찰(贈司憲府監察) 심준(沈濬), 도관찰사(都觀察使) 김연지(金連枝)·조서안(趙瑞安), 지중추(知中樞) 김청(金聽)·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김황(金滉)·도절제사(都節制使) 한서룡(韓瑞龍)·행 상호군(行上護軍) 박거겸(朴居謙)·부윤(府尹) 이호성(李好誠)·중추원 부사 이사명(李思明)·관찰사(觀察使) 김광수(金光睟)·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유자해(柳子偕)·동지돈녕(同知敦寧) 박거소(朴去疎)·동지중추(同知中樞) 설순(偰循)·제학(提學) 유효통(兪孝通)·참판(參判) 유의손(柳義孫)·처치사(處置使) 이사평(李士平)·도관찰사(都觀察使) 정척(鄭陟)·부윤(府尹) 변효문(卞孝文)·판목사(判牧使) 이수의(李守義)·파원 위(坡原尉) 윤평(尹坪)·첨지중추(僉知中樞) 이휴(李携)·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송복원(宋復元)·첨지중추 맹효증(孟孝曾)·부윤 이명겸(李鳴謙)·처치사(處置使) 유강(柳江)·참판(參判) 신석조(辛碩祖)·참의(參議) 어효첨(魚孝瞻)·지돈녕(知敦寧) 이선(李渲), 부제학(副提學) 김예몽(金禮蒙)·송처관(宋處寬), 중추원 사(中樞院使) 이승평(李昇平)·절제사(節制使) 이종효(李宗孝)·판도호부사(判都護府事) 변효경(卞孝敬)·절제사 유익명(兪益明)·관찰사(觀察使) 유규(柳規)·참판 이보정(李補丁)·관찰사 이석형(李石亨)·행 목사(行牧使) 김억지(金億之)·행 상호군(行上護軍) 박소(朴昭)·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중추원 사 이변(李邊)·도절제사 이화(李樺)·절제사 강순(康純)·상호군 이효례(李孝禮)·첨지중추 마흥귀(馬興貴)·직제학 양성지(梁誠之)·첨지중추 낭이승거(浪伊升巨)·상호군 선석년(宣錫年)·사헌 집의(司憲執義) 이예(李芮)·겸 군기 감정(兼軍器監正) 심중은(沈仲恩)·직제학 강희안(姜希顔)·부정(副正) 주상례(朱尙禮)·우사간(右司諫) 이영견(李永肩)·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 김득례(金得禮)·장령(掌令) 신영손(申永孫)·경력(經歷) 심치(沈寘)·주부(注簿) 강자의(姜子儀)·판사(判事) 매우(梅佑)·상호군(上護軍) 조지당(趙之唐)·직집현전(直集賢殿) 이승소(李承召)·판관(判官) 유균(柳均)·사직(司直) 이임미(李林美)·부사직(副司直) 민운(閔惲)·직제학(直提學) 김지경(金之慶)·행 사직(行司直) 김길호(金吉浩)·호군(護軍) 김유선(金有銑)·군사(郡事) 윤기견(尹起畎)·양운석(梁雲石), 행 내시부사(行內侍府事) 이중근(李重斤)·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 김인민(金仁民)·부정(副正) 권효량(權孝良)·호군(護軍) 김문달(金文達)·행 사정(行司正) 서수(徐綬)·정랑(正郞) 강희맹(姜希孟)·검상(檢詳) 김위(金瑋)·사예(司藝) 