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밀직부사 감천군 전언, 출척사 판서 전종간 비문

2018. 4. 21. 00:25 인물열전

밀직부사 감천군 전언, 출척사 판서 전종간 비문

(密直副使 甘泉君 全公 諱 彦 黜陟使 判書 全公 諱 宗幹 之壇 碑文)

 

전씨 시조의 휘는 이시니 백제 온조왕을 보좌한 십제공신으로서 환성군으로 피봉되었고, 2세 휘 호익은 병상(兵相) 벼슬을 지내셨으며 3세 휘 은 한조(漢朝)에 입사(入仕)하여 표기대장군을 배하여 관서홍농후(關西弘農候)로 수봉하시었고 4세 휘 순성은 태부(太傅)벼슬을 지내셨으며 5세 휘 여균 6세 휘 운교 7세 휘 원근은 각각 상서(尙書)벼슬을 지내셨으며 휘 원근이 상서 나홍우의 여()와 결혼하여 휘 을 낳으셨으니 이 분이 8세이며 관이 정선군에 피봉되었다. 묘는 강원도 정선군 낙동리 서운산 간좌원(艮坐原)에 있으며 군부인(郡夫人) 내성(奈城) 신씨의 묘도 동원 상광(同原 上壙)이다.

9세 휘 방춘삼사태상경(三司太常卿)이시고, 10세 휘 경지는 통직랑 벼슬을 지내셨으며, 13세 휘 억균은 사정원윤(司正元尹)이시고 14세 휘 천기는 병부랑(兵部郞)과 중서서원박사(中瑞書院博士)로서 2남을 낳으시니 15세 장남 휘 우상은 광문박사(廣文博士)이시고 차남 휘 종도는 승상(丞相)이시다.

우상2남을 낳으시니 16세 장남 휘 이갑은 시호가 충렬이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개국공신으로 정선군이시고, 차남 휘의갑은 시호가 충강이고 죽산군이시고 충렬공 휘이갑충강공 휘의갑二忠公 단소는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卯坐原에 있습니다.

17세 휘 보인(1)은 충렬공 휘 이갑로 관이 상서좌복야에 이르고 시호가 문경으로 2남을 낳으시니 18세 장남 (2)은 관이 고려 현종조에 밀직부사였고 차남 은 낭장이셨다. 18세 낭장19세 휘 석조(3)로 관이 병마도통사이시고 20세 휘 은 소윤(少尹)이고 21세 휘 지수는 낭장이고 22세 휘 은 문과 진사이고 23세 휘 유적은 소감(少監)이며, 24세 휘 ()은 감무(監務)이고 25세 휘 원길은 대호군이시며, 26세 휘 은 호부상서이고 27세 휘영의지후우사간(祗候右司諫)이셨다.

영의2남을 낳으시니 28세 장남 휘 은 관이 중서사인(中書舍人)이고 29세인 병마사 휘 (+)와 휘이도을 낳으시고 28세 차남 휘 은 밀직부사이시다.

29세 휘이도(4)는 공민왕조에 안동병마사, 함주수장(咸州守將), 전공판서(典工判書),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역임하였다.

30세 휘(5)병마사 휘 (+)의 아들이며, 관이 밀직부사로

고려 충숙왕8(1321) 辛酉 4월에 왕을 배종하여 원나라에 입조한바 있다.

원나라에 있을 때 충숙왕 9(1322) 壬戌 3월에 원나라 황제는 심왕(瀋王)의 참언(讒言)으로 충숙왕을 꾸짖고 국왕인장(國王印章)을 빼앗았다. 이는 고려국을 원의 성()으로서 합병책략이었다. 밀직부사 전언 등 왕을 배종한 신하는 충숙왕을 도와 원나라 황제에게 합병책략의 부당성을 극구 역설하여 좌절케 하고

충숙왕 11(1324) 甲子에 원나라 황제로 하여금 국왕인장을 되돌려 주게 하여 다음해 乙丑에 충숙왕과 함께 환국하게 되었다.

환국한 충숙왕은 충숙왕 13(1326) 丙寅 7월에 전언의 공()을 높이 치하하여 1등공신으로 삼아 토지와 노비를 내리고 부모처자에게도 작()을 주고 감천군(甘泉君)에 봉하였고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에 임명하였습니다.

