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7. 09:46ㆍ게시판
[여적]개고기 주사와 참기름 연구원
이기환 논설위원
조선조 중종 때 이팽수라는 인물의 별명은 ‘가장주서(家獐注書)’였다. 가장은 개고기, 주서는 정7품의 벼슬(주사급)이니 ‘개고기주사’였던 것이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을까.
“이팽수는 크고 살진 개고기 요리로 김안로의 구미를 맞추었다. 이팽수가 청요직에 오르자 사람들은 ‘가장주서’라 했다”(<중종실록>). 이팽수가 당대의 권신인 김안로(金安老)에게 개고기 요리를 뇌물로 바쳐 승정원(국왕비서실)에 입성했음을 꼬집은 실록 내용이다.
광해군 대에 좌의정까지 오른 한효순은 ‘더덕정승’, 호조판서가 된 이충은 ‘잡채판서’라는 별명을 얻었다.
“시중에 이런 풍자시가 돌았다. ‘더덕정승(한효순)의 권세가 처음에는 중하더니, 잡채판서(이충)의 세력은 당할 자가 없구나’(沙參閣老權初重 雜菜尙書勢莫當)”(<광해군일기>).
무슨 시인가. 한효순의 집에서는 사삼(더덕)으로 만든 밀병이, 이충의 집에서는 갖가지 채소를 섞은 잡채가 유명했다는 것. 그런 음식들을 광해군에게 바쳐 정승과 판서가 됐다는 비아냥이었던 것이다(<연려실기술>).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지금 ‘개고기주사’ ‘더덕정승’ ‘잡채판서’에 비견될 만한 용어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참기름 연구원’이다.
전남도 산하 출연기관인 나노바이오 연구원이 25억원짜리 초고가 장비에서 참기름을 짜내 150~200명에게 명절선물로 바쳤다. 지역 친환경 특산물의 연구개발에 쓰여야 할 ‘초임계 추출기’로 고작 선물용 참기름을 짜냈단다. 이 기계를 쓰면 불순물 없는 천연요소와 단일성분을 선택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진액만을 뽑을 수 있으니 참깨를 볶아 물리적으로 짜내는 동네 방앗간의 기름맛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소하다는 것이다.
1421년(세종 3년), 의금부가 평안감사를 지낸 김점을 수사한 결과 쌓아두었던 부정축재물이 1000관이나 된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김점은 겨우 사형을 면하고 풀려났지만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나의 악명(惡名)은 반드시 사책(史冊)에 기록돼 훗날까지 전해질 것이다.” 그렇다. 처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짓이 역사에 기록돼 영영토록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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