김질(金礩)·정랑 홍연(洪演)·응교(應敎) 조근(趙瑾)·서령(署令) 김경손(金慶孫)·정랑 최사로(崔士老)·소윤(少尹) 장계증(張繼曾)·군사(郡事) 김윤복(金閏福)·소윤 강노(姜老)·판내시(判內侍) 홍득교(洪得敎)·행 동첨내시(行同僉內侍) 임동(林童)·행 동첨내시 이득부(李得富)·판내시 안노(安璐)·행 지내시(行知內侍) 윤득부(尹得富)·정랑(正郞) 김서진(金瑞陳)·군사(郡事) 전가생(田稼生)·주부(注簿) 홍일동(洪逸童)·응교(應敎) 서거정(徐居正)·군사 이유약(李有若)·도관찰사(都觀察使) 민건(閔蹇), 정랑 이문형(李文炯)·성임(成任)·강미수(姜眉壽), 좌랑(佐郞) 이계손(李繼孫)·행 부사직(行副司直) 오연(吳衍)·좌랑 배효숭(裵孝崇), 도사(都事) 강효문(姜孝文)·직강(直講) 이익(李翊)·좌랑 이윤인(李尹仁)·부정(副正) 최효생(崔孝生)·판사(判事) 선형(宣炯)·사직(司直) 이득림(李得霖)·호군(護軍) 지유원(池有源), 사직 맹득미(孟得美)·석자의(石子議), 좌랑(佐郞) 김덕원(金德源)·직강(直講) 이계전(李季專)·좌랑 안초(安迢)·교리(校理) 정문형(鄭文炯)·좌랑 오백창(吳伯昌)·사직(司直) 구문로(具文老)·행 사정(行司正) 허형손(許亨孫)·참군(參軍)·이숙기(李淑琦)·주부(注簿) 노경신(盧敬信)·행 사직(行司直) 황석생(黃石生)·행 부사정(行副司正) 유종화(柳從華)·행 사직 김일용(金日容)·사직 김효조(金孝祖)·호군(護軍) 민형손(閔亨孫)·행 사정(行司正) 양처공(梁處恭)·판관(判官) 홍귀해(洪貴海)·사정(史正) 홍백연(洪伯涓)·부사정(副司正) 김기(金耆)·직장(直長) 이인규(李仁畦),
부사직(副司直) 유산보(兪山寶)·조주(曹柱)·이종경(李宗慶)·이순경(李順慶), 행 사용(行司勇) 유포(柳晡), 현감(縣監) 이계중(李繼重)·이계중(李係重), 행 사직(行司直) 김경손(金敬孫)·상호군(上護軍) 이중윤(李中允)·직장(直長) 송숙기(宋叔琪)·호군 안운수(安雲壽)·주부(注簿) 안의(安義)·봉훈랑(奉訓郞) 김득문(金得門)·부지사(副知事) 민희(閔僖)·선무랑(宣務郞) 이옥림(李玉林)·행 판관(行判官) 박지(朴枝), 사직(司直) 홍효손(洪孝孫)·이중말(李仲末), 군사(郡事) 김증(金曾)·박종대(朴宗大), 호군 박훤(朴萱)·행 사정(行司正) 이윤약(李允若)·판사(判事) 조유신(趙由信), 군사(郡事) 이전수(李全粹)·조원희(趙元禧), 사인(舍人) 이효장(李孝長)·부사정(副史正) 최계근(崔繼根), 사정 이미성(李美成)·하숙전(河叔傳), 대호군(大護軍) 이거을다개(李巨乙多介)·행 호군(行護君) 김가신(金可伸), 행 사직(行司直) 장평(張平)·마우기(馬右其), 호군 낭삼파(浪三波)·사직 배우문(裵珝文)·대교(待敎) 이문환(李文煥)·사직 남치효(南致孝)·주부(注簿) 김석제(金石梯), 사알(司謁) 조이생(趙異生)·최유지(崔有池), 부사정(副司正) 이득행(李得行)·부사정 원처중(元處中)·사용(司勇) 김의지(金義智), 부사정 전습(田濕)·김순거(金舜擧)·김상미(金尙美), 직장(直長) 박서창(朴徐昌)·호군 조경지(趙敬智)·부사직(副史直) 주비(周備)·부사정 