31세 휘 종간(宗幹)은 감천군 휘의 아들로 고려 충렬왕 24(1298) 戊戌에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영오(穎悟)하고 골상이 비범하였으며, 성품이 호탕(豪宕)하여 매사에 구애됨이 없었다. 어릴 때에는 수렵을 좋아하였고 성년이 되어서는 향교에 수학하면서 분발하여 독서하면서 작문, 문장구성 등에 월등하였습니다. 정문(程文)에도 능하였다.

충숙왕 17(1330) 庚午에 문과 장원하여 승령부(承寜府) 승선비서관랑(承宣祕書官郞)에 제수되었다.

1332 壬申에 국자감 직강,

1334 甲戌에 봉직랑 예문관 응교 겸 수찬관 지제교,

1335 乙亥에 정리정랑(正理正郞),

1337丁丑에 동사랑 좌헌납(同舍郞 左獻納)에서 장령으로 전직되었으며,

1338 戊寅에 우대언(右代言) 전리총랑(典理摠郎)에서 봉상대부 전의사부령(奉常大夫 典儀寺 副令)이 되었으며,

1340 庚辰 지금주사(知錦州事),

1342 壬午에 태중대부 지예부사(太中大夫 知禮部事),

1344 甲申에 간의대부 우사의(諫議大夫 右司議)에서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전보되었고,

1345 乙酉에 정순대부 예부시랑(正順大夫 禮部侍郎),

1347 丁亥에 광정대부 지밀직사사 겸 국자감사 예문관 대제학(匡靖大夫 知密直司事 兼 國子監事 藝文館 大提學),

1350 庚寅에 전공판서 판밀직상의 회의도감사(典工判書 判密直商議 會議都監事),

1351辛卯에 출척사(黜陟使)에 임용되었습니다.

감천군 휘 와 출척사 휘 종간의 외훈(巍勳)과 위열(威烈)이 소상(昭詳)히 전해지지 못하였고, 묘소와 배위도 또한 실전되었으니 이 어찌 가석(可惜)하지 않으리오.

후손으로서 선조의 대한 추성(追誠)을 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였습니다.

이에 종중 결의에 따라 대종계금(大宗契金)으로 손자가 되고 아들이 되는 대사헌 휘 사안묘전에 단비(壇碑)를 세워 고려사전씨보첩’ ‘전씨종약휘보등의 기록에 의거하여 가장(家狀)과 행장(行狀)을 약술하여 추모의 징성(徵誠)을 바치고자 합니다.

 

서기 1984년 음 1006

 

환성군 53세손 감천군 24세손 표두(杓斗) 謹識

환성군 53세손 감천군 24세손 표운(杓運) 謹書




 

(1) 전보인(全輔仁)

고려사절요 제2

성종 문의대왕(成宗文懿大王)

기축 8(989), 송 단공 2년ㆍ거란 통화 7

夏四月敎曰予方崇學校寢興軫慮近覽有司所進擧人名數唯大學助敎宋承演南海道羅州牧經學博士全輔仁誘以能諄合宣父博文之意誨而不倦副寡人勸學之心宜加奬擢之恩用示殊尤之寵承演可超九等授國子博士仍賜緋公服一襲輔仁可賜公服一襲米五十碩自今凡文官有弟子十人以下者有司於政滿遷轉之時具錄奏聞以爲褒貶其十二牧經學博士無一箇門生赴試者雖在考滿復令留任責其成效量授官階以爲常式

 

고려사절요 제3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무오 9(1018), 송 천희 2년ㆍ거란 개태 7

十一月輔臣以彗星已滅表請御正殿復常膳從之

全輔仁爲尙書左僕射

 

고려사절요 제3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기미 10(1019), 송 천희 3년ㆍ거란 개태 8

右僕射全輔仁輕躁以明經出身累授學官時稱宿儒

 

(2) 전언(全彦)

국역 고려사 : 세가

현종 14(1023) 계해년

秋七月 癸亥朔 契丹遣太保黃信來, 賀生辰. 己卯 吏部奏, “前太常齋郞全彦, 追服母喪, 以孝聞, 請加次第職, 用勸將來.” 從之.

[출처] 국역 고려사 경인문화사

 

(3) 전석조(全錫祚)

국역 고려사 : 세가

문종 22(1068) 무신년

二月 辛亥 以將作監全錫祚知西北面春夏番兵馬事, 太府少卿李徵望爲東北面春夏番兵馬副使.

