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정릉 직장(靖陵直長) 신사준(愼師浚)이 써서 올린 소회(所懷)이다. “첫째, 토지 제도를 새로 정하여 백성들의 삶을 넉넉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신이 들으니, 『서경(書經)』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습니다. 근본을 튼튼하게 하는 방도는 백성들의 삶을 넉넉하게 해 주는 데 있고, 백성들을 넉넉하게 해 주는 방도는 토지 제도를 새로 정하는 데 있습니다. 토지 제도에 한정이 없어 백성들의 생업이 고르지 못하다 보니 가난한 자는 기근과 추위에 지쳐 선(善)을 행할 겨를이 없고 부유한 자는 재물에 뜻을 빼앗겨 선을 행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전(私田)은 이미 오랫동안 이어져서 그 폐단을 갑작스레 고치기 어려우니, 토지를 구분하여 등급을 나누고 재해 입은 정도에 따라 부세(賦稅)를 조정하되 모두 지금의 제도를 그대로 따르면서 약간의 제한만 두어 겸병(兼竝)을 억제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는 엄청난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빈자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습니다. 그래서 빈자는 부자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데, 온몸이 땀범벅에 흙범벅이 되면서 일 년 내내 부지런히 일해도 추수 때가 되면 부자는 가만히 앉아 수확의 반을 거두어가고 고생한 빈자는 겨우 그 반을 얻게 됩니다. 이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이 빚어지니 제한을 두어 겸병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가난한 백성을 끝내 구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원문]
靖陵直長愼師浚書陳所懷曰: “…… 其一曰, 定田制以裕民。臣聞書曰‘民惟邦本, 本固邦寧。’ 蓋 固本之道, 在於裕民; 裕民之道, 在於定田制。…… 田無限制, 民業不均, 貧者困於飢寒而不暇爲善, 富者以財損志而不肯爲善。…… 私田之弊, 行之已久, 亦難猝革, 則無寧別土地而上下其等, 隨災穰而增減其賦, 悉因今制而略爲限節, 以抑兼竝, 庶乎其可矣。…… 我國之人, 富者田連阡陌, 貧者地無立錐。故貧人佃作富人之田, 沾體塗足, 終歲勤勞, 而及其秋成, 富人坐收一半之利, 貧人作苦者僅得其半。此所以富益富而貧益貧, 若不爲限節, 以抑兼竝, 則貧民終無可救之道矣。……” - 『승정원일기』 정조 20년(1796) 3월 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