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선왕조실록 고찰[전헌(全獻)]

2016. 1. 19. 16:05 인물열전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8, 중종 4715일 을사 3번째기사1509년 명 정덕(正德) 4

성균관 생원 전헌 등이 상소하여 기신재의 잘못을 논하나 윤허하지 않다 

 

성균관 생원 전헌(全獻) 등이 상소하여, 기신재의 잘못을 논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成均館生員全獻等上疏, (忌晨齋)忌辰齋之非, 不允

태백산사고본4865A국편영인본14347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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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8, 중종 4718일 무신 3번째기사1509년 명 정덕(正德) 4

성균관 생원 전헌 등이 재차 상소하여 극론하나 윤허하지 않다 

 

성균관 생원 전헌(全獻) 등이 재차 상소하여 극론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成均館生員全獻, 再上疏極論, 不允

태백산사고본4865B국편영인본14347

분류

정론-간쟁(諫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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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30, 중종 12106일 무신 3번째기사1517년 명 정덕(正德) 12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이돌대·박극원 등의 선행을 장계하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김안국(金安國)이 장계(狀啓)하였다.

"거제(巨濟)의 염한(鹽漢)818) 이돌대(李乭大)는 일곱 살에 아비를 잃었는데, 지극한 효성으로 어미를 봉양하여, 달마다 세 번 음식을 풍성히 장만하여 잔치를 베풀어서 어미에게 바쳤고, 어미가 죽어서는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되 조석의 제전(祭奠)을 아주 깨끗하도록 힘썼으며, 가난하여 늘 계속할 수 없으면 때로는 빌어다가 제사하여 조금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고, 흙을 져다가 무덤을 만들되 남보다 특이하게 하고 돌을 가져다 담을 쌓되 높이 석 자나 되게 하였고, 상기(喪期)를 마치고 나서는 어미의 무덤 곁에 아비를 옮겨 묻고서, 명일(名日)과 기일(忌日)에 지성으로 제사하고, 매월 그믐날에 무덤에서 별제(別祭)하되, 제사 때마다 반드시 하루 전에 무덤 있는 곳에 올라가 치재(致齋)819) 하고 쇄소(灑掃)하고 잡초를 제거하였습니다.

유학(幼學) 박극원(朴克元)의 아내 김씨(金氏)는 지아비가 죽으매 애훼(哀毁)가 예도(禮度)를 지나쳐서, 영궤(靈几)를 붙들고 손발을 구르며 곡성이 끊이지 않았고, 조석으로 제사하여 생시처럼 섬기어 3년의 상기를 마치니 3년을 마친 뒤에는 여위어 뼈가 드러났고, 이어서 시부모의 집에 살면서 어욱(魚肉)과 총산(葱蒜)820) 을 먹지 않고 늘 삭망제(朔望祭)를 지내니, 일찍이 과부가 된 괴로움을 그 어미가 가엾이 여겨 그 지조를 앗으려 하였으나, 김씨가 알고서 하늘에 맹세하여 좇지 않고, 10년 동안 봉양하되 조금도 해이하지 않았고, 시아비 박계류(朴繼劉)가 죽으매 시어미의 무덤 곁에 묻고서 손발을 구르며 통곡하였고, 여묘살이를 하여 정성을 다하려 하였으나 친척이 말렸으므로, 김씨가 비록 집에 있으나 죽은 지아비의 상() 때와 똑같이 손수 장만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유학 하호(河濩)의 아내 강씨(姜氏)는 별제(別提) 원범(元範)의 딸인데, 호가 풍질(風疾)을 앓는 15년 남짓 동안 약을 몸소 끊이고 맛보았고, 지아비가 죽어서는 애훼가 예도를 지나쳐서 조석으로 곡하며 제전하고 조죽을 조금 먹을 뿐이고 채소나 과일도 먹지 않아서 겨우 뼈만 남아서 절하고 꿇어앉을 때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였고, 삼년상이 끝난 뒤에도 초상(初喪) 때와 다름없이 조석으로 제전하였습니다.

