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8. 21:22ㆍ 인물열전
초계 선비 전형의 1636년 일본 사행록
전형은 1636년 병자통신사에 참가한 경험을 『해사일기(海槎日記)』라는 사행록으로 남겼다. 불행히도 『해사일기』는 사행 후 220여년이 지난 1858년에 공조판서를 지낸 이원조(李源祚)가 서문을 썼을 때도 결책이었다. 1636년 9월 25일부터 11월 9일까지 2달밖에 남지 못했지만, 정사·부사·종사관의 사행록 3편만 알려져 있었는데 능서관이 남긴 기록도 있다는 사실 자체로서 의미가 깊다. 앞으로도 발굴 여지에 따라서는 사행록이 더 나올 수도 있다.
『해사일기』의 11월 2일 기사에서 일본이 침략한다면 육전의 급함만을 알고 바다에서 역습을 받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 이하의 묘사는 김세렴의 사행록인 『해사록』의 11월 4일자 기사와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어느 쪽이 원서인가가 문제가 된다. 이 점은 사행록을 적는 방식과 관련하여 좀 더 검토 작업이 있어야 하겠다. 간지는 정사·부사·종사관의 사행록에서 모두 일치하고 전형의 사행록과는 다르다.
해사일기는 전형의 문집 『두암집』에 들어갔다. 1858년 전 승지 이휘녕(李彙寧)의 서문을 받아 간행을 계획했다가 1929년에 가서야 조긍섭(趙兢燮, 호 深齋)의 발문을 받아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문집에는 해사일기 외에 필결 통독입의 등이 들어갔다. 필결의 요지는 글씨를 배우기를 전서·예서의 원리를 먼저 터득해야만 글자의 올바르고 와전된 바를 알 수 있으며 그런 다음에 초서를 익혀서 극진한 묘미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통독입의는 탁계 전치원의 손자 전형이 중심이 되어 고장 선비들이 경서·사기·백가의 글을 통독할 것을 다짐한 글이다.
『두암집』 3권에는 1636년 통신 부사 김세렴 같은 사행의 종사관 황호(黃㦿), 뒷날 숙종대에 남인정권의 영수 허적(許積), 강대수(姜大遂)가 써준 글도 있다. 문집 속에서 가장 많은 글을 남긴 이도(李蒤)는 전형이 일본으로 갈 때 서문을 써주면서 ‘전형의 글씨를 일본인들에게 보여 조선의 인재가 성함을 알게 한 김세렴의 안목은 옅지 않았다’고 강조하였다.
현재 부산광역시가 후원하고 관련 단체가 나서서 (조선) 통신사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운동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간 통신사행의 연고지를 중심으로 맺어진 민간협의체에서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통신사가 거쳐 간 일본 내 유적지를 답사하고 학술행사를 개최하고 통신사 행례를 부산 대마도 등에서 재현하여 왔다. ‘조선통신사’라는 용어에서 느껴지듯이 다소 일본의 위세가 짙게 드러워져 있는데, 한국쪽의 무게 중심성을 더 두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통신사라는 것이 양국간의 합의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조선 내에서 통신사 발행을 위해 움직였던 요소도 충분히 부각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통신사행은 대략 500명 정도였는데 도성에서 출발하는 삼사 역관 화원 등의 인원이 있었고 동래 부산진 인근에서 배정된 격군 등의 중하급 인원이 있었다. 능서관 전형의 예는 고향인 경상도 초계에서 출발했으므로 통신사행의 구성을 살펴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며 1636년 병자통신사의 의미를 밝히는 데도 참고할 바가 있다. 새로 발견된 통신사행록도 영인하고 번역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통신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조선쪽의 사정도 골고루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전형[ 全滎 ]
출생-사망 1609 ~ 1660
본관 전주
자 달보
호 매은
활동분야 서예
주요작품 《가락국김수로왕비》
조선 인조(仁祖) 때의 서예가. 본관 전주(全州). 자 달보(達甫). 호 매은(梅隱).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636년(인조 14) 통신사 임광(任絖 )일행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글씨로 명성을 떨쳤으며, 1647년 김해(金海)의 《가락국김수로왕비(駕洛國金首露王碑)》의 비문을 썼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형 [全滎] (두산백과)
※추기:
滎(주1)이 잘 쓰이지 않는 한자라서 榮(주2)으로 읽어서 전영[全榮]으로도 소개되는 경우도 있음.
