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14. 14:29ㆍ게시판
호남 양택의 수혈 두승산(斗升山)
선인좌부
호남에는 가장 큰 명당인 호남 팔대지가 있다.
팔대지에는 음택(묘자리)과 양택(집터)이 다 들어있는데, 양택 중에는 고부의 두승산(斗升山)이 으뜸이다.
두승산은 노령산맥으로 부터 뻗어 나온 내장산에서부터 입암산, 방장산, 국사봉을 지나 평지에 솟았다.
주변이 들판이라 보기에도 높게 보일 뿐 아니라 정상에 오르면 천지 사방이 한눈에 펼쳐진다.
두승산은 표고 442미터로서 현재 정읍시와 고부, 소성, 덕천, 이평, 영원 등 5개면에 걸쳐있는 호남의 명산이다.
옛날에는 도순산(都順山), 영주산(瀛州山)으로 불린 두승산은 부안의 변산(邊山), 고창의 방장산(方丈山)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으로 꼽힌다.
암석으로 된 이 산의 줄기는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뻗어있고, 북동쪽은 가파르며 북쪽으로는 천태산(天台山)과 이어지고 있다.
산의 뒤에서 보면 거북이의 모습을 닮았다. 정상은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석두(石斗)와 석승(石升)이 있어 두승(斗升)산이라고 했다 한다.
두승산에는 현재 산성 터가 남았는데 서기 18년 백제 온조왕에 쌓았다고 하는 백제 오방성의 하나인 승고산성(升高山城)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성은 선인봉 남쪽 정상에 석성지가 있으며 이는 선인봉과 두승산 골짜기에 걸쳐 돌로 쌓여져 있다.
정읍시와 고창군 일대는 물론 내장산, 방장산, 임암산 등의 명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므로 성을 쌓고 요충지로 사용할 법 하다.
두승산 남쪽으로 선인봉(仙人峰)이 솟아 있고, 선인봉 남록(南麓)으로 고려시대 영주 관할부의 소재지였던 곳이 현 고부 입석리이다.
예로부터 두승산의 남쪽 기슭에는 호남의 대혈 선인좌부가 있다고 한다.
이는 양택(집터)으로 문천무만, 장상불절지지(장상이 끊이지 않는 곳)라 하여 호남 제1승지(湖南 第一勝地)라고 옥룡자 일지승이 극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음택(묘자리)인 선인포전은 삼십육대에 걸쳐 장상이 나고 당대에 3명의 성인이 나는 자리(三十六代將相之地 三聖人當代出)로 한 때 각 처의 부호 들이 모여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여러 번 두승산을 답사해보았다.
아직 선인포전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양택인 선인좌부 자리는 오래 전에 확인했다. 그런데 이곳은 이미 건물이 들어서 있다.
건물은 현재 갑좌경향(서남향)으로 되어 있고 사람이 살고 있어 자세히 말하지 않겠지만 이 자리는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상태다.
이 자리는 그 기운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날 때까지 땅 임자가 계속 바뀔 것이다.
또 이 자리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올 자리는 못된다. 사회적으로, 국내외적으로 큰 명예를 얻은 사람이 나중에 노년을 보내면서 덕을 쌓고 인사를 받으면서 살 자리다.
굳이 격을 따진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 정도면 이 기운을 감당할 법도 하다.
문제는 왜 이 자리가 좋은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두승산이 오성귀언(五星歸堰)격이기 때문이다.
두승산은 내장산에서부터 흘러 왔다. 내장산은 화(火), 입암산은 토(土), 방장산은 금(金), 방장산과 입암산으로부터 흘러온 국사봉은 수(水), 두승산은 목(木)이다.
따라서 화생토하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하여 최종적으로 두승산에 정기가 맺어졌다. 그래서 호남의 가장 으뜸가는 양택이다.
왜 오성귀언격인가 하고 묻는 풍수사들이 많이 있다. 산세의 흐름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누가 주인이 될 것인지 궁금하나 누대에 걸쳐 적선하지 않고 이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출처 : 전북일요시사 325호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사 날짜와 시간 (0) | 2009.03.24 |
---|---|
[스크랩] 제사상 차리기 (0) | 2009.03.24 |
젊은 오빠 프로젝트 (0) | 2009.03.11 |
잦은 소변, 높은 혈압 (0) | 2009.03.04 |
하루 10분 운동으로 20대 체력 만들기 (무극장 & 참장공) (0) | 2009.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