 

(4) 전이도(全以道)

고려사

공민왕 원년(1352) 임진년

6월 초하루 임인일.

六月 壬寅朔 錄燕邸隨從功臣. 以贊成事趙日新, 僉議評理金普, 判密直司事金逸逢, 前代言柳淑, 上護軍鄭桓, 宦者大護軍申小鳳等, 爲一等上. 平海府院君孫琦, 判三司事李蒙哥, 前贊成事曹益淸, 知密直司事鄭䫨, 前同知密直司事洪由道, 判開城府事韓可貴, 前平壤尹洪元哲, 密直副使姜千裕, 密直提學李濟, 版圖判書李宗·全普門, 知申事崔德林, 鷹揚軍上護軍金鏞, 判司僕寺事車蒲溫, 大護軍鄭世雲, 中郞將睦仁吉, 郞將金湑·全以道, 爲一等. 上護軍李也先帖木兒·姜仲卿, 大護軍孫襲, 親從李陽, 中郞將鄭鎭, 寺丞王碩, 別將任碩·任用等, 爲二等. 判事金元, 護軍玄瑾, 監察掌令許猷, 中郞將鄭璇, 小府注簿辛廉等, 爲三等, 並賜田民.

 

고려사

공민왕 12(1363) 계묘년

5월 갑오일.

五月 甲午

全普門爲慶尙道都巡問使, 全以道爲安東道兵馬使, 安克仁爲東京道兵馬使, 柳濡爲尙州道兵馬使, 林堅味爲晉州道兵馬使, 安楫爲全州道兵馬使, 成元揆爲羅州道兵馬使, 金漢貴爲廣州道兵馬使, 張天志爲富平水原道兵馬使, 權禧爲洪州道兵馬使, 趙思敏爲公州道兵馬使, 成元完爲淸州道兵馬使, 玉天柱爲忠州道兵馬使, 權長壽爲交州道兵馬使調兵. 乙未 流密直商議金希祖于順天. 丙申 以密直副使朱思忠爲德興君內應, 殺之. 思忠謇直, 累建功, 初下獄, 大言曰, “我本無罪, 二三執政, 無功驟貴, 逼人如此!” 及死, 人惜之.

 

고려사

공민왕 12(1363) 계묘년

3

閏月 辛未朔 夜五鼓, 金鏞密遣其黨五十餘人, 犯行宮, 宿衛皆奔竄, 殺宦者安都赤及僉議評理王梓, 判典校寺事金漢龍, 又殺右政丞洪彦博于其第, 密直使崔瑩, 副使禹磾, 知都僉議安遇慶, 上護軍金長壽等, 自京城, 帥兵詣行宮, 擊賊平之, 長壽死之. 亂定, 王入御康得龍家, 令百官, 宿衛徼巡. 命李仁復·丁贊·禹磾·洪善福, 鞫賊于巡軍. 壬午 以判密直司事李珣爲楊廣道都巡問使, 出鎭長巖.

 

乙酉 錄興王討賊功. 以三司右使李成瑞, 知都僉議安遇慶, 密直使崔瑩, 密直副使禹磾·韓暉, 開城尹梁伯益, 典理判書吳仁澤, 版圖判書金漢眞, 文睿府司尹金湑, 右副代言柳繼祖, 上護軍楊伯淵·金庾, 判小府寺事金之瑞, 判典醫寺事李春英, 司宰令李芬, 護軍李龍吉爲一等功臣. 版圖判書崔龍雨, 典工判書李陽, 大護軍權禧·李得霖, 典客令全甫, 版圖摠郞文天起·朴良吉, 親從護軍李松, 三司副使孔帖木兒, 通禮門副使趙臣佐, 護軍崔潭, 中郞將金安壽, 爲二等功臣.

 

扶侍避難功, 以瑞寧君柳淑, 判典校寺事成士達, 左代言金達祥, 鷹揚軍上護軍朴椿, 宦者延城府院君金玄, 上護軍李剛達, 爲一等功臣, 禮儀摠郞柳實, 司宰副令崔忠輔, 典校寺丞金文鉉, 中郞將金萬爲二等功臣. 建議集兵定難功, 以左政丞柳濯爲一等功臣.

