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선왕조실록 고찰 [ 전존성(全尊性) ]

2016. 1. 23. 10:08 인물열전




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 15, 효종 61027일 정축 1번째기사 1655년 청 순치(順治) 12년 

 

송준길·심유행·이제형·전존성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송준길(宋浚吉)을 승지로, 심유행(沈儒行)을 집의로, 이제형(李齊衡)을 문학으로, 전존성(全尊性)을 전남 좌수사 (1)로 삼았다.

(原文)

丁丑/以宋浚吉爲承旨, 沈儒行爲執義, 李齊衡爲文學 全尊性爲全南左水使





(1)수군절도사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는 조선시대의 정3품 당상관으로 수군(水軍)을 통제하였다.

1466(세조 12)에 왕의 수군도안무처치사(水軍都按撫處置使)로 포·보를 지휘, 감독하였다.

수사(水使)라고도 불리었다.

교동·보령·동래·거제도·순천·남해·옹진 등지에 두었다.

인원은 경상·전라·함경도에 각 3, 경기·충청·평안도에 각 2, 황해·강원도에 각 1명씩 있었는데 1명은 반드시 관찰사가 겸임하였으며, 2명인 경우에 1명은 관찰사가 겸임, 나머지 1명은 평안도에서는 병마절도사가, 3명이 배정된 함경도에서는 남·북도 병마절도사가 각각 겸임하였고, 나머지 도는 각각 전문직인 무관이 별도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 삼도수군통제사가 경상우수사를 겸직하는 등 다소 변동이 있었으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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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존성[ 全尊性 ]


분야

역사/전통 시대,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출처

디지털영천문화대전-전존성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전존성(全尊性)은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근부(謹夫)이다. 고조는 참봉(參奉) 전언(全彦)이고, 증조는 전희상(全希祥)이며, 조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전몽룡(全夢龍)으로 숙부 전삼달로 인하여 3대가 추증되었다.

아버지는 봉화현감(奉化縣監) 전삼익(全三益)(1)이며, 어머니는 숙인(淑人) 한양 조씨(漢陽 趙氏)로 참의(參議) 조침(趙忱)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영양 최씨(永陽 崔氏)로 최희정(崔熙正)의 딸이다. 슬하에 3남을 두니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 전이원(全爾垣)과 전이치(全爾埴), 전이명(全爾螟)이다.

활동 사항

전존성은 1585(선조 18)에 태어났으며, 1663(현종 4) 616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618(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부사과(守門將副司果)에 오르고, 공조좌랑(工曹佐郞)과 형조정랑(刑曹正郞)을 거쳐서 고성(固城박천(博川북청(北靑온성(穩城청도(淸道회령(會寧)의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와 김해(金海전라좌도(全羅左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역임하였다.

묘소

전존성의 묘소는 영천시 대창면(大昌面) 병암리(屛岩里) 세동(細洞)마을의 당송산(唐松山)에 자좌(子坐) 향으로 있으며, 영천군수(永川郡守) 이인원(李寅元)의 갈문(碣文)이 있다.

참고문헌

영양지(永陽誌)

용궁전씨우천공파세보(龍宮全氏寓川公派世譜)

골벌(骨伐)5(영천향토사연구회, 1999)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전존성 [全尊性]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전삼익(全三益)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있던 성인(聖人) 다섯 명의 위패를 왜적들에게 화를 입지 않도록 지켜내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첨정(僉正)에 제수되었다.

동생과 함께 왜적의 많은 목을 베고 사로잡는 공훈을 세운 사실이 알려져 조정으로부터 원종공신(原從功臣)의 품계를 받고, 봉화현감(奉化縣監)에 제수되었다.

 



출처 : 전씨(全氏) 광장
글쓴이 : 한강의 언덕(전과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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