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24. 14:04ㆍ 인물열전
정선전씨(旌善全氏) 가승보(家乘譜)
·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가계기록 |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 작성주체
발급 : 정선전씨(旌善全氏)
· 작성지역
강원도 횡성군
· 작성시기
[조선후기]
· 형태사항
13.5 X 11.5 | 1책 | 종이 | 한자 | 성책
· 원소장처
횡성 정선전씨
· 현소장처
횡성 정선전씨
안내정보
정선전씨(旌善全氏) 가승보(家乘譜)는 전주영(全周榮)의 직계 조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작성된 족보의 일종이다. 가승보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그 혈연 계통을 파악하기 위하여 단선으로 선조 및 후손을 기록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 가승보는 시조 전호익(全虎翼)을 시작으로 50세 전징재(全徵在)까지 총 50명의 인물과 관련된 관력 및 행적, 혼인관계, 자녀 유무, 묘소 위치 등을 간단하게 기록하였다. 따라서 현재 횡성에 거주하고 있는 정선전씨의 선대 행적 및 그 연원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상세정보
횡성의 旌善全氏 家乘譜는 全周榮을 중심으로 작성된 족보의 일종이다. 가승보는 한 가문의 직계 계통 및 존속을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 특정 후손을 중심으로 단선 계열로 조상과 후손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해당 조상의 관력 및 행적, 기일 및 묘소 위치, 혼인관계 및 가족사항 등을 간략하게 나타내었다.
가승보의 내용을 토대로 해당 가문의 계보를 확인하면,
시조 全虎翼 - 2세 全槃 - 3세 全舜成 - 4세 全汝均 - 5세 全雲喬 - 6세 全元根 - 7세 全宣 - 8세 全方春 - 9세 全敬智 - 10세 全以敏 - 11세 全瑍 - 12세 全億勻 - 13세 全天奇 - 14세 全禹相 - 15세 全以甲 - 16세 全輔仁 - 17세 全彦 - 18세 全咸正 - 19세 全寵 - 20세 全之淳 - 21세 全諒 - 22세 全錫祿 - 23세 全存傑 - 24세 全守龍 - 25세 全懿 - 26세 全公烈 - 27세 全淑方 - 28세 全英甫 - 29세 全允臧 - 30세 全于道 - 31세 全成吉 - 32세 全信 - 33세 全霶 - 34세 全振羽 - 35세 全天順 - 36세 全子建 - 37세 全子浚 - 38세 全智論 - 39세 全慶春 - 40세 全敏成 - 41세 全義源- 42세 全丞天 - 43세 全俊英 - 44세 全䳽奉 - 45세 全貴安 - 46세 全就大 - 47세 全亨祚 - 48세 全周榮 - 49세 全永煥 - 50세 全徵在에 이른다.
이 중에서 시조에 관한 사항은 현재 정선전씨가 파악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현재 정선전씨는 도시조를 백제 다루왕 때 공신인 全聶으로 삼고 있는데 이 기록에서는 전섭의 아들인 전호익을 시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용상은 시조부터 50세를 모두 담고 있으나 세대수는 시조부터 26세 전공렬까지 기록하다가 전공렬부터 다시 1세로 기록하여 마지막 전징재까지 이르고 있다.
다음은 가승보를 통해 정선전씨 주요 인물의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시조 全虎翼는 백제 다루왕 때 승상이 되었다. 2세 全槃은 본국낭장으로 중국 한나라에 가서 大將이 되었고 공훈을 세워 關西弘農侯에 봉해졌다. 시호는 文忠이며 尙書 白憲의 딸과 혼인하였다. 3세 全舜成은 丞相이고 시호는 文正이다. 太尉 王安의 딸과 혼인하여 全汝均, 全汝平, 全汝完 삼형제를 낳았다.
4세 全汝均는 吏部尙書이고 시호 文憲이며 부인은 中郎將 鄭旭의 딸이다. 5세 全雲喬은 兵部尙書이고 시호 忠建이다. 이름의 '喬'字가 '橋'字로 된 기록도 있다. 부인은 侍中 尹復興의 딸이다. 6세 全元根은 吏部尙書이고 시호 武節이다. 부인은 工部尙書 羅弘佑의 딸이다.