 

又錄辛丑扈從功, 以卒右政丞洪彦博, 贈政丞鄭世雲, 鐵城府院君李嵓, 判三司事金逸逢, 唐城府院君洪元哲, 贊成事商議慶千興·黃裳, 瑞寧君柳淑, 奉化府院君鄭松壽, 漢陽府院君朴有文, 泗城君睦仁吉, 前密直副使許猷, 版圖判書金漢眞, 肅雍府左司尹宋仁績, 前安東都護府使洪彦猷, 判典校寺事成士達, 文睿府右司尹張得安, 判司僕寺事車安道, 知申事元松壽, 右代言李穡, 左代言金達祥, 前鷹揚軍上護軍洪師禹, 前判司僕寺事朴元澤, 檢校評理金桂, 前上護軍許瑞, 判司僕寺事李良, 判典醫寺事李春榮, 前判小府寺事黃大都, 檢校評理李難守·李天暉·徐俊·玄之妙·金生麗·鄭之信·金勇麗·李絢, 監察執義李成林, 前大護軍馬天麟·李華, 宗簿令金廣, 前衛尉尹兪伯, 前典客令楊贇, 司僕正尹松, 典醫副令金君鼎, 通禮門副使趙臣佐, 前典客副令南大剛, 前軍器監金元世, 護軍李邦英·玄臣祐, 前護軍金天佐·金良壽·朴英祐·李乙卿·禹連·金仁雨·李光祐, 典農副正孫廉, 司僕副正孫元·劉信, 檢校上護軍朴資·申之善·張成吉·崔伯顔, 故親從護軍金承德, 中郞將金龍·崔公·朴石連, 宦者延城府院君金玄, 寧原府院君申小鳳, 晉原府院君金壽萬, 上護軍李剛達, 判內府寺事尹忠佐, 大護軍尹祥, 爲一等功臣. 密直副使柳淵, 前開城尹洪師範·朴元鏡, 監察大夫金續命, 前版圖判書金元命, 肅雍府右司尹金忠信, 前判衛尉寺事張天志, 判典客寺事張伯顔, 前上護軍慶補, 檢校評理洪深·宋璟, 故典校寺事金漢龍, 故軍器監金敦民, 前司議朴大陽, 前大護軍金阿赤·朴普安, 大護軍羅光滿·金立堅, 三司右尹金光乙, 軍器監金光乙, 前司宰令金暉, 典理摠郞田祿生, 典法摠郞權鑄, 禮儀摠郞柳實, 親從護軍金世德, 三司副使朴璘, 前護軍趙君玉, 前水原府使金興祖, 前典農副正鄭世文, 前護軍金斯革·康福龍·奉仁輔, 護軍裴吉·李逢雨·薛松, 典醫副正禹顯, 軍簿正郞朴思愼, 考功正郞洪師瑗, 檢校上護軍宋忠·金貴萬·朴守英·金古都不花, 中郞將金天老·吳守·李存敬·趙成·朴伯顔·李石丑斯·林祐·羅元, 郞將李遷·張龍·劉德, 爲二等功臣.

 

錄僉兵輔佐功, 以左政丞柳濯, 三司右使李成瑞, 僉議評理李春富, 知密直司事李龜壽, 前判典農寺事全以道, 大護軍林堅味, 爲一等功臣. 判軍器監事尹海, 前大護軍睦忠, 典法摠郞柳冲, 爲二等功臣.

 

