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고찰[전준기(全晙基)]

2015. 9. 29. 09:34 인물열전




승정원일기

고종 32년 을미(1895, 개국504)

330(신축) 맑음

좌목 32-03-30[10]


궁내부 참의에 궁내부 주사 박용화 등을 승차할 것 등을 청하는 궁내부 서리 대신의 계


또 아뢰기를,

궁내부 참의(1)의 자리가 비어 있으니, 궁내부 주사 박용화(朴鏞和)전준기(全晙基)3품으로 올려 차하(2)하고, 주사에 이병관(李秉觀)을 차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그대로 윤허한다는 칙지를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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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2년 을미(1895, 개국504)

69(무인) 맑음

좌목 32-06-09[02]


참서관에 남정식을 임용하겠다는 궁내부 대신 서리의 계


궁내부 대신 서리가 아뢰기를,

참서관(參書官)에 남정식(南廷植), 참리관(參理官)(3)전준기(全晙基), 장례원 제릉사 장(掌禮院諸陵司長)에 정인석(鄭寅奭), 봉상사 장(奉常司長)에 김귀수(金龜洙), 제용원 영선사 장(濟用院營繕司長)에 박용화(朴鏞和), 태복사 장(太僕司長)에 이승수(李承壽), 상의사 장(尙衣司長)에 이헌경(李軒卿), 회계원 금고사 장(會計院金庫司長)에 이인우(李寅祐)를 임용하겠습니다. 은명을 받고자 삼가 상주합니다.”

하였는데, 가자인을 찍었다.





(1)참의[ 參議 ]

요약 조선시대 육조(六曹)에 소속된 정3품 당상관직.

처음에는 각 조(·····공조)에 각 1명씩, 6명을 두었다. 1405(태종 5) 각 조에 좌·우참의 2명씩 총 12명으로 증원하였다. 그러나 1434(세종 16) 무신들을 배려하여 첨지중추부사 4명을 증치하는 대신 좌·우참의를 참의로 바꾸고, 정원은 1명으로 감원하였다. 지금의 차관보에 해당하며 각 조의 참판과 함께 판서를 보좌하면서도 판서와 대등한 발언권을 지니고 있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참의 [參議] (두산백과)


(2)차하 (差下)

[명사] <역사> 벼슬을 시키던 일.


(1)참리관[ 參理官 ]

유형 제도

시대 근대/개항기

성격 관직

시행일시 1894(고종 31)

정의

조선 말기 궁내부의 관직.

내용

1894(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만들어진 궁내부에는 외국어의 통역·번역 사무를 맡는 전문적 관리가 없다가 이듬해 관제개편에서 통역관 2인을 두고 맡아보도록 하였다.

그러나 점차 외국어의 통역·번역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전문적 기관의 설치가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그 뒤의 관제개편 때 참리관 3인과 함께 번역과(翻譯課)가 신설되었다.

그 뒤 다시 궁내의 교섭, 의식 및 친서(親書국서(國書)와 외국문서의 번역 등을 위하여 1900년 궁내부 산하에 예식원(禮式院)을 만들었다.

그리고 칙임관(勅任官)의 장·부장 각 1인 아래 주임관(奏任官)의 외무(外務번역 과장 각 1인과 함께 참리관 1, 번역관 3인을 두었으며, 그 밑에 판임관(判任官)의 주사(主事번역관보 각 5인을 배속하였다. 봉급은 700()을 받았다.

참고문헌

고종실록

증보문헌비고

일성록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참리관 [參理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