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전태일은 ○○○다

2010. 10. 31. 21:02 인물열전

나에게 전태일은 ○○○다

분신 40주기 다시 전태일을 말하다
그는 ‘노동의 눈물’이자 ‘저항의 죽비’다

한겨레

전태일은 ‘운명같은 만남’이다. 1970년 이화여대 학보사 기자 시절 전태일 분신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고 노동자들의 삶이 그렇게 열악한 줄 몰랐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전태일 분신에 관한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했고, 이듬해인 1971년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서클 ‘새얼’을 만들었다. 그때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조영래씨가 신문 기고를 보고 내게 연락을 해와서 처음 만났다. 조영래 변호사는 나중에 <전태일 평전>을 썼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조 변호사가 도피 중일 때 평전을 쓰기 위해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씨를 만나던 기억도 난다. 나와 조 변호사의 결혼은 전태일이 맺어준 인연이다.
 
 

전태일은 ‘인간성의 원형’이다. 전태일 사건은 나로 하여금 노동현장에 투신해 노동운동을 하게 하거나 사랑의 원리를 알게 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인생의 교훈을 얻게 했다. 살면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면 ‘전태일은 이보다 몇 배 더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높은 꿈을 잃지 않았으니 나도 그래야지’ 하고 다짐한다. 내가 보기에 전태일은 ‘인간성의 원형’이다. 자신이 어려움을 겪을수록 더 큰 사랑을 키웠고, 고난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높은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결단과 희생을 통해 ‘영원한 승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태일은 ‘나의 표상’이다 나에게 전태일은 노동운동을 하게 된 동기이고, 표상이었다. 전태일의 정신은 첫째, 인간에 대한 사랑의 정신이다. 그는 “나의 전체의 일부인 너, 너의 전체의 일부인 나”라고 말했듯이,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자신의 일부로 여길 만큼 인간을 사랑했다. 둘째,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정신이다. 그는 “인간을 물질화하는 시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노예의 의식에서 주체로” 나설 것을 주창했다. 셋째, 연대의 정신이다. 그는 버스비로 배고픈 시다들에게 빵을 사주고 30리 길을 걸어서 집에 갔다. 그리고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라며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다. 생명까지도.

 

전태일은 ‘손톱 밑에 박힌 가시’다. 외국의 유명한 혁명가들보다도 활동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우쳐 준다. 활동가의 본분을 잃을 때마다 난 전태일이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을 대했던 태도를 생각한다. 어린 노동자에게 풀빵을 사주고 그 먼 길을 걸어서 집에 가곤 했던 그의 모습이 없었더라면 최후의 결심은 나올 수 없었다. 언제나 따뜻하면서도 자신을 ‘바보’라고 낮추고,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부닥쳤던 그의 모습은 손톱 밑의 가시처럼 내 양심을 콕콕 찔러댄다. 전태일이야말로 인권 운동가의 전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