又錄收復京城功. 以贊成事商議黃裳, 政堂文學韓方信, 知都僉議安遇慶, 判密直司事李珣, 密直使崔瑩, 知密直司事李龜壽, 密直副使禹磾·柳淵·韓暉, 前密直副使許猷, 開城尹梁伯益, 僉議評理李仁任, 典理判書吳仁澤·金貴, 禮儀判書洪瑄, 典工判書趙希古, 版圖判書金漢眞, 前版圖判書金元命, 前典工判書金漢貴, 前判閣門事金得齊, 左常侍金鋐, 判司宰寺事權長壽, 判內府寺事邊安烈, 判宗簿寺事李太祖諱, 左代言柳繼祖, 鷹揚軍上護軍朴椿, 前鷹揚軍上護軍洪師禹, 判宗簿寺事池龍壽, 判司僕寺事朴元澤, 前上護軍慶補, 判司宰寺事金之瑞, 大護軍林堅味·羅光滿·趙思敏·睦忠, 前大護軍李元琳·金良劒·金阿赤, 正尹魯哲, 典客令全甫, 護軍金世堅·康永·張龍·吳六和, 前護軍劉富·曹金剛, 親從護軍金世德, 版圖摠郞朴良吉, 典工正郞河乙沚, 前知文州事朴仁桂, 中郞將朴允淸, 宦者延城府院君金玄, 溫陽府院君方節爲一等功臣. 延安君宋卿, 前密直副使金光祚, 軍簿判書尹陟, 判書雲觀事禹吉生, 判典客寺事張伯顔, 衛尉尹廉興邦, 廣州牧使宋良遇, 漢陽尹崔安沼, 安邊府使李昉, 前判內府寺事閔珝, 前判典農寺事全以道, 上護軍金庾, 判內府寺事李善, 前安州牧使鄭文祐, 前判繕工寺事林完, 前判典醫寺事石抹天英, 大護軍辛廉·李用藏·李得霖, 前大護軍李華·馬天麟·金光富·許瑞·邊光秀, 前典儀令金光雨, 海州牧使金桂生, 小府尹李廣大, 安邊府使金彦龍, 判典醫寺事崔英氣, 內府令李元桂, 前軍器監韓邦彦, 小府尹金長柱, 護軍趙仁璧·金允精, 前宗簿副令康元甫, 都官正郞柳玽, 尙州判官崔仲淸, 中郞將辛之奕·尹善, 典儀注簿張夏, 知咸州事朴仁蕆, 前護軍韓仲明·趙君玉·金斯革, 軍器少監李芳年, 護軍洪久佐, 典理摠郞河源, 前成均司藝金銖, 書雲副正鄭居吉, 寢園令李子修, 中郞將趙平·李子芬, 前奉車令都千遇, 爲二等功臣.

 

一等, 圖形壁上, 父母妻, 超三等封爵, 官其子一人七品, 若無子, 則甥姪女壻一人拜八品. 驅史五人, 眞拜把領七人, 許初入仕, 子孫蔭職敘用, 賜田一百結, 奴婢一十口. 二等, 父母妻, 超三等封爵, 官其子一人七品, 若無子, 則甥姪女壻一人拜八品. 驅史三人, 眞拜把領五人, 許初入仕, 子孫蔭職敘用, 賜田五十結, 奴婢五口.

 

冬十一月 壬申 錄己亥擊走紅賊功. 以守僉議侍中慶千興, 贊成事宋卿·安遇慶, 前贊成事李成瑞, 判開城府事李珣, 三司左使禹磾, 前評理睦仁吉, 前知都僉議柳方啓, 密直使金光祚, 知密直司事池龍壽, 檢校密直副使趙暾, 版圖判書許子麟·辛珣, 典法判書柳繼祖·金先致, 前典法判書崔準, 典工判書李善, 護軍金斗達, 前護軍趙璘, 判事張臣輔·皇甫琳, 上護軍魯哲, 前上護軍金孫, 司僕正王伯等, 爲一等功臣. 僉議評理韓暉, 密直副使邊安烈, 密直商議趙希古, 前密直副使金蘭, 開城尹金漢眞·朴元, 版圖判書羅世, 禮儀判書李守·張必禮, 判典儀寺事崔公哲, 前上護軍睦忠·康永, 判事金良劒·李元桂·金千年·王福命·金蔕·金珍·金長柱·王普門·金光富, 大護軍方天奉·朴修敬, 前大護軍王安德·孔仁貴·宋希玉·高如意, 前司宰令張之寶, 書雲正張補之, 前司宰令尹有麟, 宗簿令金於巨, 江華府使吳漢臣, 宗簿副令李益, 前內府副令兪之哲, 小府少尹韓仲寶, 前護軍高世·元奇·金于魯不花, 中郞將李貴榮, 宦者府院君金玄·方節等, 爲二等功臣.

 

一等, 圖形壁上, 父母妻, 超三等封爵, 官其子一人七品, 若無子, 則甥姪女壻一人, 拜八品. 驅史五人, 眞拜把領七人, 許初入仕, 子孫蔭職敘用, 賜田一百結, 奴婢一十口. 二等, 父母妻, 超三等封爵, 官其子一人七品, 若無子, 則甥姪女壻一人, 拜八品. 驅史三人, 眞拜把領五人, 許初入仕, 子孫蔭職敘用, 賜田五十結, 奴婢五口. 錄僉兵濟師功, 以西北面都巡問使李仁任, 安州牧使李金剛, 定州牧使林熙載, 順州府使曹敏修等, 爲二等功臣. 父母妻封爵, 官其子一人七品, 若無子, 則甥姪女壻一人, 拜八品. 驅史三人, 眞拜把領五人, 許初入仕, 子孫蔭職敘用, 賜田五十結, 奴婢五口.

