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임금이 충간(忠簡)公 전식(全湜)에게 내린 사제문(賜祭文)

2022. 3. 16. 21:24 인물열전

 ※ 사제문(賜祭文)이란?

 

왕이 사망한 신하나 사후 신하의 묘 등에 제사를 내리면서 하사하는 글.

왕이 신하들에게 내리는 사제문 역시 유사한 형식으로, 두사(頭詞)와 미사(尾詞)에 문구의 차이가 있다. 대체적인 형식을 보면, 두사(頭詞)는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왕은 아무개를 보내어 아무개의 영령에게 유제(諭祭)한다.”고 하고, 미사(尾詞)는 “이에 근신을 보내어 제물을 바치노니 영령이여 이르러 와서 이 제사에 흠향하리라.”라고 하였다.

 

 

 

인조 임금이 충간(忠簡)公 전식(全湜)에게 내린 사제문(賜祭文)

 

 

사제문(賜祭文)

 

인조 임금이 예조정랑 이이송(李爾松)1)을 보내어 충간공(忠簡公) 사서(沙西) 전식(全湜)에게 사제(賜祭)한 사제문은 다음과 같다. 1643년(인조 21년) 3월에 지었다.

 

 

혼원한 기운이요, 중후한 자질입니다. 광채를 감추어 어둡고 화려하지 않으나 신실합니다. 학문을 독실히 하고 행실에 힘써 거동은 경술2)에서 말미암습니다. 임금에게 손으로 가니 대인의 길함입니다. 글은 선조로부터 이름나서 근열3)에 올랐습니다. 혼란(昏亂)에 이르러서는 명철보신(明哲保身)하여 더럽고 탁한 중에도 깨끗하고 조집(操執)은 더욱 정결하였습니다.

 

짐이 준재를 부르는 데에 이르러서는 여러 사람 중에 수석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주행4)을 펴 총애하여 영(홍문관)에 올랐습니다. 논사(論思)와 간쟁(諫諍)함이 정성을 다하였고, 탁시(擢試) 전형5)함에 진실로 공명정대함을 나타내었습니다. 잠시 웅장하게 큰 고을을 내려 주었는데 실로 와치6)함에 자뢰한 듯하였습니다. 잠시 비색한 운수를 당하여 나라가 점점 위태로워짐에 삼로군이 무너지고 팔방이 위태로워 바람에 풀 쓰러지듯 하였습니다. 경(卿)이 때에 향리에 있으면서 의병을 모집하여 창의하였습니다. 험준한 호령7)에서 홀로 심력을 다해 두터운 포위망을 풀었습니다.

 

본문으로 서울에 이르러서는 충성심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이경8)에 제수하였습니다. 장삼사를 그만두고 논의를 더욱 정미함에 사표(師表)로서 지극히 밝게 살펴주었으니 모범이 광대하다 할 것입니다. 큰 어려움의 나머지는 진실로 노성한 이들에게 의뢰하였습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함이 아마도 천성에서 나온 듯합니다. 좋은 평판과 아름다운 이름이 오래도록 더욱 왕성할 것입니다. 권주9)함이 바야흐로 높은데 나이가 이미 쇠하였습니다.

 

토구10)에서 이미 경영함에 조정에 나아갈 기한이 없어졌습니다. 나이를 숭상하는 법11)이 오직 승자12)에 있습니다. 서추13)가 한가롭더라도 또한 사장을 지음이 번거로웠을 것입니다. 경은 비록 용기 있게 물러났으나 짐이 어찌 잠시라도 잊겠습니까? 혹 올까 생각하여 바라서 밤새도록 오매불망하였더니 어찌 오늘에 세상을 떠나갑니까? 길이 광중에 문을 닫으니 전형14)이 이미 사라져 풍재15)는 뉘라서 부치며, 사람이 장차 어디에 의지하겠습니까? 나라가 시듦에 잠규하게 하고 추복16)하도록 하여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여 기억하게 하겠습니다. 구천으로 작별하기 어려우니 애도함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멀리서 애도의 글을 드리니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이 풍족하지 않아도 강림하여 흠향하기를 바랍니다. 적게나마 짐의 충정을 폅니다.

 

계미 삼월(1643. 3.)

