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승정원일기 고찰 [ 전택(全澤) ]

2017. 12. 28. 11:50 인물열전


인조 22년 갑신(1644) 621(정축) 흐림


22-06-21[10] 정사가 있었다


정사가 있었다. 이민화(李敏華)를 전옥서 주부로, 김집(金諿)을 군자감 주부로, 이유청(李惟淸)을 장례원 사평(掌隷院司評)으로, 구시면(具時勉)을 장흥고 직장(長興庫直長)으로, 전택(全澤)을 감찰[], 이일언(李逸彥)을 귀후서 별제(歸厚署別提), 김시건(金始乾)을 예빈시 정으로, 박진()을 조지서 별제(造紙署別提), 이응인(李應寅)을 사근 찰방(沙斤察訪)으로, 신숙(辛淑)을 예빈시 주부로, 윤경승(尹慶承)을 광흥창 주부(廣興倉主簿), 이연()을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 이준(李浚)을 제용감 직장(濟用監直長)으로, 민여진(閔汝鎭)을 목릉 참봉(穆陵參奉)으로, 이덕로(李德老)를 포천 현감(抱川縣監)으로, 조진석(趙晉錫)을 사옹원 직장으로, 이인(李𡐔)을 감찰로, 심선(沈譔)을 공조 정랑으로, 윤환(尹瓛)을 감찰로, 김수익(金壽翼)을 교리로, 정곤명(鄭鯤溟)을 귀후서 별제로, 조인형(趙仁亨)을 금부 도사로, 손필대(孫必大)를 결성 현감(結城縣監)으로, 홍처량(洪處亮)을 해운 판관(海運判官)으로, 이목(李楘)을 대사간으로, 김진종(金晉宗)을 연풍 현감(延豐縣監)으로, 유심문(柳𥳍文)을 김포 군수(金浦郡守), 최진명(崔振溟)을 안주 판관(安州判官)으로, 윤제(尹隮)를 연산 현감(連山縣監)으로, 김흥지(金興祉)를 지례 현감(知禮縣監)으로, 신기한(申起漢)을 동복 현감(同福縣監)으로, 노홍기(盧弘器)를 익산 군수(益山郡守), 조인형(趙仁亨)을 귀후서 별제로, 김광우(金光宇)를 예안 현감(禮安縣監)으로, 조응립(趙應立)을 부령 부사(富寧府使), 윤황(尹璜)을 장례원 사평으로, 이근행(李謹行)을 흥덕 현감(興德縣監)으로, 홍언(洪琂)을 상의원 직장으로, 안필면(安必勉)을 영원 군수(寧遠郡守), 박철(朴徹)을 종친부 전부(宗親府典簿), 이인(李𡐔)ㆍ소동도(蘇東道)ㆍ유정(柳頲)을 전적으로, 권대덕(權大德)을 창성 부사(昌城府使), 이수강(李守綱)을 조지서 별제로, 이건(李騫)을 돈녕부 봉사로, 김희검(金希儉)을 삭주 부사(朔州府使), 성신구(成信耉)를 함흥 판관(咸興判官)으로, 남두추(南斗樞)를 의흥 현감(義興縣監)으로, 이욱(李旭)을 인제 현감(麟蹄縣監)으로, 전택(全澤)을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 허숙(許橚)을 내자시 직장(內資寺直長)으로, 김삼락(金三樂)을 공조 좌랑으로, 이숙진(李肅鎭)을 공조 좌랑으로, 권간(權旰)을 전적으로, 허관(許灌)을 함종 현령(咸從縣令)으로, 송응춘(宋應春)을 사포서 별제로, 이온(李溫)ㆍ이경환(李慶桓)을 성균관 박사로, 윤명은(尹鳴殷)을 종부시 정으로, 손의승(孫義承)을 북부 주부(北部主簿), 이유달(李惟達)을 사예(司藝), 최상륜(崔尙崙)을 양재 찰방(良才察訪)으로, 노상현(盧尙賢)을 금교 찰방(金郊察訪)으로, 허서(許舒)를 상의원 주부로, 소동도(蘇東道)를 감찰로, 박안복(朴安復)을 전적으로, 이진(李榗)을 사도시 직장(司䆃寺直長)으로, 신희도(辛喜道)를 사옹원 봉사로, 이수강(李守綱)을 감찰로, 유경집(柳景緝)을 종성 부사(鍾城府使)로 삼았다.


