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통덕랑(通德郞) 정선전공(旌善全公) 휘(諱) 대준(大俊) 묘비문(墓碑文)

2018. 2. 10. 14:30 인물열전


통덕랑(通德郞) 정선전공(旌善全公) 휘(諱) 대준(大俊) 묘비문(墓碑文)
 
공(公)의 휘(諱)는 대준(大俊)이요.자(字)는 태이(泰而)이며 호(號)는 망대(望坮)이다.
관(貫)은 정선(旌善)이며 그 계열(系列)인적 환성군(歡城君) 휘섭(諱聶)께서는 
시조(始祖)가 되시고신라조(新羅朝)에 정선군(旌善君) 휘(諱)선(愃)께서는 관조(貫祖)가
되시고 고려조(高麗朝)에 또 구세(九世)가 지나 휘(諱)는 이갑(以甲) 자(字)는 자경(子經) 
호(號)는 도원(桃源)이신 분이고려태사(高麗太師)사가 되시어 견훤(甄萱)이 신라(新羅)를
함몰(陷沒)시킬적에고려태조(高麗太祖)께서 장병오천(將兵五千)을 거느리고 가 신라
(新羅)를 구하다가 견훤군(甄萱軍)을 동수산(桐藪山) [지금의 팔공산]에서 만나 왕
(王)께서 포위(包圍)되어 위급(危急)한지라 공(公)께서 신공숭겸(申公崇謙)께 말씀하시기를
초(楚)나라를 속이던 계교(計巧)를 쓰지 않으면 왕(王)을 탈출(脫出)시키지 못할것이니
청(請)컨데 왕(王)을 미복(微服)[평인의 옷]을 입게하여 포위망(包圍網)을 빠져 나가게
하고 공(公)께서 신공(申公)과 아우의갑(義甲)과 더불어 힘써싸우다가 순국(殉國)하시니
고려태조(高麗太祖)께서 슬피여겨 의경익대광익이보효절헌양정사공신(毅景翊戴匡翼怡
輔效節獻襄定社功臣)을 봉(封)하고 삼중대광(三重大匡) 직(職)을 더하여벽상(壁上)에다
도상(圖像)[지금의 사진]을 모시고 시호(諡號)를 충(忠)열(烈)이라 내리시고 정선군
(旌善君)을봉(封)해 받으신분이 공(公)의 이십칠대(二十七大)조(祖)가 되신다.
고조(高祖)께서는 휘(諱)가 감(
)이시며 증직(贈職)으로 좌통예(左通禮)시고 증조(曾祖)
께서는 휘(諱)가 거강(居康)이시며 부사직증형조참의(副司直贈刑曹參議)시고 조(祖)께서는
휘(諱)가 응조(應祖)이신 어모부호군(禦㑄副護軍)이시며 선조조(宣祖朝) 갑진(甲辰)에 
순충보조찬모익성공신(純忠輔祚贊謨翊聖功臣)정헌호조판서(正憲戶曹判曹判) 추배(追拜)
하고 임하군(臨河君)에 봉군(封君)을 받았고 고(考)께서는 휘(諱)가 룡(龍)이시고 자(字)는
여견(汝見) 호(號)는 석천(石泉) 관(官)은 사복사판관(司僕寺判官)이시다.
임진왜란(壬辰倭亂)시(時)에 어가(御駕)를 모시고 서행(西行)할 적에 성상(聖上)를 등에
업고 사잇길을 따라 용(龍)만(灣)에 피(避)할즈음에 상(上)께서 종묘사주(宗廟社主)를
모셔오라 명(命)하여 구마(
馬)와비단자루와 정기(精騎)]정예로운 기마병] 삼천(三千)을
거느리게 하여 주어 공(公)께선 한편 싸우며 행군(行軍)하여 청석벽(靑石闢)에 다달아
밤을기다려 성(城)을넘어 잠입(潛入)하여 사주(社主)를 받들고 나오니 적(賊)이 비로서 
알게되어 대병(大兵)으로 외어 싸니 따라오는 기마병(騎馬兵)이 십육인(十六人)이라
공(公)께서 손수 인(
)으로 수십백인(數十百人)을 쳐죽이니 적(賊)이 이에 물러서는지라 
공께서도 중상(重傷)을 입으시니 얼굴이 깍기우고 좌이(左耳)가 떨어졌음에도 아픔을
참고 질풍같이 달려 오일(五日)만에 행재소(行在所)에 도달(到達)하여 복명(復命)하고
인(因)하여 혼절(昏絶)하니 성상(聖上)께서 놀라 금창약(金瘡藥)을 부쳐주니 오랜만에
나은지라 성상(聖上)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경(卿)은 무슨벼슬을 원(願)하는고 공(公)께서
대답하시기를 신(臣)은 용열(庸劣)하여 직청(職靑)을 감내(堪耐)하지 못하오니 오직 원컨대
성무(聖武)를 크게떨치어 구지(舊地)를 회복(回復)하고 란여(鑾輿)[임금이 탄 수레]가 경성
(京城)에 빨리 돌아갔으면 태평성대(泰平聖代)를 노래함이 흡족(洽足)할 뿐이지 다른 소망
(所望)이 있겠습니까.
드디어 관궐(官闕)에 돌아와 이름을 용자(龍字)를 내려주시고 갑진(甲辰)년(年)에훈공
(勳功)을 책봉(策封)할적에 성상(聖上)을 업은 초상화(肖像畵)를 그려 충훈부(忠勳府)에 
봉안(奉安)하였다.
을사년에 공훈을 의논하여 사충근정양갈성효절협책호성공신봉석릉군(賜忠勤貞亮竭誠效
節恊策扈聖功臣聖功臣封石陵君)하고 또 호(號)와 단서철권(丹書鐵券)과 노비(奴婢)와
전결(田結)을 내리시고 자헌대부형조판서 (資憲大夫刑曹判書)겸(兼)지의금부사오위도총관
(知義禁府事五衛都總管)을 증(贈)하고 태상(太上)십년(十年)계유(癸酉)에 재차(再次) 녹권
(錄券)을 주고 영정(影幀)을 내리시어 성주(星州)반암(般岩)영각(影閣)에봉환(奉還)하여 
재건하다.
비(妣)께서는 정경부인밀양박씨(貞敬夫人密陽朴氏) 천억(天億)의 여(女)이시며 
또 비(妣)께서는 정경부인해주최씨(貞敬夫人密陽朴氏) 예종(禮宗)의 여(女)이시다.
또 비(妣)께서는 정경부인해주최씨(貞敬夫人海州崔氏)이다
공(公)께서는 선조조(宣祖祖) 임오년(壬午年)에 탄생(誕生)하였으며 관(官)은 생원통덕랑
(生員通德郞)이시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시(時)에 경성(京城)으로부터 형제(兄弟)가 분리(分離)되어 공(公)은
 