 

 

[原文]

 

사제문(賜祭文)

 

混元之氣

重厚之質

含光以晦

匪華而實

篤學勤行

動有經術

用賓于王

大人之吉

簡自先朝

蜚英近列

逮至昏亂

保于明哲

汚浘不滓

所操愈潔

迨予籲俊

首選彙征

展之周行

寵以登瀛

論思諫諍

罊竭精誠

擢試銓衡

允著公明

暫畀雄府

實資臥治

頃丁否運

國步阽危

三路師潰

八方風靡

卿時在鄕

倡合義旅

崎嶇湖嶺

獨殫心膂

重圍才解

奔問及京

嘉乃忠悃

特批貳卿

替長三司

論議益精

蓍龜孔昭

模範維宏

大艱之餘

湜賴老成

愛君忠國

蓋出天性

令聞懿名

久而彌盛

睠注方隆

年齡已衰

菟裘已營

造朝無期

尙齒之典

惟在陞資

西樞職閒

亦煩辭章

卿雖勇退

予豈暫忘

冀或來思

寤寐終夕

胡今逝矣

永悶窀窀

典刑已法

風裁誰寄

人將安仰

國之殄瘁

箴規追服

几杖猶記

九原難作

悼惜焉窮

遙伸愍章

享儀不豊

尙覬來格

少展予衷

 

癸未三月

 

1) 이이송 (李爾松, 1598~1665))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경상북도 청송). 자는 수옹(壽翁), 호는 개곡(開谷). 의성출신이다. 1635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바로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이어서 공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643년 함평현감으로 나갔다가, 1647년 형조정랑을 제수받았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예조정랑으로 있을 때에는 정랑의 신분으로서 인조가 내원(內苑)에 별전(別殿)을 지으려는 것을 끝까지 만류하였고, 함평·풍기의 외직에 있을 때에는 고을 백성들에게 칭송을 들었다. 저서로는 『개곡문집』4권이 있다.

2) 경술(經術)

경서(經書)에 관한 학술을 말함

3) 근열(近列)

임금에게 가까운 관직을 말함

4) 주행(周行)

두루 돌아다니면서 유람(遊覽)하는 것

5) 전형(銓衡)

사람 됨됨이나 재능 따위를 시험(試驗)하여 뽑는 것을 말함

6) 와치(臥治)

누워서 잘 다스리는 것을 말함

7)호령(湖嶺)

충청도와 경상도를 일컫는 말

8) 이경(貳卿)

아경(亞卿)이라고도 함. 참판(參判)을 가리키는 말

9) 권주(睠注)

간곡하게 보호하여 주는 것을 말함

10) 토구지지(菟裘之地)

벼슬을 내놓고 은거하는 곳이나 노후에 여생을 보내는 곳을 이르는 말

11) 상치(尙齒)

치(齒)는 나이, 상(尙)은 받듦의 뜻으로,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을 위하는 일. 노인을 존경하는 것

12) 승자(陞資)

정3품 이상의 당상관에 오르는 일을 말함

13) 서추(西樞)

조선조 때 중추부를 달리 이르던 말

14) 전형(典刑)

예로부터 전(傳)하여 내려오는 법전을 말함

15) 풍재(風裁)

엄한 풍도(風度)를 말함

16) 추목(追服)

상(喪)을 당하였을 때 사정(事情)에 의하여 입지 못했던 거상 옷을 뒷날에 입는 것을 말함

 

[출처] 옥동서원지

 


 

@ 인조 [仁祖]

조선의 제16대 왕(1595~1649). 이름은 종(倧). 자는 화백(和伯). 호는 송창(松窓). 인조반정에 성공하여,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겪었으며, 새로운 군영을 설치하고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재위 기간은 1623~1649년이다.

 

@ 단제사[壇祭祀]

순절한 곳에 제당을 축조하여 道伯 등을 제관으로 보내어 제향하는 의례

-충렬공 송상헌 (부산 송공단)

-문열공 조헌 (금산 칠백의총 내단)

-충렬공 고경명 (담양군 추성관 내단)

-충무공 이순신 (남해 관음포 이락사)

 

@ 사제사[賜祭祀]

가묘에 승지 등 국왕의 근신을 제관으로 보내 제행하는 의례

-충익공 정곤수 (파주시 장단 하포리 선영)

-문충공 이항복 (경기도 포천 소재 사당)

-문정공 윤두수 (성남 소재 임시사당)

-문충공 류성룡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 내 사당)

-충장군 권 율 (행주산성내 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