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과급제자 전의민(全義民) or 김의민(金義民)

2018. 3. 24. 09:12 인물열전



① 『국조방목(國朝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 11655])

"전의민(全義民)"

② 『국조방목(國朝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38])

"전의민(全義民)"

③ 『등과록(登科錄)(동양문고(東洋文庫, Toyo Bunko)[-2-35-0])

"전의민(全義民)"

 

④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106])

"김의민(金義民)" "一云全"이라는 두주가 있음.

[ "一云全"의 의미는 일설에는 "전의민(全義民)"이라는 뜻임]

⑤ 『국조방목(國朝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47])

"김의민(金義民)

 

동일인물을 두고 5개의 공신력 있는 기록이 다를 때 어떤 인물을 대표로 하고 다른 인물을 일명으로 부가 기록하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다수설인 전의민을 대표로 기록하고 일명 김의민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전의민(일명: 김의민)]

전의민은 3표이고, 김의민은 2표입니다. 더 나아가 전의민이 부기되어 있는 표현을 포함하면 41이 됩니다.

그러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서는 김의민을 대표로 표현하고 부기로 전의민을 기록하였습니다..[김의민(일명: 전의민)]

저는 마음으로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1. 등재 결과 

김의민(金義民)

상세정보

자료수정내역

[문과] 선조(宣祖) 36(1603)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1(21/33)

[인물요약]

UCI G002+AKS-KHF_13AE40C758BBFCU9999X0

일명 전의민(全義民)[](1)

자 의백(宜伯)(2)

본인본관 미상(未詳)(3)

거주지 강릉(江陵)(4)

[관련정보]

[이력사항]

선발인원 33[3723]

전력 훈도(訓導)

관직 공조좌랑(工曹佐郞)

[가족사항]

[()]

성명 : 김축(金軸)(5)

[1] 일명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106])국조방목(國朝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47])에는 성명이 "김의민(金義民)"으로 기록되어 있음.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一云全"이라는 두주가 있음.

국조방목(國朝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 11655]), 국조방목(國朝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38]), 등과록(登科錄)(일본 東洋文庫(Toyo Bunko)[-2-35])에는 "전의민(全義民)"으로 나옴.

[2] : 정선전씨대동보(旌善全氏大同譜)(1990) 1, [42]에는 자가 "의경(宜卿)"으로 나옴.

[3] 본관 : 정선전씨대동보(旌善全氏大同譜)(1990) 1, [42]을 참고하면 본관은 "정선(旌善)".

[4] 거주지 : 국조방목(國朝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38]) 내의 급제 기록을 참고하여 거주지를 추가.

[5] : 위에 언급한 방목들에는 부가 "()"으로 나옴. 정선전씨대동보(旌善全氏大同譜)(1990) 1, [42]에는 부명이 "전윤(全玧), 초명 륜(), 자 백옥(伯玉), 호 돈서(敦叙)"로 나옴. 조부는 전공간(全公侃), 증조부는 전성명(全性命)으로 나옴.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106])

[소장처]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106]); 『국조방목(國朝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 11655][5202][4650-97]); 『국조방목(國朝榜目)(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일사 351.306 B224]); 『국조방목(國朝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47]); 『국조방목(國朝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38]); 『등과록(登科錄)(일본 東洋文庫(Toyo Bunko)[-2-35]); 『해동용방(海東龍榜)(국립중앙도서관[6024-157], 일본 東京大学 阿川文庫(도쿄대학 아가와문고)[G23-176]); 『만력계묘식년문무과방목(萬曆癸卯式年文武科榜目)(하버드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K 2291.7 1748 (1603)])성암고서박물관[성암2-712]

 

 

2. 수정과정

신고 

No. 23003 [오류신고] 문과 급제자 전의민(全義民) 추가등록 및 신규 등록 요청

이름 : 전과웅   등록일 : 2018-03-22   조회수 : 32   

 

문과 급제자 전의민에 대하여 붙임과 같이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추가등록 및 신규 등록을 요청합니다.