 

高麗史節要 卷之二十七 恭愍王[]

是歲大饑慶尙道賑濟使禮部侍郞全爾還啓曰監務縣令職最近民苟非其人欲民無飢寒不可得也先王知其然凡監務縣令皆用登科士流今悉出胥徒侵漁萬端勸課農桑修明敎化乎巡視義城縣有舊堤堰若加修築雖大旱可以灌漑縣令坐視不修以致失農奉旨已杖之願自今凡監務縣令專用登科士流然之卒不能用

 

(5) 전 언(全彦)

고려사35- 세가 제35 > 충숙왕 2 > 충숙왕 정묘 14(1327)

충숙왕 정묘 14(1327) (1/1)

十四年 夏五月 僉議中贊金怡卒.

冬十一月 戊子 敎曰 寡人在都五年 姦臣謀移國祚侍從之臣盡節輔佐終始一心其功可錄 以僉議政丞尹碩化平君金深上黨君韓渥西河君任子松贊成事元忠全英甫叅理安文凱李恭崔濬甘泉君全彦豐壤君趙瓊密直使孫琦朴仲仁同知密直司事曹碩密直副使金之鏡軍簿判書李那海判司宰寺事李仁吉判繕工寺事張逸右副代言奉天祐鷹揚上護軍崔安道上護軍申時用韓季輔上護軍致仕姜彦護軍全世貞朴松中郞將崔孫祐等爲一等功臣贊成事鄭方吉密直副使鄭孫英內府寺事羅英秀淳昌君林仲沇通化君金千寶政堂文學朴遠密直副使李揆判典儀寺事趙石堅檢校評理金富民部典書權謙鄭順判典校寺事李兆年奉翊致仕裴英之李連檢校判書韓永羅州牧使張沆上護軍崔德符劉方世檢校上護軍朴連尹吉甫執義鄭瑚大護軍張英伯金彦丘洪贊金榟前典客令朴永林護軍吳挺仁宋善莊崔昌義李重陽李暉鄭仁伯尹安淑趙甫典醫副正金碩平海副使朴玄柱中郞將崔雲桓允全白元泰金壽金成傑文成柱高宗甫金迪朴成瑞金天鏡庾良俊密城副使劉臣啓郞將白仁庇金韓璡劉椿散郞金仁鏡爲二等功臣賜田及臧獲父母妻子爵有差.

충숙왕 11(1324) 갑자년

二月 丁卯 大護軍張公允賚批目, 還自元. 琮爲大匡定安君, 察罕帖木兒爲大匡安山君, 琯爲成安君, 理爲富平君, ·義並爲正尹, 權漢功爲醴泉君, 崔有渰守僉議政丞判選部事大寧府院君, 金深守僉議政丞判摠部事, 權準·金怡僉議贊成事, 崔誠之·尹莘傑爲三司使, 林仲沇爲推誠亮節功臣, 任子松爲直朝言亮翊贊功臣, 並僉議評理, 元忠僉議評理, 李齊賢爲密直司使, 朴仁幹爲盡誠秉義翊贊功臣知密直司事, 崔天藏爲推誠佐命保節功臣同知密直司事, 金千寶同知密直司事大司憲, 柳仁奇同知密直司事, 趙瓊·元善之·全彦爲密直副使, 宦者李信爲輸忠保節同德佐理功臣寧越府院君. 丁丑 吉昌君權準如元, 賀改元. 以朴瑗爲右副代言. 壬午 以前三司使金元祥·趙延壽貳於瀋王, 並下巡軍, 籍沒其家, 杖流于島. 下延德大君塤于巡軍獄

 

