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관, 해주목사 전 한(全 翰)

2009. 8. 26. 07:26 인물열전

 

서장관(書狀官) , 양주목사

전  한(全   翰)

 

[가족사항] 

   [부]        성명 : 전   희(全   禧)

   [조부]     성명 : 전은로(全殷輅)

   [증조부]  성명 : 전을규(全乙奎)

   [외조부]  성명 : 윤▣▣(尹▣▣)

   [처부]     성명 : 염▣▣(廉▣▣)

 

 1488(성종19)∼1544(중종 39).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산(慶山). 자는 문경(文卿). 호는 경재(敬齋). 군자감 직장 은로(殷輅)의 손자로, 희(禧)의 아들이다.


1517년(중종 12)

 별시문과에 병과 8위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에 들어가 벼슬을 시작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의 좌랑과 정랑을 역임하고, 장예원으로 옮겨 원사(院司)를 지낸 뒤, 사섬시첨정(司贍寺僉正)이 되어 국고의 물품관리를 엄격히 하였다.


그 뒤 사옹원정(司饔院正)·성균관사성을 역임하였다.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외직인 합천군수로 나갔다. 이어서 장단부사·대동찰방(大同察訪), 양주와 해주의 목사를 지냈다.


그가 장단부사로 있을 때, 당시의 세도가인 김안로(金安老)의 아들 연성(延城)이 한 왕자(王子)와 전답(田畓)을 다툴 때 관찰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공정한 판결을 하여 김안로 등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다.


그의 외형은 꾸미지 않아 옹졸한 듯하나 마음이 넓고, 송사에 명쾌하였으며 또한 청렴한 관원이었다.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은 7년 연상인 그의 학문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사옹원정(司饔院正)

  조선시대 사옹원(司饔院)에 두었던 정삼품(正三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위로 도제조(都提調: 正一品), 제조(提調: 從二品∼從一品), 부제조(副提調: 正三品 堂上)

 조선시대 외국에 보내던 사행(使行) 중 정관(正官)의 하나이다. 임시 관직으로 위로 정사(正使), 부사(副使)와 함께 3사(三使)의 하나이고, 기록관이라고도 하여 행대어사(行臺御使)를 겸하였다. 일본에 보내던 통신사(通信使)에도 서장관이 따라갔다. 

 인조 이전의 명(明)나라, 인조 이후의 청(淸)나라에 정기·부정기적으로 보내던 사행에는 양국 협약에 따라 규정된 인원을 보냈는데, 서장관은 정사·부사와 함께 3사라 하여 외교 실무에 큰 역할을 하였다.

 

▷목사(牧使) 

 조선시대 관찰사(觀察使) 밑에서 각 목(牧)을 다스리던 정삼품(正三品) 동반 외관직(外官職)이다. 목은 큰 도(道)와 중요한 곳에 두었는데, 왕실과 관계가 있는 지방은 작더라도 목으로 승격시켰다.  

 경기도(京畿道)에 3원[여주(驪州)·파주(坡州)·양주(楊州)], 충청도(忠淸道)에 4원[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홍주(洪州)], 경상도(慶尙道)에 3원[상주(尙州)·진주(晉州)·성주(星州)], 전라도(全羅道)에 4원[나주(羅州)·광주(光州)·제주(濟州)·능주(綾州)], 강원도(江原道)에 1원[원주(原州)], 황해도(黃海道)에 2원[황주(黃州)·해주(海州)], 함경도(咸鏡道)에 1원[길주(吉州)], 평안도(平安道)에 2원[안주(安州)·정주(定州)] 등 모두 20원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