7세 全宣은 全愃과 동일인물이다. 관직이 奉翊大夫 副知密直司事 典法判書에 이르렀으며 旌善君에 봉해져 자손들이 이를 따라 본관으로 삼았다. 묘소는 정선군에 있으며 비문은 외손 資憲大夫 知敦寧府事 李穦이 찬하였다. 부인은 貞敬夫人 奈城辛氏로 장인은 丞相奈城君 辛玭이다. '문헌비고'에 따르면 백제 다루왕 때에 전호익이 兵相이 되고 그 아들 전반이 본국의 낭장으로서 중국 한나라에 들어가 驃騎大將軍이 되었고 그 5세손 전선이 大光公主를 배행하는 신하로 본국에 왔다고 한다.
8세 全方春은 三司太常卿을 지냈다. 9세 全敬智는 通直郞이며 生員이었다. 10세 全以敏은 伊湌을 지냈다. 이름의 '以'字는 '而'字로 쓰기도 한다. 11세 全瑍은 禮部侍郞을 지냈으며 묘소는 凌山에 있다. 이름의 '瑍'字는 '煥'字로 쓰기도 한다. 12세 全億勻은 본래 이름이 億鈞이나 피휘하여 金변을 제외하고 勻이라 하였고 均이라고 쓰기도 한다. 司正元尹을 지냈고 묘소는 전환과 같이 능산에 있다. 13세 全天奇는 寶文閣大提學을 지냈다. 14세 全禹相은 신라 진성왕 때 奉翊大夫 廣文學士을 지냈고 효공왕 때 判典校 寶文閣直提學을 지냈다. 波珍滄 右僕射 具突의 딸과 혼인하였다.
15세 全以甲은 자가 子經인데 騎郎으로 고려 태조를 보좌하여 삼한을 통합하였고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太師에 이르렀다. 견훤의 난에 태조를 보호하고 신숭겸, 김락, 복지겸 등과 힘써 싸우다가 公山에서 함께 전사하였다. 光祿大夫 尙事左僕射 旌善郡 開國公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忠烈公이다. 다시 領相으로 추증되었으며 崇義殿에 배향되었다. 부인은 右僕射 箕佑의 딸이다.
16세 全輔仁은 고려 광종 때 진사로 발탁되고 박사에 제수되었다. 성종 때에는 남해도 나주목의 경학박사로 학생들을 잘 가르쳐 과거에 나아가게 하였다. 현종 때에는 左常侍에 종사하다가 표문을 올려 致仕를 요청했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호는 文敬이다.
17세 全彦은 密直副使을 지냈다. '고려사'에 따르면 예조에서 前太常齋郞 전언이 모친상을 추복하여 효행으로 소문이 났으므로 관작을 더하여 후세를 장려하기를 청하자,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고 한다.
18세 全咸正은 三重大匡版圖判書를 지냈고 시호는 恭毅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문종 때 殿中內給事 全咸正을 보내어 坤寧節을 하례하였다고 한다. 19세 全寵은 判典儀司事를 지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은 主簿로 먼 땅에 유배되었다가 숙종 때에 사면되었다.
20세 全之淳은 國子祭酒를 지냈고
21세 全諒은 兵部郎中을 지냈다. '고려사'에 따르면 의종 때 하례사신으로 요나라에 다녀왔다고 한다.
22세 全錫祿은 京畿兵馬都統使를 지냈다.
23세 全存傑은 대장군으로 寧仁君에 봉해졌다. '고려사'에 따르면 명종 때 李至純 등 5인을 데리고 남쪽 도적을 토벌한 후 金紫光祿 大夫太師로 증직되었다. 부인은 신씨인데 부친은 將軍 辛世俊이다.