이숭무(李崇茂)·사약(司鑰) 진수(陳守)·사용 강자흥(姜子興)·판관 주호(朱瑚)·행 호군(行護君) 박수미(朴壽彌), 겸교리(兼校理) 전동생(田秱生)·조변안(曹變安), 교리(校理) 홍응(洪應)·군사(郡事) 나치정(羅致貞)·부사직(副司直) 정충원(鄭忠源)·겸교리(兼校理) 이상(李相), 현감(縣監) 임숙(任淑)·김호인(金好仁), 좌랑(佐郞) 정종주(鄭宗周)·부교리(副校理) 정효항(鄭孝恒)·겸박사(兼博士) 임효검(林孝儉)·정자(正字) 조지(趙祉)·권지 정자(權知正字) 구치동(丘致峒)·지사(知事) 최사유(崔士柔)·부교리 조안정(趙安貞)·박사(博士) 허적(許迪)·권지 정자(權知正字) 이극기(李克基)·저작(著作) 윤효손(尹孝孫), 권지 정자 박숙진(朴叔蓁)·양순석(梁順石)·김자정(金自貞), 검열(檢閱) 윤민(尹慜), 권지 정자 윤기반(尹起磻)·정자(正字) 정이아(鄭以雅)·사직(司直) 김유지(金有智)·장령(掌令) 이함장(李諴長)·판관(判官) 임효선(林効善)·사예(司藝) 박인(朴璘)·행 사정(行司正) 김경장(金慶長)·지형조사(知刑曹事) 최중겸(崔仲謙)·도사(都事) 민순손(閔順孫)·판관 김영유(金永濡)·목사(牧使) 황보공(皇甫恭), 정랑(正郞) 최한경(崔漢卿), 이한겸(李漢謙), 대교(待敎) 유지(柳輊)·소윤(小尹) 민효열(閔孝悅)·부사(府使) 조계팽(趙季砰)·행 지사(行知事) 조상치(曹尙治)·판사 민원(閔瑗)·주부(注簿) 신자교(申子橋)·군사(郡事) 모순(牟恂)·겸 종학 박사(兼宗學博士) 이뇌(李賴)·직집현전(直集賢殿) 남수문(南秀文)·현감(縣監) 김한계(金漢啓)·좌랑(佐郞) 윤배(尹培)·사정(司正) 권경행(權景行)·군사(郡事) 김수온(金守溫)·감정(監正) 박제함(朴悌諴)·현감 김영전(金永湔)·정랑(正郞) 우계번(禹繼藩)·상호군(上護軍) 안위(安位)·겸 종학 박사(兼宗學博士) 원자직(元自直)·직제학(直提學) 안지귀(安知歸)·판사(判事) 이형(李逈)·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김말(金末)·중추원 부사 조어(趙峿), 교리(校理) 이파(李坡)·박건(朴楗), 수찬(修撰) 김수령(金壽寧)·행 주부(行注簿) 이우(李堣)·군사(郡事) 김숙검(金叔儉)·행 정자(行正字) 권징(權徵)·저작(著作) 신의경(辛義卿), 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 이계선(李繼善)·행 부정자(行副正字) 권제(權悌), 좌랑(佐郞) 윤필상(尹弼商)·강복(姜輻), 저작 정충기(鄭忠基)·감찰(監察) 유계번(柳季潘)·정자(正字) 이근(李覲), 권지 정자(權知正字) 최응현(崔應賢)·성수린(成壽嶙)·백사수(白思粹)·신말주(申末舟)·고태익(高台翼), 부정자(副正字) 강기수(姜耆壽)·경력(經歷) 하길지(河吉之)·좌랑(佐郞) 권지(權至), 부수찬(副修撰) 노사신(盧思愼)·성간(成侃)·정효상(鄭孝常), 좌사간(左司諫) 신전(愼詮)·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조무영(趙武英)·동첨지돈녕(同僉知敦寧) 