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기 뺀 차례상…뒤끝없는 한가위

2009. 9. 28. 21:15게시판

 

기름기 뺀 차례상…뒤끝없는 한가위

 

[한겨레]
[건강2.0] 소박한 로보스 상차림 어때요?


LOVOS: 단순함과 최소한을 추구하는 생활양식

튀김·볶음 대신 조림·찜요리
가짓수 줄이고 정갈하게 차려
"쓰레기 남지 않게 양 줄여요"


"시어머니께서는 추석 음식은 무조건 넉넉하게 차려야 한다고 하세요. 음식이 많아지면 과식으로 배탈이 나기 쉽잖아요. 비용 지출이 늘고 주부들의 가사노동도 더해져 여러모로 안 좋기도 하고요. 또 남은 음식들은 처치 곤란이 될 텐데, 이를 어쩌죠?"

주부 이미란(33·가명)씨는 추석을 앞두고 벌써 고민이다. 결혼 4년차, 추석이면 음식의 가짓수와 양을 놓고 벌어지는 시어머니와의 실랑이 때문이다. 남기지 않을 만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씨와 달리 시어머니는 "추석 상은 상다리가 부러져야 한다"고 하신다.

주부들이라면 명절 때마다 한번쯤 '어떤 음식을 할까?' '얼마나 해야 하나?'를 두고 갈등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고민하던 이씨가 선택한 해결책은 '로보스 상차림'이다.

'로보스'(LOVOS·Lifestyle of Voluntary Simplicity)는 '단순한 삶'. 단출한 음식으로 건강은 물론 시간과 비용 절감,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것까지 포함하는 식생활을 일컫는 말이다. 올 추석엔 '로보스 상차림'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을 내세우는 '요리천사의 행복밥상'(blog.naver.com/yummycook) 운영자 윤희정(50)씨의 도움으로 로보스식 상차림법을 알아봤다.

■ 목록에 맞춘 장보기부터

추석 음식 하면 차례상이 먼저다. 무조건 푸짐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엔 차례 뒤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의미도 컸지만, 지금은 오히려 낭비다. 중요한 것은 복잡한 형식이 아니라 정성과 마음이다. 정낙원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는 "차례상은 원래 자기 집안의 형편에 맞게 차려야 한다"며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즈음엔 굳이 많은 음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우선 추석을 지낼 식구 수에 맞춰 음식의 종류와 양을 정한다. 식단에 맞춰 구매할 재료 목록을 작성한다. 장보기에 앞서 냉장고 확인은 필수. 당근과 양파, 통깨 등 평소에 구비돼 있는 야채와 양념은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과일과 고기는 선물받을 것까지 고려해 구매하자. 야채나 생선 같은 생식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버리는 것이 많아지므로, 사온 뒤 곧바로 손질해 냉장고에 넣는 것이 좋다. 윤씨는 "차례상에 올리는 탕을 비롯해 나물과 전의 가짓수를 가능한 한 줄이고, 양도 먹을 만큼만 해야 한다"며 "대신 음식에 지단 등의 고명을 얹으면 정갈하게 음식을 담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 요리 때 기름 사용 자제

차례상을 비롯한 추석 음식은 대표적인 고단백·고지방·고칼로리식이다. 기름에 지지고 볶은 음식과 단 음식이 많다. 성인의 일일 권장 칼로리 섭취량은 남자 2100~2500㎉, 여자 1700~2000㎉. 송편은 5개만 먹어도 밥 한 공기(300㎉)를 먹은 것과 같다. 갈비찜(350㎉), 전(1개-30㎉), 식혜 한 그릇(120㎉) 모두 열량이 높다. 자칫 방심하다간 하루 권장 칼로리를 훌쩍 넘기기 쉽다.

기름 사용을 줄이는 게 가장 먼저다. 튀김과 볶음 대신 기름 흡수율이 적은 조림과 찜 요리를 한다. 전, 잡채, 나물 등 추석 음식은 기본적으로 기름의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제사상에 올리는 각종 나물은 기름에 볶는 대신 데쳐서 무치고, 열량이 높은 참기름 사용을 자제하도록 한다. 김경주 고려대 구로병원 영양팀장은 "과식을 안 하고, 기름진 음식을 삼가야 한다"며 "기름 절약형 프라이팬을 사용하고, 고기와 나물을 볶을 땐 기름 대신 물을 넣으면 맛이 부드러워진다"고 말했다.

저칼로리식에 지방을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과식을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조영연 삼성서울병원 영양팀장은 "적절한 음식량을 먹는 것이 로보스 스타일의 1원칙"이라며 "육류보다는 채식을, 과일은 주스보다는 생과일로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육류는 기름기를 최대한 제거한 살코기만을 사용한다. 설탕의 사용도 자제해야 한다. 송편의 소로 참깨와 설탕 대신 풋콩이나 밤, 녹두를 넣으면 담백해진다. 식혜는 달지 않게 만든 후 마실 때 기호에 따라 당분을 첨가해 먹는다. 맵고 짜지 않게 조리하는 것도 '로보스' 상차림의 한 방법.

정지행 정지행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은 "음식마다 칼로리를 체크해 과식을 피하고, 음식은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좋다"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틈틈이 산책을 하거나 가족·친지들과 대화를 통해 칼로리를 소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 남은 식재료도 활용을

건강과 환경을 위해서는 개인접시를 활용하면 좋다. 자신의 식사량을 조절해 과식을 예방할 수 있다. 남은 식재료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해 쓰레기를 줄이도록 한다. 윤씨는 멸치머리 등 다듬고 남은 식재료를 육수와 천연조미료를 만들 때 사용하고 있다. 계란껍질은 빨래를 삶을 때 표백제로 사용할 수 있다. 사과 껍질은 검게 그을린 냄비 세척에 유용하다.