24세 全守龍은 慶尙道都巡使를 지냈다. 부인은 貞敬夫人 청주한씨이다. 25세 全懿는 門下贊成事를 지냈고 都僉議左政丞으로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威烈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종 때 안찰사가 되어 적을 토벌하였고 이듬해 密直이 되었다. 부인은 守司空 中書侍郞 金仲龜의 딸이다.
26세 全公烈은 金吾大將軍 楊廣全羅道都兵馬使를 지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종 때 몽골군이 전주까지 침입해 왔는데, 공이 扶寧別抄로서 고란사 부근에 병사를 매복시켜 몽골군 20騎를 공격하여 2명을 죽이고 병마 20필을 취하였다고 한다.
27세 全淑方은 右獻納을 지냈다. '고려사'에 따르면 충렬왕 때 원통하게 죽었으나 충선왕 때 신원되고 증직되었다고 한다.
28세 全英甫는 '고려사'에 따르면 충숙왕 때 밀직부사가 되었고 1등 공신에 오르고 贊成事가 되었다고 한다.
29세 全允臧은 門下侍中 平章事를 지내고 石陵君에 봉해졌다. '고려사'에 따르면 충숙왕 때 譯語郎將, 平壤道巡慰使가 되었고 충혜왕 때 공신에 봉해졌으며 공민왕 때 찬성사가 되었다고 한다.
30세 全于道는 兵部郎中을 지냈다.
31세 全成吉은 郎將을 지냈다. '고려사'에 따르면 우왕 때 낭장이 되었다고 한다.
32세 全信은 副司直, 寶文閣大提學을 지냈다.
33세 全霶은 將仕郞, 童蒙敎官을 지냈다. 부인은 中化張氏이고 부친은 禮曹正郞 張遇이다. 3
4세 全振羽는 中奉大夫을 지냈고 옛 족보에서는 左僕을 지냈다고 한다. 35세 全天順은 佐郞을 지냈으며 부인은 宋敬忠의 딸이다.
36세 全子建은 수직으로 崇政大夫가 되었다.
37세는 全子浚이며
38세는 全智論이다.
39세 全慶春은 강릉최씨와 혼인하였고 정선에 묘소가 있다.
40세는 全敏成이고
41세는 全義源인데 강릉에 묘소가 있다. 4
2세 全丞天은 통정대부이며 부인은 강릉최씨로 崔聖樂의 딸이며 통정대부 崔文一의 손녀이다. 4
3세 全俊英은 자가 信國이고 通政大夫이다. 부인은 강릉김씨인데 부친은 金先在이고 조부는 金應三이다.
44세 全䳽奉은 자가 慶夏이고 수직으로 가선대부가 되었다. 묘는 봉평에 있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부친은 李斗衡, 조부는 李興先이다.
45세 全貴安은 자가 龍浩이고 부인은 경주이씨이다.
46세 全就大는 백부 全貴安의 후사를 이었다. 부인은 원주원씨인데 부친은 元大聖이고 조부는 元代敏이다.
47세 全亨祚는 嘉善同知 兼五衛將이다. 부인은 평창이씨인데 부친은 李大福, 조부는 李成順, 외조부는 경주김씨 金齊澤이다. 묘소는 횡성 둔내면에 있다.
48세 全周榮은 자가 公習이고 忠勳都事, 行忠武衛副司勇을 지냈다. 부인은 전주이씨인데 부친은 李錫圭이고 조부는 朝奉大夫 李光日, 외조부는 삼척심씨 沈福逸이다.
49세는 全永煥, 全龍煥, 全哲煥, 全璣煥이 있다. 전영환은 자가 謹興이고 부인은 원주원씨이다. 전용환은 자가 叔道이고 부인은 추계추씨이다. 전철환은 자가 聖汝이고 부인은 김해김씨이다. 전기환은 자가 星中이다. 50세는 全徵在과 全復在가 있다.
이 문서는 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정선전씨의 주요 인물을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현재 횡성에 거주하고 있는 정선전씨의 선대 행적 및 그 뿌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정승모, 한국의 족보,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0
오영교, 강원의 동족마을, 집문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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