고려사

충혜왕 즉위년(1330) 경오년

夏四月 壬午朔 護軍趙得圭如元, 白王曰, “上王囚權省金台鉉及尹碩·元忠等, 以鄭方吉, 權行省事.” 庚寅 以金深爲都僉議中贊, 任子松·元忠·全彦爲贊成事, 李凌幹·李揆爲僉議叅理, 李齊賢爲政堂文學, 全英甫·韓渥爲三司使, 尹奕爲密直使, 權謙·金文貴·金之鏡爲密直副使, 全信爲監察大夫, 韓宗愈知申事, 李湛·尹安庇爲右左代言, 李君侅爲右副代言. 甲午 王獻白馬八十一匹. 帝御興聖殿, 會諸王·駙馬, 置酒, 勑王以屬序坐. 戊戌 王宴關西王. 上王遣張沆如元, 請太醫. 仍以書論王曰, “聞俗儒有冒進者, 王其勿用.” 癸卯 王享右丞相燕帖木兒于其第, 酒半, 丞相起舞, 王亦起舞, 獻酬劇飮.

 

심양왕[瀋陽王]

요약

중국 원()나라가 고려 사람에게 준 봉작(封爵)

즉위 7개월 만에 부왕(父王)인 충렬왕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원나라에 머물던 고려 충선왕이 무종(武宗)을 원나라 황제에 오르게 하는 데 공을 세워 처음으로 원나라로부터 심양왕의 봉작을 받았다. 당시 선양[瀋陽]을 중심으로 한 랴오닝성[遼寧省]에는 고려의 전쟁포로 ·항속민(降屬民) ·유민(流民) 등의 집단이 많아, 원나라는 고려에서 볼모로 데려간 영녕공(永寧公)을 안무고려군민총관(安撫高麗軍民摠官)에 임명하여 이 지역을 관장하게 하였다. 심양왕은 1310년 심왕(瀋王)으로 개칭되고, 충선왕의 조카인 연안군(延安君) ()가 심왕을 이은 뒤부터는 실권이 없어지고 명예적인 봉작에 불과하였다. 그 후 심왕은 연안군의 손자인 탈탈불화(脫脫不花)가 계승하였는데 이 두 심왕은 고려의 왕위를 노려 군대를 동원하는 등 분란을 빚기도 하였다.

[출처] 심양왕 [瀋陽王] (두산백과)

영오하다3 (穎悟--)[ː오하다]

[형용사] 남보다 뛰어나게 영리하고 슬기롭다.

호탕할 탕

1. 호탕하다(豪宕--), 대범하다(大汎大泛--) 2. 방탕하다(放蕩--) 3. 방종하다(放縱--) 4. 넓다, 광대하다(廣大--) 5. 어둡다, 어리석다 6. 지나치다, 통과하다(通過--) 7. 탕건(宕巾) 8. 석굴(石窟)

정문[程文]

과거를 시행할 때 독권관(讀卷官)이 채점(採點)을 하기 위하여 만들던 모범 답안지(答案紙).

[출처] 정문 [程文]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지사 [知事]

1308년에 충선왕이 복위해 다시 한번 관제를 개혁하자 밀직사와 삼사를 제외한 모든 중앙관부의 지사가 혁파되었다. 그 해에 신설된 제용사(濟用司)에 정5, 정원 2인의 관직으로 지사를 두었으나, 1310(충선왕 2)에 곧 혁파되었다. 그 뒤 춘추관에 2품 이상이 겸임하는 지사가 새로 설치되었다.

[출처] 지사 [知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예부[禮部]

정의

고려시대 상서육부(尙書六部) 중 예의·제향·조회(朝會교빙·학교·과거 등의 정사(政事)를 관장했던 중앙관청.

[출처] 예부 [禮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

고려 시대 문하성(門下省)에 소속된 정4(正四品) 관직(官職). 낭사(郎舍)의 하나로 간쟁(諫諍), 봉박(封駁), 서경(署經) 등의 일에 관여했음. 예종 11(1116) 이후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를 고친 이름. 충렬왕 24(1298) 충선왕이 우간의대부로 환원시키고 종4품으로 낮추었으나 얼마 뒤에 다시 우사의대부로 했음. 공민왕 5(1356) 간의대부(諫議大夫)로 고치고 품계를 종3품으로 올렸다가 동왕 11(1362) 사의대부(司議大夫), 동왕 18(1369) 간의대부, 동왕 21(1372) 사의대부로 고쳤음.

[출처] 우사의대부 [右司議大夫]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同知密直司事 (동지밀직사사)

고려시대, 밀직사(密直司)의 종2품 벼슬. 同知密直. 同知密直事. 同知. 同知事. 同知司事.