증빙자료

1. 국조방목

2. 정선전씨 대동보 (1990)

3. "詩評補遺"에 나오는 전의민의 시

수정요청.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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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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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과 급제자 전의민신규 등록 요청

과거 및 취재

전의민(全義民)

[문과] 선조36(1603) 계묘 식년시

[인물요약]

宜卿

본인본관 정선

거주지 강릉

[이력사항]

공조좌랑, 이조정랑

[가족사항]

조부 公侃

증조부 性命

문과 급제자 전의민추가 등록 요청

[성씨와 본관정선전씨관련인물들정선전씨의 과거 및 취재합격자문과]에 문과급제자 전의민을 붙임과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추가 등록 요청합니다.

근거 국조방목 

근거 족보(정선전씨대동보 1990)

47 子 義民 의민

無后 字 宜卿 宣祖 癸卯 興沙西公湜 (1)登第文科 官至 判官 吏曹正郞 公志於淸儉早退 江湖與鄕人諸君子 修龍虎契 下良辰設 佳會時 人謂一鄕善士 墓先塋下 失傳

근거 전의민의 시

해체의 詩學 : 파격시의 세계 [전의민 (全義民 )]

슬픈 웃음 , 解體 詩學

"절대적 진리도 ,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 (문학과비평사 , 1992) p.17).

"해체주의는 자명한 이치와 질서와 도덕을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세계를 가변적이고 일상적이며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아도 더 이상 일관되게 세계와 교섭하고 대결하는 심리적 통일체나 종합적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해체시는 무질서한 세계를 , 파편화된 세계를 그대로 수용한다."(p.152)

80 년대의 해체시를 두고 한 이 언술들은 필자가 읽기에 마치 김삿갓의 시를 두고 한 말처럼 여겨진다.

예전 鄭澈 (2)이 관동부사로 있을 때 일이다 . 강릉 사람 全義民 (3)이 시를 잘 지었는데 , 송강이 그에게 말하기를 , "내가 전에 平昌 에 갔을 때 藥水 라는 지명이 있기에 한 구절을 지었는데 그 바깥짝을 얻지 못했다 " 하고 읊조리기를 ,

땅 이름 藥水 인데 병 고치기 어렵고

[地名藥水難醫疾 ]

라 하였다 . 그러자 全義民 이 말하기를 , "그 대구 (對句 )가 있지만 감히 여쭙지 못하겠습니다."하였다 . 송강이 억지로 말하기 하니 , 그가 말하였다 .

역 이름 餘粮 인데 주림 구하지 못하네 .

[驛號餘粮未救飢 ]

餘粮 은 강원도 정선 땅에 있던 역 이름이었다 . 송강이 낯빛을 고치고 그를 대하였다 . 대개 시 속에 풍자의 뜻이 담겼던 것이다 . 詩評補遺 에 보인다.

두 구절이 모두 지명을 가지고 훈으로 풀어 유희한 것이지만 , 담긴 뜻은 진지하다 .

(1)

전식 [全湜 ]

조선 중기 문신 . 정경세 · 이준 등과 산수를 유력하여 , ‘상사의 삼로 로 불렀다 .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을 방어하였다 . 1642 년 중추부지사 겸 경연동지사 · 춘추관동지사에 이어 대사헌에 보직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

(2)정철 [鄭澈 ]

출생 - 사망

1536 ~ 1593 선조때 이조좌랑

(3)중종때 헌납을 역임한 全公侃 孫子

崙 敏行 性命 公侃 玧 義民

-2 국조방목

-3 정선전씨대동보



 

답변 

No. 23004 [답변완료] 문과급제 김의민. 각주로 처리하였습니다.

이름 : 운영자   등록일 : 2018-03-22   조회수 : 16   

 

안녕하십니까.
늘 관심을 가지고 저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하신 내용에 대해 답변을 아래와 같이 드립니다.
문과급제 김의민. 각주로 처리하였습니다.
방목, 족보 참고.
고맙습니다.

첨부파일 : 첨부파일 없음

 

 

 

 


출처 : 전씨(全氏) 광장
글쓴이 : 전과웅 (55세/정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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