하양(河陽)의 양녀(良女)821) 동덕(同德)은 나이 서른일곱에 지아비를 잃고서 품을 팔아 조석으로 어미를 공양하되 제철의 채소·과일을 구해 먹였고, 죽은 뒤에도 무릇 햇것이 있으면 반드시 바쳤습니다. 생원(生員)822) 전헌(全獻)은 젊어서부터 제 고장에서 행동을 조심해 살아서 잘못된 행실이 없었고, 아비와 어미의 상()을 잇달아 만나 6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고 모든 상제(喪制)에 있어서 모두 고례(古禮)를 지키고 조석의 제전을 몸소 혼자 장만하여 동기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며 끝내 한결같이 하였습니다. 선산(善山)의 유학(幼學) 이의중(李義中)은 젊어서부터 효성이 도타웠는데, 그 아비가 병으로 오래 누우매 이의중이 떠나지 않고 곁에서 모셔 저녁에 잠자리를 보살피고 아침에 문안하며, 나들이할 때에는 반드시 아뢰며, 대소변을 볼 때에는 몸소 받아내며, 조석의 음식을 늘 반드시 먼저 맛보고 옷가지를 다 팔기까지 하여 맛난 음식을 사와서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영천(榮川)의 학생(學生)823) 안수철(安壽鐵)은 나이 열다섯에 아비 안제(安濟)가 광질(狂疾)을 앓아 고칠 수 없게 되니 안수철이 작도(斫刀)로 왼손의 네째 손가락을 잘라서 약으로 썼습니다."

광질(狂疾)을 앓아 고칠 수 없게 되니 안수철이 작도(斫刀)로 왼손의 넷째 손가락을 잘라서 약으로 썼습니다."

태백산사고본15303A국편영인본15334

분류

윤리-강상(綱常)

[818]

염한(鹽漢) : 소금을 생산하는 사람.

[819]

치재(致齋) : 제사 전에는 심신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하는데 이것을 재계(齋戒)라 한다. 며칠 동안의 재계 중에서, 처음 수일 동안은 애문(哀問)을 삼가고 음악을 듣지 않고 흉한 일을 대하지 않는 등 근신하는데 이것을 산재(散齋)라 하고, 그 뒤 바로 제사 전까지는 제사 외의 모든 일을 생각하거나 간여하지 않고 오로지 제사에 관한 일만을 하면서 재계하는데 이것을 치재라 한다.

[820]

총산(葱蒜) : ·마늘 따위 냄새나는 채소.

[821]

양녀(良女) : 신분이 양인(良人)인 여자.

[822]

생원(生員) :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고 아직 벼슬이 없는 자에 대한 칭호.

[823]

학생(學生) : 성균관(成均館사학(四學향교(鄕校) 등에서 수학하는 선비에 대한 칭호.


慶尙道觀察使金安國狀啓:

巨濟鹽漢李石乙大, 年七歲喪父, 養母至孝, 每月三度豐備食物, 設宴供母母歿, 居廬三年, 朝夕祭奠, 勤致潔淨, 貧寠不能常續, 有時行乞而祭之, 未嘗或怠負土成墳, 特異於他, 負石築墻, 高可三尺服闋後, 移父葬於母墳之側, 名日忌日祭, 行之至誠, 每月晦日, 別祭于墓, 每祭, 必前一日上墓, 致齋灑掃, 闢去雜草幼學朴克元妻金氏, 夫亡, 哀毁過禮, 扶持靈几, 攀號擗踊, 哭不絶聲, 朝夕祭祀, 如事生時, 以終三年三年之後, 瘦瘁骨立, 仍住舅姑籬內, 不食魚肉葱蒜, 常行朔望祭其母憐其早孀孤苦, 欲奪其志, 金氏知之, 誓天不從, 十年奉養, 少不解弛舅父朴繼劉死, 葬於母墳之側, 擗踊哭泣, 欲爲之廬墓以盡誠, 親戚止之, 金氏雖在其家, 手辦行祭, 一如亡夫之喪幼學河濩妻姜氏, 別提元範之女也濩得風疾十五餘年, 藥餌親自湯嘗, 及死, 哀毁過禮, 朝夕哭奠, 暫啜粟粥, 不茹菜果, 僅存形骸, 拜跪須人, 三年喪畢後, 朝夕奠無異初喪河陽良女同德, 年三十七喪夫, 傭役織紡, 朝夕供母, 菜果節物, 得輒饋奉, 死後, 凡有新物, 必薦之生員全獻, 自少居鄕謹愼, 身無過行, 連喪父母, 六年居廬, 凡喪制, 一遵古禮, 朝夕祭奠, 躬自獨辦, 不煩同腹, 終始如一善山幼學李義中, 自少篤孝, 其父宿疾長臥, 義中不離侍側, 昏定晨省, 出入告面, 大小便, 親奉穢器, 常時朝夕供奉, 必先嘗, 至於盡賣衣服, 以易甘旨, 未嘗乏絶榮川學生安壽鐵, 年十五, 父安濟得狂疾, 不得治療, 壽鐵以斫刀, 斷左手第四指以供藥

태백산사고본15303A국편영인본15334

분류

윤리-강상(綱常)




 

 


출처 : 전씨(全氏) 광장
글쓴이 : 한강의 언덕(전과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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