글 김미영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조상님도 흐뭇한 담백한 명절음식

송편

단순히 윤기를 더할 요량이라면, 아예 참기름을 바르지 말도록 한다. 대신 흰색 송편이 단조롭다면, 단호박·쑥·대추 송편을 곁들임으로써 송편의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단호박은 찜통에 찐 뒤 속을 발라낸 다음 꿀과 함께 쌀가루에 섞어 반죽한다. 쑥은 삶아 곱게 다진 뒤 쌀가루에 꿀과 함께 섞는다. 쑥이 없다면 쑥가루를 써도 무방하다. 대추는 흐르는 물에 비벼 씻은 다음 씨를 발라낸 뒤 곱게 다져서 꿀과 함께 쌀가루와 반죽한다.


잡채

두툼한 냄비를 활용하면 야채를 볶지 않고 만들 수 있다. 냄비에 고기와 양파, 당근, 당면(물에 불린 것), 버섯, 시금치 등 익는 순서대로 냄비에 켜켜이 쌓는다. 이때 익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재료부터 바닥에 깔아야 한다.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 15분 남짓 찌면 야채의 수분 때문에 숨이 죽는다. 숨죽은 야채·고기·당면을 꺼내 볼에 담은 다음 간장, 설탕, 참기름, 통깨, 후추 등을 넣어 버무려준다. 상에 내기 전에 채 썬 배를 얹으면 상큼한 맛에 영양도 높아진다.




코팅이 잘된 프라이팬을 사용하면 좋다. 이 경우가 아니라면 기름을 바로 붓는 대신 솔 또는 기름을 묻힌 종이로 팬에 기름을 펴 발라 부쳐낸다.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카놀라유·포도씨유를 권한다. 오븐을 사용하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전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오븐에 종이포일을 깐 뒤 오일스프레이로 전의 앞뒷면에 기름을 살짝 뿌려 익힌다. 전에다 고추(실고추), 파, 쑥갓 등을 얹으면 보는 맛도 더해진다.


갈비찜

토막 낸 갈비는 기름을 떼어내고 물에 1시간 정도 담가 핏물을 뺀다. 갈비가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생강, 마늘, 대파, 통후추를 넣고 갈비가 2분의 1 정도 익을 때까지 삶는다. 삶은 갈비를 꺼내어 양념한 뒤 찜을 하면 기름기가 빠진 담백한 갈비찜이 된다. 갈비 삶은 물은 버리지 않고 거름종이에 밭치면 기름기와 핏물이 걸러진 깨끗한 육수까지 얻을 수 있다. 돼지갈비찜을 할 요량이면 기름기가 적은 등갈비가 적당하다. 1시간 남짓 핏물을 우려낸 등갈비를 끓는 물에 삶은 다음 찬물에 씻은 후 양념해서 찐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 강력추천 한다.

도움말: 요리블로거 윤희정

송편맛탕 잡채쌈…남은 음식의 변신

'로보스 상차림'을 했지만, 그래도 재료와 음식이 남았다면 색다른 요리로 활용해보자. 블로그 '베비로즈의 요리비책'(blog.naver.com/jheui13) 운영자인 현진희씨는 송편을 그라탱으로 만들면 아이들 간식으로 좋다고 추천했다.

그라탱 용기에 튀긴 송편, 동그랑땡(전 활용 가능), 치즈를 번갈아 얹는다. 맨 위에 피자치즈를 뿌린 뒤 치즈가 녹을 때까지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된다.

블로그 '문성실의 아침점심저녁'(blog.naver.com/shriya) 운영자인 문성실씨는 요리법도 간단한 송편 맛탕을 권했다. 물엿과 설탕을 끓인 시럽에 튀긴 송편을 넣으면 된다. 검은깨, 호박씨, 튀긴 호두 등을 곁들이면 손님 접대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나물은 계란을 얹어 비빔밥으로 먹으면 별미다. 전은 탕수육으로 활용하거나 채를 썰어 야채와 함께 샐러드처럼 먹을 수 있다. 잡채는 춘권피, 만두피, 월남쌈 등에 싸서 먹으면 색다른 요리가 된다. 배와 오이, 사과, 당근, 양파 등은 맛살과 섞어 샐러드를 만들면 명절 동안 부족했던 비타민C와 식이섬유를 보충해준다.

이 밖에 남은 재료는 명절 스트레스에 지친 주부들의 피부를 진정하기 위한 팩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쌀뜨물은 피부 보습과 미백 효과를 주는 훌륭한 세숫물이 된다. 손님을 접대한 홍차와 녹차 티백은 비타민이 많아 피부 진정에 효과적이다. 쓰고 남은 오이꼭지, 배, 사과 등은 갈아서 밀가루, 꿀 등과 섞어 천연팩으로 활용하면 효과 만점이다.

송편 소와 전을 부치고 남은 녹두는 피부 진정에 도움을 준다. 물에 불린 녹두를 믹서에 갈아 얼굴 전체에 골고루 펴바른 뒤 반쯤 마르면 미지근한 물에 씻어낸다. 밤 속껍질을 갈아 만든 율피 가루는 모공 수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믹서에 간 속껍질을 우유와 섞어 얼굴에 바른 뒤 20분 남짓 있다가 닦아낸다.

김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