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남효온 유금강산기 [ 훈도 전대륜 ]

2018. 4. 25. 12:55 인물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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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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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유산기)

표제어 : 일련사건 9

접수 일시 : 2018-04-22

余從訓導金大倫及柳襄陽乘舟泊松島에서

훈도 김대륜이 아니고 전대륜입니다. 수정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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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從訓導金大倫及柳襄陽乘舟泊松島에서

훈도 김대륜이 아니고 전대륜입니다. 수정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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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기

유금강산기 남효온

 

분류

문학 > 금강산 > 유산기

 

삼일포 놀이를 하다

 

44일 갑신일,

태수 조공이 양양 군수 유자한을 위해 삼일포의 놀이를 주선하자, 나도 따라 갔다. 삼일포는 신라 때 화랑 안상(安祥), 영랑(永郞)의 무리가 와서 3일 동안 놀고 갔던 곳이다. 그래서 이름이 되었다. 포구의 암벽 사이에 단서(丹書) 여섯 글자가 있다. 화랑의 무리가 쓴 것이다. 수면에서 4, 5리를 가면 돌섬 하나가 있고, 낙락장송이 몇 그루가 있다. 그러므로 이름을 송도(松島)라고 하였다.

 

동남쪽 모퉁이에서 바라보면 돌이 거북 모양과 같은 것이 구암이다. 구암의 뒤에 하얀 바위가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으므로, 이름을 설암이라고 한다. 물 북쪽에 몽천사(夢泉寺)의 옛터가 있는데 참으로 절경이다. 나는 훈도 전대륜과 양양 군수 유자한을 따라, 배를 타고 송도에 정박하였다가 배를 저어 단서가 있는 암벽 아래 도착하였다. 과연 여섯 글자가 있었으니, ‘영랑도남석행(永郞徒南石行)’이 그것이다. 글자는 돌에 부딪쳐 훼손되었다.

 

전대륜이 말하기를,

옛날에 방문객을 싫어하는 태수가 있었다. 그런데 객이 이 고을에 오게 되면 반드시 단서를 보고자 하였으므로, 고을 태수가 그 비용을 대기가 버거워서 부수려고 하였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글자가 획이 마멸되지 않아서 해독할 수 있었다.

 

내가 그 글의 뜻을 물으니 대륜이 말하기를,

영랑이란, 신라 사선(四仙)의 하나요, 남석(南石)은 이 돌을 지적한 것이요, ()이란 돌 위로 간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세상의 문인들이 모두 이와 같이 해석한다. 내가 생각건대, 이 돌이 고성에서 보면 북쪽에 있고, 금강에서 보면 동북쪽에 있고, 동해 바다에서 보면 서쪽에 있다. 남석이라고 칭한 것은 더욱 해득할 수가 없다. 여섯 글자가 하나의 문장이 되는데, 문리가 대단히 소략하여 어린이들의 솜씨와 같으니, 옛사람의 문법이 응당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일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곧 영랑의 무리 가운데 남석행(南石行)이란 성명을 가진 자가 제 이름을 쓴 것이 아닌가 한다.

 

배를 멈추고 돌 위에 오르니, 그 정상에 미륵불을 위한 매향비(埋香碑)가 있다. 고려시대에 세운 것이다. 배를 타고 송도로 돌아와 온종일 술을 마시고 놀았다. 반찬이 매우 풍성하였다. 어부를 시켜 고기를 잡아서 회를 먹기도 하고, 혹은 연구시(聯句詩)를 지어 부르고 화답하였다. 오후에 큰 바람이 부니 태수는 무서워서 배를 타고 돌아가고 나는 온정으로 돌아왔다.

 

원문

 

삼일포 놀이를 하다

 

甲申. 太守爲柳襄陽爲三日浦之遊. 余從之. 三日浦者. 新羅時有花郞安祥永郞之徒. 遊三日乃罷. 故名焉. 浦口巖壁間. 有丹書六字. 仙徒所書也. 水方四五里. 中有一石島. 有長松數株. 故名曰松島. 東南隅. 望見石如龜. 故名龜巖. 龜巖之後. 有白巖崒嵂於海濱. 名曰雪巖. 水北有夢泉寺故基. 眞絶境也. 余從訓導全大倫及柳襄陽乘舟泊松島. 又棹舟至丹書巖下. 果有六字. 曰永郞徒南石行. 其字爲石所亂擊. 大倫曰. 前有厭客太守. 客來郡者必欲觀丹書. 故太守惡其供費. 欲擊碎云. 然其字畫不泯. 可解讀. 余因問其文義. 大倫曰. 永郞者. 新羅四仙之一. 而南石者. 指此石也. 行者. 行于石也. 世之文人. 皆解如是. 余惟此石. 自高城視之則在北. 自金剛山視之則在東北. 自東海視之則在西. 其稱南石. 尤不可解. 且六字成文. 文理大疏. 類兒童手. 古人文法. 應不如是. 若非出於兒輩之好事. 則是永郞之徒有姓名南石行者題名乎. 泊舟登石上. 其頂有爲彌勒佛埋香碑. 高麗時所立. 舟還松島. 終日宴飮. 盤饌甚盛. 或令漁人網魚斫膾. 或聯句唱和. 午後大風作. 太守惶懼還舟. 余還溫井.

 

[출처] 일련사건 9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유산기),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훈도[訓導]

요약

조선시대 서울의 4(四學)과 지방의 향교에서 교육을 담당한 정·9품의 교관.

 


출처 : 전씨(全氏) 광장
글쓴이 : 전과웅 (55세/정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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