이서(李墅)·승훈랑(承訓郞) 안훈(安訓)·승의랑(承議郞) 정심(鄭深)·부사직(副司直) 정윤각(鄭允恪)·통선랑(通善郞) 안극사(安克思)·주부(注簿) 송문림(宋文琳)·행 호군(行護軍) 허곤(許稇)·소윤(少尹) 송처검(宋處儉)·판사 이종검(李宗儉)·행 사용(行司勇) 함귀(咸貴)·동부지(同副知) 윤흠(尹欽)·수사직(守司直) 이계정(李季町)·행 사용 윤사례(尹思禮)·감찰(監察) 이증석(李曾碩)·지통례(知通禮) 김수(金脩)·행 부사직(行副司直) 조숙생(趙肅生)·호군(護軍) 김효온(金孝溫)·부사직 원자정(元自貞)·소윤 나인(羅寅)·직강(直講) 조추(趙秋)·소윤 신후갑(愼後甲)·교리(校理) 권절(權節)·주부(注簿) 이지행(李墀行)·능직(陵直) 이철견(李鐵堅)·사직(司直) 고수겸(高守謙)·행 호군(行護軍) 손계조(孫繼祖)·승의랑(承議郞) 신수지(申守祉)·부윤(府尹) 이심(李審)·부사(府使) 이언(李堰)·사예(司藝) 홍경손(洪敬孫)·현감(縣監) 정명응(丁明應)·헌납(獻納) 고태필(高台弼)·군사(郡事) 김호(金湖)·판관(判官) 윤영의(尹永義)·녹사(錄事) 서중성(徐仲誠)·행 부사직 장맹도(張孟道)·사정(司正) 여근도(呂近道)·행 사정(行司正) 김산해(金山海)·사정 김사일(金思一)·주부(注簿) 박근(朴瑾), 학유(學諭) 박계성(朴繼姓)·남승보(南勝寶), 저작 김성원(金性源), 훈도(訓導) 김구영(金九英)·김지(金祗), 감찰(監察) 이질(李垤)·권지 학유(權知學諭) 박치명(朴致明)·권지 정자(權知正字) 김부필(金富弼)·훈도(訓導) 김병문(金炳文)·군사(郡事) 이계수(李桂遂)·좌랑(佐郞) 김용(金勇)·행 호군(行護軍) 이갑충(李甲忠)·만호(萬戶) 이종덕(李宗德), 부사직(副司直) 유숙(柳塾)·유양(柳壤), 부사정(副司正) 이창(李昌), 사직 유인효(兪仁孝)·이손경(李孫景), 행 사정(行司正) 우효선(禹孝先)·부사직 김석산(金石山)·소윤(小尹) 조철산(趙鐵山)·행 사직(行司直) 박지(朴之)·호군(護軍) 이계흥(李季興), 사직(司直) 차석견(車石堅)·전숭제(全崇悌), 부사직 설순조(薛順祖)·사용(司勇) 양사제(楊斯悌)·진용 교위(進勇校尉) 설창신(薛昌新)·행 사정(行司正) 설성(薛成)·사직 홍지(洪漬)·호군 장이생(張二生)·사직 송석순(宋碩孫)·사용 이효명(李孝明)·사직 권마(權摩)·사정(司正) 윤사지(尹思智)·행 사용(行司勇) 유인습(柳仁濕)·군사(郡事) 서조(徐遭)·현감(縣監) 이순백(李淳伯)·부사정(副司正) 손효윤(孫孝胤)·승훈랑(承訓郞) 신선경(愼先庚)·
대호군(大護軍) 윤오(尹塢)·참의(參議) 나홍서(羅洪緖)·행 사직(行司直) 조욱(趙頊)·만호(萬戶) 한자침(韓自琛), 호군(護軍) 이후(李逅)·한상완(韓尙完), 상호군(上護軍) 김효당(金孝當)·훈도(訓導) 민우증(閔友曾)·좌랑(佐郞) 조원지(趙元祉), 훈도 조서정(趙瑞廷)·인순부 승(仁順府丞) 정극인(丁克仁)·권지 학유(權知學諭) 김영벽(金映璧)·훈도 하한근(河漢根)·교수관(敎授官) 최수지(崔水智)·감찰(監察) 정침(鄭忱)·훈도 김효신(金孝新)·판관(判官) 김계원(金繼元)·감찰(監察) 