典工判書(전공판서)

고려시대, 전공사(典工司)의 정3품 벼슬

회의도감[會議都監]

고려 시대 임시로 설치되었던 관청의 하나. 설치 시기는 문종 때로 추정됨. 관청의 업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으며 다만 독립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나 식목도감(式目都監)에 부속되어 서정(庶政) 일반에 관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출처] 회의도감 [會議都監]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출척사[黜陟使]

고려 시대 지방 관리의 치적을 살피어 출척(黜陟)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되던 관직임.

[출처] 출척사 [黜陟使]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출척[黜陟]

관직을 혹은 삭탈하여 물리치고, 혹은 올려 줌. 무능한 사람을 물리치고 유능한 사람을 서용하는 일.

[출처] 출척 [黜陟]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내칠 출]

1. 내치다 2. 물리치다 3. 내쫓기다 4. 버리다 5. 떨어뜨리다 6. 줄이다[부수]

태중대부[太中大夫]

정의

고려시대 문관의 위계제도.

내용

1076(문종 30)에 종4품 상계(上階)로 정해져 전체 29등급 중 제4계였다. 1298(충렬왕 24)에 충선왕이 즉위하여 개정할 때 정4품계로 승급되고, 1356(공민왕 5)에는 다시 종3품 상계로 계품이 올라간 뒤, 중정대부(中正大夫)와 번갈아가면서 고려 말까지 존속되었다. 문산계

[출처] 태중대부 [太中大夫]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간의대부[諫議大夫]

요약 고려시대 문하부(門下府)의 관직.

사의대부(司議大夫)라고도 한다. 원래는 고려 목종 때부터 좌우간의대부가 있었다. 문종 때 정4품관을 좌우 각 1명씩 보직하였다가 1116(예종 11) 좌우사의대부로 하였으며, 1298(충렬왕 24) 좌우간의대부로 명칭을 고치고 품계를 내려 종4품관으로 하였는데, 다시 좌우사의대부로 개칭하였다. 1356(공민왕 5) 통합하여 간의대부로 개칭하고 종3품으로 승격하였다. 1362년 다시 좌우사의대부로, 1369년에 좌우간의대부로, 1372년에 좌우사의대부로 개정하였다. 직능은 보궐(補闕습유(拾遺) 등과 함께 낭사(郎舍)로서 봉박(封駁)과 간쟁(諫爭)을 담당하였다.

[출처] 간의대부 [諫議大夫] (두산백과)

정순대부[正順大夫]

요약 고려시대의 문산계(文散階).

고려시대 18품계 가운데 제5등급인 정3품 상계의 관계명이다. 1308(충렬왕 34) 충선왕이 복위하여 문산계의 정3품을 상계와 하계로 나누면서 정3품 상계(上階)로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의 문산계는 이품사품이 대부계였으며, 대부계는 종2품의 통헌대부(通憲大夫) 이상과 그 이하 사이의 구분이 있었다. 1356(공민왕 5)에는, 1076(문종 30) 문산계 29계 중 제6계인 정4품 상계의 관계명으로 제정되었던 정의대부(正議大夫)로 개칭되었다.

1362(공민왕 11) 관제가 개편되어 정순대부로 고쳤다가 1369(공민왕 18) 정의대부로 다시 바뀌었다. 1372(공민왕 21)에는 1362(공민왕 11)의 관제로 복구되어 정순대부로 다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 문산계 정3품 상계의 관계명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였으며, 정순대부는 의빈계 정3품 하계의 관계명으로 당하관에 해당되었다.

[출처] 정순대부 [正順大夫] (두산백과)

광정대부[匡靖大夫]

요약 고려시대 문관의 품계.

l275(충렬왕 1)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를 고쳐 광정대부라 칭했다가 1298년에 폐지하였다. 1308년 정2품으로 하여 부활시켰으며, 1310(충선왕 2)에는 종2품 상()으로 개정하였다. 1356(공민왕 5) 폐지, 1362년 다시 정2품으로 하였으나 1372년에 폐지되었다.

[출처] 광정대부 [匡靖大夫] (두산백과)

높고 클 외

1. 높고 크다 2. 장원하다(壯元狀元--) 3. 높고 큰 모양 4. 장원(壯元狀元)


출처 : 전씨(全氏) 광장
글쓴이 : 전과웅 (55세/정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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