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休溪 전희철(全希哲)

2016. 1. 25. 09:18 인물열전




전희철(全希哲)


[요약정보]

원명(原明)

휴계(休溪)

생년 1425(세종 7)

졸년 1521(중종 16)

시대 조선전기

본관 옥천(沃川)

활동분야 문신 > 문신

전예(全禮)

상산김씨(商山金氏)

조부 전귀덕(全貴德)

증조부 전비(全備)

고조부 전광운(全光韻)

5대조 전유(全侑)

감천문씨(甘泉文氏)

처부 문손관(文孫貫)

외조부 김상보(金尙保)

출생지 옥천리(沃川里)

묘소 칠성산(七星山)


[상세내용]

전희철(全希哲)에 대하여

1425(세종 7)1521(중종 16).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원명(原明), 호는 휴계(休溪).

시조는 고려 조에 동정(同正)을 지낸 전학준(全學浚)이며, 5세조는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 판도판서(版圖判書) 상호군(上護軍)으로 옥천군(沃川君)에 봉해진 뒤 벼슬을 그만둔 전유(全侑)이다. 고조부는 전광운(全光韻)이니 이부 전서(吏部典書)를 지냈고, 증조부는 전비(全備)이니 봉렬대부(奉列大夫)의 품계로 사복소경(司僕少卿)을 지냈으며, 조부는 전귀덕(全貴德)으로 통례문봉례(通禮門奉禮)를 지냈다. 부친은 전예(全禮)로 지인부록사(知印副錄事)의 벼슬을 했고, 모친은 상산김씨(商山金氏)이니 부정(副正)을 지낸 김상보(金尙保)의 딸이요,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지낸 장충익(張忠翊)의 외손이다.

옥천리(沃川里) 본가에서 태어나 처가집인 영천(榮川경북 영주)의 휴천방(休川坊)에서 살았다. 생원진사를 거쳐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연세가 있다고 하여 통정(通政) 부호군(副護君)에 승진하였다. 향년은 97세였다. 묘소는 군의 동쪽 칠성산(七星山) 남쪽 기슭 계방(癸方북북서쪽)을 등진 언덕에 있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3) 감천문씨(甘泉文氏)이니 전적(典籍)을 지낸 문손관(文孫貫)의 딸이며, 문과에 급제해서 장령(掌令)을 지낸 송계(宋啓)의 외손인데 공의 묘소 좌측에 합장을 했다.

23녀를 두었으니 맏아들인 전호(全琥)1498(연산 4)에 생원이 되어 내자시첨정(內資寺僉正)을 지냈으며, 둘째 아들인 전박(全珀)은 장사랑(將仕郞)으로 현릉참봉(顯陵參奉)을 지냈다. 맏딸은 생원인 선성(宣城) 김만칭(金萬秤)에게 둘째 딸은 생원인 야성(冶城) 송석충(宋碩忠)에게, 막내딸은 도사(都事)로 통정(通政)에 오른 전주(全州) 유탄(柳坦)에게 각각 출가했다.

옥천(沃川)에 있는 선대의 묘소가 살고 있는 영천(榮川)과 거리가 멀어 성묘를 제 때에 하지 못할까 두려워해서 맏아들 전호(全琥)를 옥천으로 돌려보냈다.

전호는 23녀를 두었으니 맏아들인 전사영(全賜穎)은 부사과(副司果), 둘째 아들인 전지영(全摯穎)은 현령(縣令)을 지냈으며, 맏딸은 이원장(李元長)에게, 둘째딸은 박회(朴檜)에게, 막내딸은 김수성(金遂性)에게 각각 출가했는데, 김수성은 문과에 급제해서 참의(參議)를 지냈다.

전박(全珀)51녀를 두었으니 맏아들 전응복(全應福)은 내금위(內禁衛)를 지냈고, 둘째는 전응방(全應房)으로 생원이고, 셋째는 전응두(全應斗)로 생원이고, 넷째는 전응벽(全應璧)으로 참봉이고, 다섯째는 전응참(全應參)으로 생원진사에 합격했으며, 딸은 이필신(李弼臣)에게 출가하였다. 사위 김만칭(金萬秤)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김좌(金佐)는 참봉이고, 김우(金佑)는 승지(承旨)에 증직되었다. 사위 송석충(宋碩忠)은 네 아들을 두었으니 송엄(宋儼)은 첨지(僉知), 송의(宋儀)는 참의(參議)에 증직되고, 송간(宋侃)과 송칭(宋偁)은 상장(上將)을 지냈다. 사위 유탄(柳坦)21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유응정(柳應禎)과 유응우(柳應祐), 딸은 승지(承旨)인 최승장(崔承張)에게 출가하였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 수정내역

2008-12-31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출처 : 전씨(全氏) 광장
글쓴이 : 한강의 언덕(전과웅)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