김한(金漢)·호군(護軍) 오익창(吳益昌)·대호군(大護軍) 윤신우(尹莘遇)·행 사용(行司勇) 전계원(全繼元)·훈련 녹사(訓鍊錄事) 이수붕(李壽朋)·행 부사정(行副司正) 하기린(河起麟)·행 사용 신흥례(申興禮)·사직(司直) 이근효(李近孝), 권지 훈련 녹사(權知訓鍊錄事) 최명전(崔命全)·강근손(姜謹孫), 사정(司正) 한계사(韓繼思)·권지 훈련 녹사 김석종(金錫宗)·사정(司正) 강전(姜專)·권지 참군(權知參軍) 권효신(權孝信)·권지 훈련 녹사 노지(盧祉), 사정 박유손(朴有孫)·이지정(李之楨)·인진행(印珍行)·전자완(全自完), 권지 훈련 녹사 황진손(黃振孫)·사직(司直) 이청신(李淸新), 권지 훈련 녹사 김효손(金孝孫)·정승중(鄭承重), 행 녹사(行錄事) 이종연(李宗衍)·사직 남지(南贄)·사용(司勇) 이종생(李從生)·과의 장군(果毅將軍) 연수염(延壽恬)·부사(府使) 조규(趙珪)·현령(縣令) 조유(趙瑜)·행 주부(行注簿) 김명중(金命中)·사직 이찬원(李贊元)·사용 이효손(李孝孫)·만호(萬戶) 이승명(李承命)·군사(郡事) 이염의(李念義)·사정(司正) 노덕기(盧德基)·판통례문(判通禮門) 윤삼산(尹三山)·영평위(鈴平尉) 윤계동(尹季童)·부윤(府尹) 홍심(洪深)·행 상호군(行上護軍) 조연(趙憐)·행 사용(行司勇) 이세량(李世樑)·판관(判官) 이형손(李亨孫)·행 상호군 신자수(申自守)·부교리(副校理) 홍약치(洪若治)·교수관(敎授官) 유자문(柳子文)·도사(都事) 이유의(李由義)·지평(持平) 안중후(安重厚)·감찰(監察) 전효우(全孝宇)·좌랑(佐郞) 박찬조(朴纘祖)·정랑(正郞) 한서봉(韓瑞鳳)·부사직(副司直) 김상진(金尙珍)·주부(注簿) 윤자영(尹子濚)·봉례(奉禮) 이제림(李悌林)·감찰 최한보(崔漢輔), 봉교(奉敎) 권이경(權以經)·김겸광(金謙光), 대교(待敎) 민정(閔貞), 검열(檢閱) 안신손(安信孫)·김이용(金利用), 행 사정(行司正) 박부(朴桴), 사정 정종아(鄭從雅)·판관 이계창(李繼昌)·훈도(訓導) 정지소(鄭至韶), 권지 정자(權知正字) 유천(柳阡)·김윤종(金潤宗), 현감(縣監) 김서(金溆)·권지 정자 신복륜(申卜倫), 권지 학유(權知學諭) 이삼산(李三産)·최청(崔埥), 훈도(訓導) 김해(金咳)·권지 학유 김적복(金積福)·훈도 남기(南䄎), 권지 학유 조호지(曹好智)·박맹지(朴孟智)·훈도 문소조(文紹祖)·감찰(監察) 이원효(李元孝), 권지 학유 조극치(曹克治)·이문요(李文饒), 검열(檢閱) 김영견(金永堅)·소윤(小尹) 한치인(韓致仁)·부사(府使) 양인백(楊仁伯)·주부(注簿) 유오(柳塢)·군사(郡事) 정결(鄭潔)·유수(留守) 김세민(金世敏)·부사정(副司正) 김삼산(金三山)·부윤(府尹) 이순지(李純之), 녹사(錄事) 김신조(金愼祖)·오창(吳彰)·박종무(朴宗武)·최치당(崔致瑭)·홍범(洪範)·문자수(文自修)·전세적(錢世積), 현감(縣監) 이수생(李壽生), 지인(知印) 문한생(文漢生)·유효지(柳孝池), 녹사(錄事) 안계의(安季毅)·호군(護軍) 장서(張瑞)·상호군(上護軍) 동간고(童干古)·사정(司正) 손계온(孫繼溫)·행 사정(行司正) 조계손(調繼孫)·행 