[원문]

승정원일기 88(탈초본 5) 인조 22621일 정축 10/10 기사 1644順治(/世祖) 1

李敏華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有政以李敏華爲典獄主簿, 金諿爲軍資主簿, 李惟淸爲掌隷司評, 具時勉爲長興直長, 全澤爲監察, 李逸彦爲歸厚別提, 金始乾爲禮賓正, KC10684爲造紙別提, 李應寅爲沙斤察訪, 辛淑爲禮賓主簿, 尹慶承爲廣興主簿, 李𨎷爲典牲主簿, 李浚爲濟用直長, 閔汝鎭爲穆陵參奉, 李德老爲抱川縣監, 趙晉錫爲司饔直長, 李演爲監察, 沈譔爲工曹正郞, 尹瓛爲監察, 金壽翼爲校理, 鄭鯤溟爲歸厚別提, 趙仁亨爲禁府都事, 孫必大爲結城縣監, 洪處亮爲海運判官, 李楘爲大司諫, 金晉宗爲延豐縣監, 柳𥳍文爲金浦郡守, 崔振溟爲安州判官, 尹隮爲連山縣監, 金興祉爲知禮縣監, 申起漢爲同福縣監, 盧弘器爲益山郡守, 趙仁亨爲歸厚別提, 金光宇爲禮安縣監, 趙應立爲富寧府使, 尹璜爲掌隷司評, 李謹行爲興德縣監, 洪琂爲尙衣直長, 安必勉爲寧遠郡守, 朴徹爲宗親典簿, 李𡐔·蘇東道·柳頲爲典籍, 權大德爲昌城府使, 李守綱爲造紙別提, 李騫爲敦寧奉事, 金希儉爲朔州府使, 成信耉爲咸興判官, 南斗樞爲義興縣監, 李旭爲麟蹄縣監, 全澤爲司圃別提, 許橚爲內資直長, 金三樂爲工曹佐郞, 李肅鎭爲工曹佐郞, 權旰爲典籍, 許灌爲咸從縣令, 宋應春爲司圃別提, 李溫·李慶桓爲成均博士, 尹鳴殷爲宗簿正, 孫義承爲北部主簿, 李惟達爲司藝, 崔尙崙爲良才察訪, 盧尙賢爲金郊察訪, 許舒爲尙衣主簿, 蘇東道爲監察, 朴安復爲典籍, 李榗爲司䆃直長, 辛喜道爲司饔奉事, 李守綱爲監察, 柳景緝爲鍾城府使


승정원일기 112(탈초본 6) 효종 1513일 을축 26/37 기사 1650順治(/世祖) 7

呂爾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有政缺以呂爾徵爲工曹參判, 曺時亮爲校書正字, 元萬石爲承文副正字, 元簋爲結城縣監, 全澤爲碧河察訪[], 吳竣爲兼知春秋館, 林墰爲知敦寧, 李英發爲戶曹正郞, 梁有仁爲刑曹正郞, 金壽賢爲大司憲


승정원일기 137(탈초본 7) 효종 61225일 을해 14/15 기사 1655順治(/世祖) 12

洪處厚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有政以洪處厚爲慶尙監司, 鄭時諶爲林川郡守, 全澤爲安東府使[], 蔡時鎭爲伊川縣監, 成夏明爲右副承旨, 宋奎濂爲檢閱, 出吏曹政軸



감찰[監察]

조선시대 사헌부의 정6품 관직.

찰방[察訪]

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종6품의 외관직.

부사[府使]

고려·조선시대 지방의 장관직으로, 고려시대에는 개성부(開城府)와 지사부(知事府)의 수령을 가리키는 칭호였고, 조선시대는 정3품의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와 종3품의 도호부사(都護府使)를 가리키는 칭호였다.


출처 : 전씨(全氏) 광장
글쓴이 : 전과웅 (55세/정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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