(주1)滎
실개천 형
1. 실개천(--川: 폭이 매우 좁고 작은 개천)
2. 못 이름
3. 물결이 일다
(주2)榮
영화 영/꽃 영
1. 영화(榮華)
2. 영예(榮譽)
3. 영광(榮光)
4. 명예(名譽)
5. 피, 혈액
6. 꽃
7. 영광스럽다(榮光---)
8. 영예롭다(榮譽--)
9.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10. 무성하다(茂盛--)
11. 싱싱하다
12. 피다
13. 나타나다
가락국수로왕릉비(駕洛國首露王陵碑)
장달수 발췌
이 비는 경상남도 김해군 서상동 수로왕릉 안에 건립된 가락국수로왕릉비(駕洛國首露王陵碑)이다. 비의 이면(裏面)에 의하면 수로왕의 성은 김씨이고 42년에 태어나 가락국(駕洛國)을 세운 후 199년에 훙하여 납릉(納陵)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가락국은 532년에 9대 491년으로 망하였고, 왕에게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황후의 성을 하사한 아들 둘이 허씨의 근원이 된다. 1580년에 후손인 허엽(許曄)이 방백(方伯)이 되어 묘를 정비했으나 임진년(1592년)에 왜구가 파헤쳐 정해년(1647년) 중춘(仲春)에 비를 세우고 상(床)과 섬돌 등을 정비하였다. 이때 일을 맡은 동종(同宗)으로 허목(許穆), 허륜(許崙), 허□(許□), 허구(許坵)를 밝히고 있으며, 이 비를 세운 것은 자손이 근본에 보답하려는 정성에 있다고 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가락국기(駕洛國記)」편과 함께 수로왕의 탄생과 치적 및 국가체제 형성 이전 단계의 소박한 사회 풍속과 정치 운영의 일면 등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다. 비문은 당시 경상감사로 재임 중이던 허적이 지었다.
駕洛國首露王陵(表面)
(裏面)
왕의 姓은 김씨이고 漢 光武 建武 18년(A.D. 42년)에 태어나 처음 나라를 세워 가락이라 이름하였다. 獻帝 建安 4년(199년)에 158세로 훙하여 納陵에 장사지냈는데 首露라는 역사상 호칭은 왕명을 왕호로 삼았기 때문이다. 梁 大通 4년에 나라가 망하니 대대로 전한 것이 9대 491년이다. 왕은 열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황후의 말에 감동하여 황후의 성을 하사한 아들이 둘로 동방의 허씨는 이 에 근원한다. 왕이 세상을 다스림에 매우 순박하고 넉넉해서 나라 사람들이 왕을 추모하여 덕에 보답하고자 지금에 이르도록 冬至 이래 大牢로 제사를 지내고 황후도 배향하였다. 장례를 지낸지 천여년 후 皇明 萬曆 庚辰(1580년)에 후손 許曄이 方伯이 되어 묘를 정비하고 床과 섬돌을 갖추었는데 임진년(1592년)에 왜구가 파헤쳤다. 鄕人이 무덤을 수리한 것이 庚辰 67년 후인 丙戌(1646년)로 남기고 계승한 것을 모아 (수리할) 방법을 생각하고 또 흙을 쌓고 묘 앞에 비를 세웠다. 某月某日에 공사를 마치니 실로 丁亥年(1647) 仲春이다. 床과 섬돌은 또한 모두 새 것이나 술잔을 놓는 자리는 바로 지난 날에 희생을 진설했던 돌이다. 同宗인 幼學 許穆, 省峴 察訪 許崙, 進士 許▨, 新寧縣監 許坵가 그 일을 맡았다. 아! 빛나고 빛나는 공덕은 백성의 뼈에 사무치고 백성의 귀에 깊이 들어갔다. 한 조각의 돌로 족히 그 경중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자손이 근본에 보답하려는 정성에 있어서야 어찌 또한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손 통정대부 수경상도관찰사겸 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 허적 삼가 짓고
외 후손 유학 전형이 삼가 글씨를 쓰다
金海 駕洛國首露王陵碑
駕洛國首露王陵(表 面)
(裏面)
王姓金氏生於漢光武建武十八年始建國號駕洛薨於獻帝建安」
四年壽百五十八葬納陵 首露史稱 王名因以爲 王號云梁」
大通四年國亡傳世九歷年四百九十一 王有子十人感 后言」
賜 后姓者二東方之許本原于此 王之世治臻淳厖邦人追思」
王以報德至今冬日至祀用大牢以 后配焉葬後千有餘載逮皇」
明萬曆庚辰後孫許曄爲方伯脩墓備床砌壬辰倭寇掘發鄕人改」
封之後庚辰六十七年丙戌積以遺紹而忝按道又加封植碑于墓」
前惟月若日工告訖功實丁亥仲春也床若砌亦皆新焉而安于樽」
所者卽前日陳牲石也同宗幼學穆省峴察訪崘進士新寧縣監」
坵幹其事噫煌煌功德浹民骨入民耳深一片石不足爲輕重在子」
孫報本之誠又安得不爾
後孫通政大夫守慶尙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許積謹撰」
外裔幼學全滎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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