현감(行縣監) 조맹손(曹孟孫)·행 부사정(行副司正) 박철산(朴鐵山)·사용(司勇) 김계종(金繼宗), 녹사(錄事) 김익륜(金益倫)·하맹산(河孟山)·김종(金鍾)·조순경(趙順敬)·강정(姜精)·염순(廉淳)·나달선(羅達線), 현감 박거명(朴居明)·녹사 박계종(朴季宗)·행 부사직(行副司直) 박한생(朴漢生)·훈도(訓導) 손차면(孫次綿), 권지 학유(權知學諭) 임수경(林秀卿)·김계금(金係錦)·곽자용(郭自容), 권지 정자(權知正字) 구자평(仇自平)·행 사용(行司勇) 박순달(朴順達), 권지 훈련 녹사(權知訓鍊錄事) 최계한(崔季漢)·이황진(李黃振), 사직(司直) 노윤필(盧允弼), 진의 부위(進義副尉) 조윤하(曹允夏)·이담(李聃), 경창부 승(慶昌府丞) 이숙함(李淑瑊)·사정(司正) 이철명(李哲命)·진의 부위 윤원동(尹元同)·사정 박사형(朴思亨)·진의 부위 박종문(朴宗文)·우군 사용(右軍司勇) 이규(李珪)·우군 사정(右軍司正) 허인(許麟), 권지 훈련 녹사 조경치(曹敬治)·오자경(吳子慶), 알자(謁者) 장말동(張末同)·사정 최함(崔涵)·사용(司勇) 인경(印卿)·호군(護軍) 김숭해(金崇海)·승의 교위(承義校尉) 김인지(金靷之)·수의 교위(修義校尉) 나문수(羅文繡), 돈용 부위(敦勇副尉) 최신지(崔信之)·최한지(崔漢之), 진용 부위(進勇副尉) 이말봉(李末奉)·승의 부위(承義副尉) 김계돈(金繼敦)·수의 부위(修義副尉) 김말손(金末孫), 진의 부위(進義副尉) 장영진(張永珍)·김자유(金自柔), 수의 부위 최준(崔浚)·이우(李遇)·김효생(金孝生)·백귀령(白龜齡)·이효량(李孝良)·백신손(白信孫)·유태종(劉泰從)·한후생(韓厚生)·신한생(申漢生)·이시영(李時濚)·이맹정(李孟禎), 진의 부위 정중손(鄭仲孫)·김자옥(金自玉)·이형(李衡)·유귀(柳龜)·최자청(崔自淸)·엄유경(嚴有敬), 승의 부위(承義副尉) 남치목(南致睦)·돈용 부위(敦勇副尉) 최림(崔霖), 사정(司正) 성장(成章)·견중달(甄仲達), 수의 부위 정기효(鄭起孝)·한상문(韓尙文)·진척(陳滌)·오준동(吳峻童)·봉극순(奉克純)·김경희(金敬熙)·조맹손(曹孟孫)·서민(徐敏)·황보종(皇甫種)·김여인(金汝仁),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자하(金自河)·전호인(全好仁), 진의 부위(進義副尉) 이종수(李從遂)·이산택(李山澤)·최장(崔章)·오변은(吳變殷), 승의 교위(承義校尉) 최급(崔汲), 사정(司正) 이덕유(李德裕)·승의 부위(承義副尉) 정문치(鄭文治)·부사정(副司正) 예인호(艾仁浩), 사용(司勇) 신치복(申致復)·정지주(鄭至周)·박치명(朴致明)·이맹근(李孟根)·이원양(李原壞)·황신지(黃信之), 수의 부위 박재문(朴載文)·김자렴(金自廉)·주계생(朱繼生)·윤처신(尹處信)·정덕행(鄭德行)·이종실(李種實)·권효(權曉)·장계창(張季昌)·안극유(安克柔), 돈의 부위(敦義副尉) 박맹손(朴孟孫)·부사정(副司正) 최경의(崔景義), 수의 부위(修義副尉) 공명선(孔明善)·김욱(金澳)·이초(李貂)·안효문(安孝文)·황무(黃茂)·나귀정(羅貴貞)·이계선(李季善)·손중혁(孫仲赫), 승의 교위(承義校尉) 조경소(曹敬所)·수의 교위(修義校尉) 윤흔(尹昕),