대구(大邱) 해북촌(解北村)에 생거(生居)하시었다.
마을뒤에 루대(樓坮)가 있어 매일(每日)대(坮)에 올라 형임(兄任)계신 곳을 바라보며
시(詩)를 읊어 가라사대 형을 바라보니 어너곳에 살아계신고 어너듯 팔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노라.
갑자(甲子)년(年)에 졸(卒)하시니 묘소(墓所)는 대구북면미대리(大邱北面美垈里) 유좌원 

(酉坐原)에 모셔져 있었는대 이제 공산호수(公山湖水)에 지세(地勢)가 몰지(沒地)가 되어
부득(不得) 기(己) 대구(大邱)북구 국우동(國優洞) 산(山)66번지(番地) 운은등(雲隱嶝)상봉(上峯)

묘좌유향(卯坐酉向)에 면예(緬禮)하였다.
배(配)는 공인인천채씨(恭人仁川蔡氏) 몽일(夢日)의 여(女)시며
배(配)는 공인남양홍씨(恭人南陽洪氏) 기일(期逸)의 여(女)시니 
삼위(三位)합봉(合封)으로 모시었다.
칠남(七男)을 두시니 장자(長子)는 영달(英達)이니 부호군(副護軍)이요. 이자(二子)는 
수란(壽蘭)이니 충순위(忠順衛)요. 삼자(三子)는 사원(泗元)이요. 사자(四子)는 언보(彦輔)니
통정군자감정(通政軍資監正)이요. 오자(五子)는 언양(彦陽)이요. 육자(六子)는 언(彦)남(楠)이니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요. 칠자(七子)는 봉(鳳)람(攬)이요. 장손(長孫)방언(邦偃)은
판관(判官)이시니 영달(英達)의 소생(所生)이요. 차손(次孫)영년(泳年)은 충무위부사정
(忠武衛副司正)인되 수란(壽蘭)소생(所生)이라 기외(其外) 여러 손자(孫子)가 있으나
다 기록(紀錄)하지 못하노라 어너한날 기(基)후손(後孫) 호삼(鎬三)과 호철(鎬哲)이 가문(家門)의
행장(行狀)을 안고와 말하기를 나의 삼십대조(三十代祖)선영(先塋)이 불행(不幸)하게도 공산호수
(公山湖水)에 침몰(沈沒)됨으로 부득기(不得己) 대구(大邱)국우동(國優洞) 산(山)66번지(番地)
운은등(雲隱嶝)상봉(上峯)에 이천(移阡)하려고 비명(碑銘)을 희망(希望)하여 간절(懇切)히 부탁
(付託)하기에나는 천학비재(淺學菲才)라 사양(辭讓)을 했더니 종의(宗誼)로 청(請)하여 오기에 
굳이 사양(辭讓)치 못하고 졸열(拙劣)함을 망각(忘却)하고 삼가 기명(記銘)하기를 국우동(國優洞)
양지(陽地)에 산수(山水)가 수려(秀麗)하고 용(龍)트림하고 맹호(猛虎)가 궤거(跪踞)하여 명당
(明堂)이 있다하여 선조(先兆)를 이점(移占)하니 참혈(穴)이 당처(當處)인지라 마땅히 공(公)의
자손(子孫)들이여 영세(永世)토록 번창(繁昌)하리라.

광복후(光復後) 사십육년경오(四十六年庚午) (서기(西紀)1990(一九九0)구월(九月) 일(日)
 
 
전(前) 성균관(成均館) 부관장(副官長) 옥천(沃川) 전병조(全柄朝) 근찬(謹撰)
후손일동(後孫一同) 근수(謹竪)
 



출처 : 정선전씨 다음카페 뿌리를찾아서!
글쓴이 : 전정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