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판독문>

2009. 8. 24. 21:51 인물열전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판독문>

 

 

(向左側面)

▨▨癸酉年四月十五日兮乃未首▨▨道▨發願敬▨供爲▨弥次乃▨▨正乃末全氏三▨▨

等▨五十人知識共國王大臣」

及七世父母含靈發願敬造寺知識名記」

達率身次願」

眞武」

▨▨願」

 

 

(後 面)

上次乃末」

三久知乃末」

兎願」 (이상 상단)

 

 

願」

夫信」

大▨」 (이상 제2단)

 

乃末願」

久願」

惠信師」 (이상 제3단)

 

夫乃末願」

林乃末願」

惠明法師」

道師」 (이상 하단)

 

 

 

 (向右側面)

歲▨▨▨年四月十五」

日爲諸▨敬造此石」

諸佛▨▨」

道作公願」

使眞公▨」

▨▨願」

 

 

 (正 面)

全氏▨▨」

述況▨▨」

二兮▨木」

同心敬造」

阿彌陀佛」

觀音大」

世至▨」

▨道▨▨」

上爲▨▨」

願敬造▨」

佛▨▨」

此石佛」

內外十方」

十六▨▨」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Ⅱ(1992)]

 

 

<해석문>

판독이 매우 어렵지만, 기왕의 판독문을 종합해 보면, 전면(前面) 52자, 양측면(兩側面) 102자, 후면(後面) 12자, 도합 166자 가량이 확인되고 있다.

 

우선 판독에 앞서 글의 순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기왕의 판독에서는 대체로 전면(前面)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전면(前面)에서부터 읽어 나갔다. 그러나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이 명문의 시작부분을 측면(側面)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당대(當代)의 비슷한 유형의 불비상(佛碑像)을 보면, 불상(佛像)과 명문(銘文)이 따로 취급되었다. 기축명아미타불상(己丑銘阿彌陀佛像)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보통 불상이 앞에 있으면 명문은 후면에 새겨졌던 것이다. 또 계유명천불비상(癸酉銘千佛碑像)과 무인명사면석상(戊寅銘四面石像)도 이 석상과 같은 사면석상(四面石像)인데, 명문은 측면에만 새겨져 있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아, 석상의 명문은 불상을 새기는 면과 공간을 달리하여 썼고, 특히 사면석상일 경우에는 측면에다 글을 쓰는 것이 당대의 양식이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계유명아미타삼존사면석상도 측면에서부터 명문이 시작되고, 남은 글은 인접해 있는 전면 혹은 후면으로 돌려진 것으로 보인다. ‘癸酉年’이라는 간지가 나오는 곳이 측면(側面) 상단(上端)이라는 점 또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석상에는 양측면에 다 간지가 나오고 있어 어느 측면부터 명문이 시작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두 측면의 명문 내용이 각기 다르므로, 두 가지 사실이 독립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무방할 듯하다. 관례상 향좌측(向左側)에서부터 시작하여 후면(後面)으로 하나의 내용이 이어졌고, 다시 향우측(向右側)으로부터 정면까지 또하나의 내용이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이 석상의 명문을 제시하면 다음 페이지와 같다.

 

현재까지 이 석상의 명문에 대해서는 5종의 판독문이 제시되어 있는데, 한두자 외에는 거의 차이가 없어 판독대비표는 따로 제시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대체로 황수영이 판독한 글자를 그대로 취하였다.

 

-해석

석상 명문은 내용상 크게 둘로 나뉘어진다. 즉 향좌측(向左側)과 후면(後面), 향우측(向右側)과 전면(前面)으로 구분되는데, 이것들은 각각 ‘造寺記’와 ‘造像記’로 파악된다. 그런데 향좌측과 후면은 별무리 없이 연결되지만, 향우측과 전면은 명문의 양식이 약간 달라 혹시 다른 내용이 기록된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한다. 즉 이 석상의 명문이 내용상 세개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면의 명문만 따로 독립시킨다 하더라도 첫자인 ‘全’ 앞에는 다른 글자가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향좌측도 ‘發願敬造’와 ‘寺刹造成’이라는 두 가지 내용을 함께 담고 있으므로, 향우측과 전면은 이어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Ⅰ面: 向左側面>

▨▨계유년 4월 15일에 혜(兮) 내말(乃末)… 발원하여 삼가 지어바치니, 미차내(彌次乃)▨, ▨정(正) 내말(乃末), 전씨(全氏)삼(三)▨▨ 등 ▨50인 지식(知識)과 함께 국왕 대신 및 칠세부모(七世父母)와 모든 영혼을 위하여 발원하여 삼가 절을 지었다. 지식 이름을 기록하면, 달솔(達率)신차(身次)가 원했고, 진무(眞武) 대사(大舍)와 ▨▨ 대사(大舍)가 원했다.

 

<Ⅱ面: 後面>

상차(上次) 내말(乃末)과 삼구지(三久知) 내말(乃末), 토(兎) 대사(大舍)가 원했고, … 대사(大舍)가 원했고, 부신(夫信) 대사(大舍)가 (원했고), … 내말(乃末)이 원했고, 구(久) 대사(大舍)가 원했고, 혜신사(惠信師)가 (원했고), 부(夫) 내말(乃末)이 원했고, 림(林) 내말(乃末)이 원했고, 혜명법사(惠明法師)가 (원했고), 도사(道師)가 (원했다).

 

<Ⅲ面: 向右側面>

(계유년)4월 15일에 여러 ▨를 위하여 삼가 이 돌로 된 제불보살(諸佛菩薩)을 만들었다. 도작공(道作公)이 원했고, 사진공(使眞公)이 (원했고), ▨▨가 원했다.

 

<Ⅳ面: 正面>

전씨(全氏) ▨▨ … 술황(述況) … 이혜(二兮) …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과 관음대세지상(觀音大世至像)을 삼가 만들었다. … 원컨대 삼가 만든 이 석불상(石佛像)이 내외(內外) 시방(十方)과 내외십육(內外十六)[을 비추소서].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Ⅱ(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