사정(司正) 이시(李蒔)·안승조(安承祖), 부사정(副司正) 소균(蘇鈞)·신한(辛澣), 행 사용(行司勇) 오유현(吳惟顯), 수의 부위 오윤생(吳尹生)·이복동(李復東)·정사(鄭仕)·최택(崔澤)·김계주(金季珠)·이응선(李應善)·장경지(張敬之)·강연(姜演)·한승조(韓承祖), 진의 부위(進義副尉) 손효정(孫孝貞), 사직(司直) 박문회(朴文會)·전실(田實)·박초(朴超), 부사직(副司直) 원효정(元孝貞)·오사하(吳事夏)·배경량(裴敬良), 사정(司正) 김경의(金敬義)·신효의(申孝義)·강유지(康有智)·김극경(金克敬)·이효공(李孝恭)·백분(白墳), 부사정(副司正) 최중수(崔仲水)·염포(廉抱)·정복례(鄭卜禮)·오치지(吳致智)·유순손(柳順孫)·유춘기(柳春寄), 사용(司勇) 심말생(沈末生)·최영하(崔永河)·임해산(林海山)·이득부(李得夫)·김하창(金河昌)·
이온(李溫), 사직 홍우전(洪禹傳)·조숭헌(趙崇憲), 부사직(副司直) 이수인(李守仁)·고의지(高義智)·배문욱(裵文郁)·안근(安謹), 사정(司正) 김효검(金孝檢)·손경종(孫敬宗)·박안지(朴安止)·박승무(朴升茂)·윤신손(尹信孫), 부사정(副司正) 민척지(閔滌之), 사용(司勇) 신가흠(辛可欽)·박거형(朴居亨)·장효생(張孝生)·배유인(裵有仁)·강극명(姜克明)·배유정(裵有貞), 현령(縣令) 이문검(李文儉), 사직(司直) 전영수(全寧壽)·이서남(李瑞南), 부사직(副司直) 정노(鄭老)·이문례(李文禮), 사정(司正) 남경인(南敬仁)·행 부사정(行副司正) 박복경(朴復卿)·수의 부위(修義副尉) 김석정(金石貞)·진의 부위(進義副尉) 전상미(田尙美), 진무 부위(進武副尉) 장득부(張得富)·김소생(金小生), 진의 부위 이안(李岸)·장중경(張仲敬)·노원말(盧元末)·최운걸(崔雲傑)·김복리(金福利)·김계남(金繼南)·손성우(孫成佑)·박만(朴萬)·신귀존(申貴存)·배안습(裵安濕)·유중련(劉仲連)·박귀성(朴貴成)·김귀치(金貴致)·윤산(尹山)·신경선(申敬善), 수의 부위(修義副尉) 한문(韓文), 진의 부위(進義副尉) 윤경(尹敬)·서경(徐敬)·김을부(金乙富)·박계무(朴戒茂)·한신(韓信)·박유산(朴由山)·최철생(崔喆生)·왕치손(王致孫)·김효례(金孝禮)·김중정(金仲情)·강득(姜得),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봉(金奉)·김거손(金居孫), 진의 부위(進義副尉) 윤금음동(尹今音同)·임복정(林福汀)·김수(金守)·김휴(金休)·김치강(金致江)·한귀견(韓貴堅)·이약로(李若老)·하인귀(河仁貴)·최중산(崔仲山)·이신(李信)·정수(丁守)·김영남(金永南)·수의 부위(修義副尉)·김처인(金處仁)·조송(趙松)·최원(崔元),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곤(金坤), 진의 부위 김여수(金儷水)·전을생(全乙生)·임유생(林有生)·정유달(鄭有達)·김벌개(金伐介)·김중근(金仲斤)·김중련(金仲連)·전수(全守)·정효생(鄭孝生)·김특생(金特生)·김광신(金光信)·원명례(元明禮)·박생(朴生)·정연수(鄭延守)·최해(崔海)·김수강(金守江)·양중생(梁仲生)·박득현(朴得賢)·김여생(金麗生), 