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안렴사로 나가는 장령 전오륜에게 [포은 정몽주]

2022. 3. 4. 20:35 인물열전

 

영남안렴사로 나가는 장령 전오륜에게

 

포은 정몽주

 

그대 어디로 가려는가?

멍에 메운 말들 가을바람에 고개 드는데

깨끗한 마음 무거운 책임 임금 대신

민정(民情) 수집(風謠: 民心) 쉴 틈인들 있을까?

합수에는 쪽빛에 물든 물결이 부드럽고

진산에는 가을 단풍이 늦었겠구먼

전에도 수령으로 나가 덕정(德政)을 베풀더니

이제 또 나가누나 안렴사로

 

[原文]

贈全掌令五倫嶺南按廉

 

之子欲何適

秋凉驄馬驕

心淸代祀事

任重採風謠

陜水藍光嫩

晉山楓葉淍

朱輪舊遣愛

玉節又逍遙

 

[出典] 圃隱先生集 卷之二

[출처] 삼현실기(三賢實記)

 


 

@ 안렴사 [ 按廉使 ]

고려 시대 도(道)의 장관. 충렬왕 2년(1276)에 안찰사(按察使)를 안렴사로 개칭. 임무는 도내의 주현을 순안(巡按)하면서 첫째는 수령의 현부(賢否)를 살펴 출척하는 일, 둘째는 민생의 어려움을 살피는 일. 셋째는 형옥(刑獄)을 다스리는 일. 넷째는 조세의 수납. 다섯째는 군사적 기능에 관한 것이었음. 안렴사는 조선 시대와 달리 도에 상주하는 전임관이 아니라 사명지임(使命之任)으로 임기는 대체로 6개월이었음.

[네이버 지식백과] 안렴사 [按廉使]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장령 [ 掌令 ]

정의

조선시대 사헌부의 정4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내용

조선건국 직후 태조신반관제에 의하면 사헌부에 정4품의 시사(侍史) 2인이 있었는데, 이 시사가 뒤에 장령으로 바뀌었다. 즉, 1401년(태종 1) 관제개혁 때 시사를 장령으로 고쳐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에 성문화되었다.

사헌부는 고려시대에 사헌대·어사대·금오대·감찰사 등 여러 이름을 거쳐, 1298년 1월 충선왕 때 사헌부라고 고친 것이 조선시대로 계승된 것이다.

『경국대전』에 사헌부의 직책은 시정을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원억(寃抑)을 풀어주며, 남위(濫僞)를 금하는 등의 일을 맡는다고 되어 있는 것과 같이, 백관의 비위사실에 대한 탄핵감찰권과 일반범죄에 대한 검찰권을 아울러 행사하는 동시에 불복공소(不服控訴)에 대한 고등법원으로서의 구실까지 겸하는 등 왕지(王旨)를 받아 법률을 집행하는 법사(法司)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인사(人事)와 법률개폐의 동의 및 거부권행사라고 할 수 있는 서경권(署經權) 등 국정전반에 걸쳐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장령을 포함한 대간은 사헌부의 기간요원이기 때문에 그 직무가 막중하였으므로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강직한 젊은 엘리트들이 임명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문과에 급제한 자로서 직배(直拜)하거나 승문원·성균관·홍문관 등을 거친 자들이 임명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령 [掌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정몽주[ 鄭夢周 ]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주자가례》를 따라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단심가〉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몽주 [鄭夢周] (두산백과)

 

@ 총마 [ 驄馬 ]

푸른 빛에 흰색이 섞인 말. 총이말. 청총마(靑驄馬).<두보杜甫 총마행驄馬行>

 

@ 代祀(대사)

남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냄.

 

@ 風謠 [ 풍요 ]

그 지방(地方)의 풍속(風俗)을 읊은 노래.

 

@ 陜水 (합수)

합천(陜川)의 물

 

@ 朱輪(주륜)

붉은 칠을 한 수레의 바퀴. 옛날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던 수레를 이르는 말.

 

@ 玉節 (옥절)

옥(玉)으로 만든 부신. 옛날 관직(官職)을 받을 때 증서(證書)로 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