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 18:09ㆍ 인물열전
독립운동가 전예순 (全禮淳)
[1896.8.12~1933.5.10]
1919년 3월 1일
평안남도 안주 지역의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독립선언서를 등사해 시위군중에게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여 중국 의열단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1896년(고종 33)
평안남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안주 지역의 3·1운동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목사 김찬성(金燦星)으로부터 1919년 3월 1일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궐기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였다.
이어 서울과 같은 날에 거사하기로 결심하고 김화식(金化湜)·박의홍(朴義弘)·전성걸(全聖杰) 등 교회 동료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한편, 교인들을 설득해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종용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일 오후, 전예순은 안주면 건인리(建仁里) 서문(西門) 밖에 모여든 교인과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의 정당성을 연설하면서 이 지역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일제의 주동자 색출 때 체포되어
1920년 4월 10일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등의 혐의로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0일과 6월 5일 평양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됨으로써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뒤인
1921년 9월
중국 둥산성[東三省]으로 건너가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다시 김찬성 등과 연락해 비밀결사를 조직한 뒤 군자금 조달 및 연락책으로 활동하다 일본 헌병에 의해 체포되었다.
1922년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뒤
1927년 4월
만기 출옥하였으나, 계속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1933년 5월 10일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전예순 [全禮淳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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