수의 부위(修義副尉) 이춘무(李春茂)·김효손(金孝孫)·진무 부위(進武副尉) 안우(安祐), 진의 부위(進義副尉) 최영달(崔榮達)·고을부(高乙夫)·심의(沈義)·박금산(朴今山)·서문(徐文)·박중남(朴仲南)·최득강(崔得江)·김이장(金以鏘)·김성미(金成美)·안호생(安浩生)·박계생(朴戒生)·조맹희(趙孟熙)·심극인(沈克仁)·김효지(金孝智)·윤잠(尹岑)·정효산(趙孝山)·서자평(徐自平), 좌승직(左承直) 신운행(申雲行), 알자(謁者) 김눌행(金訥行)·알자 현녹(玄祿), 우승직(右承直) 이존(李存)·호군(護軍) 김이충(金以忠), 사정(司正) 장유의(張有義)·임희무(林希茂)·김호의(金好義)·정득현(鄭得賢), 부사정(副司正) 이기동(李奇童)·이운강(李云江)·김효윤(金孝潤)·이유례(李由禮), 사용(司勇) 박성생(朴成生)·김이곤(金以坤), 부사정 정가지(丁可智)·조대덕(趙大德)·유여평(兪汝平)·김자려(金自麗)·구복상(仇復祥)·배돈(裵敦)·정효신(鄭孝信), 행 사용(行司勇) 주흥도(周興道)·배상례(裵尙禮)·조예산(趙禮山)·한자렴(韓自廉)·김성기(金成己)·이옹(李雍)·임의민(林義民)·김경동(金敬童)·유증손(庾曾孫), 사직(司直) 김선기(金善奇)·정의종(鄭義宗), 부사직(副司直) 최자윤(崔自潤)·고치화(高致和)·진무 부위(進武副尉) 이소동(李小同), 사정(司正) 김경손(金敬孫)·박건원(朴乾原)·김수산(金水山), 부사정(副司正) 명복초(明復初)·양안위(楊安渭)·이지화(李之華)·변이문(卞以文)·박효동(朴孝童), 사용(司勇) 유호선(兪好善)·장좌원(張佐元)·이복산(李福山)·전유선(全有先)·박춘경(朴春敬)·사직(司直) 서치회(徐致淮)·사용 정산휘(鄭山彙)·사직 홍영호(洪永湖)·권지 참군(權知參軍) 허탁행(許倬行)·전사(典事) 황윤례(黃允禮)·행 부관사(行副管事) 장치손(張治孫)·행 관사(行管事) 김맹흥(金孟興), 학생(學生) 김일(金逸)·장순(張順), 사직 김담(金擔)·사정(司正) 김화(金和)·서리(書吏) 백질(白質)·학생 한인부(韓仁富), 별감(別監) 박반자(朴般者)·나잉질동(羅芿叱同)·김정(金貞), 종[奴] 양동(梁同)·종 홍지(洪地)·종 내은동(內隱同)·김광(金光), 사정(司正) 장인기(張仁己)·차마류(車馬硫)·부알자(副謁者) 심말동(沈末同)·사직(司直) 김검(金劍)·사정(司正) 한사민(韓思敏)·알자(謁者) 홍금강(洪金剛), 종 김막동(金莫同)·이수산(李壽山), 사용(司勇) 김파지(金波知)·김계수(金桂壽), 사정(司正) 최군자(崔群子)·학생(學生) 문장수(文長壽)·행 사용(行司勇) 박막동(朴莫同), 종 박용(朴龍)은 2등에 녹(錄)한다.
【원전】 7 집 102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변란(變亂)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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