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7. 23:00ㆍ 인물열전
정선 서운재 [旌善 瑞雲齋]
강원도 정선군 남면 낙동리 남창동(南倉洞)에 있는 사우(祠宇)로, 전선(全愃)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정선전씨(旌善全氏)의 중시조 전선(全愃)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우로, 현재 재실(齋室)로 쓰이고 있다.
1919년 건립되었으며 규모는 19평 정도이다. 현판은 전병훈(全秉薰) (주1)이 썼으며, 그밖에
1918년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내린 액자,
영친왕 이은(李垠)이 쓴 액자,
중국 양강총독(兩江總督) 장인준(張人駿)의 건축기문(建築記文), 호조참판 김문제(金文濟)의 상량문,
전용각(全龍珏)의 중수기 , 전세철(全世哲)의 신도비운반기, 전봉집(全鳳集)의 신도 비각 건립 공로 표창기 등의 현판이 있다.
정원에는 이강(李堈)이 쓴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서운재(瑞雲齋)는 지금까지 취재를 위해 둘러본 강원도에 있는 재실 중에는 가장 큰 규모였다.
재실 뒷 서운산(瑞雲山) 중턱에는 정선 전씨 중시조의 내·외분이 잠들어 계신 묘소가 있다.
중시조의 묘소 바로 위에 있는 영월 신씨 정경부인의 묘소에서 산세를 내려다보면, 장관(壯觀)이다.
눈앞에 펼쳐진 군소봉들은 마치 군대에서 열병식(閱兵式)을 하듯 중시조의 묘소를 향해 도열해 있다.
전병훈(全秉薰, 1857년 - 1927년)
은 구한말의 사상가이다. 호는 성암(成庵)이고, 본관은 정선이다. 평안남도 에서 출생했다.
조선 철종 9년(1857)에 태어나, 고종 29년(1892)에 의금부 도사, 대한제국 광무 3년(1899)에 중추원 의관을 지냈으며, 순종이 즉위하던 해(1907)에 관직을 버리고 중국 광동으로 건너가 정신연구에 몰두하였다. 자는 서우(曙宇),호는 성암(成菴)외에도 취당(醉堂)이 있으며 도호는 현빈도인(玄牝道人)이다. 1920년에 저서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이 출간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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