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장관은 흥부, 난 흥부집 아들 같은 심정(전재희 복지부 장관)

2009. 9. 18. 07:02 인물열전

 

[Close-up] ‘예산 파이터’ 전재희 복지부 장관

“윤증현 장관은 흥부, 난 흥부집 아들 같은 심정”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예산에 관한 한 ‘최강 파이터’다. 기획재정부 예산실 관계자는 “경제통이 많은 내각에서 전 장관은 자신만이라도 취약계층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복지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정말 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 장관은 꿈쩍도 하지 않던 재정부를 밀어붙여 중증장애인 연금을 내년 7월부터 도입하도록 만들었다.

요새는 저출산 대책의 핵심으로, 소득 하위 50%까지 주는 보육비용 지원을 내년엔 60%까지, 현 정부 임기 내 80%까지 확대하자고 예산 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2010년 예산의 최종 승부처가 될 복지 예산을 책임지고 있는 전 장관을 14일 서울 종로의 장관 집무실에서 1시간 동안 만났다. 그는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흥부이고, 나는 흥부집의 아들 같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재정건전성을 의식해야 하는 윤 장관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복지 예산을 더 요구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을 비유한 표현이다.

-재정부가 내년 복지
지출 증가율을 재정 총 지출 증가율의 두 배 이상 높게 잡겠다고 했는데 만족하십니까.

“아직 협의는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계속 더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소득 양극화가 경기 저점보다 1~2년 후행한다는 것이 고민입니다. 서민들은 위기가 오면 일단 적금이나 보험을 해약해서 쓰지만 그 다음이 문제지요. 서민 생활은 내년에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출산 문제는 국가적인 최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워낙 화급한 문제인 만큼 정부가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저출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현재의 출산율 1.19명으로는 2050년에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최고령 사회가 됩니다. 현재 10.7%인 노인인구 비중이 그때는 38.2%가 되고, 중위연령(전 인구를 연령별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연령)이 56.7세가 됩니다. 65세 이상 1명당 15~64세가 1.4명이에요. 15~64세는 아래 위로 모두 부양하려고 하면 쓰러져요. 저는 등에 불을 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제가 요즘 산모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하나만 낳아서 박사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형제 2~3명 만들어 주는 것이 아이 미래를 위해서 더 좋다’고 말입니다. 기업들도 심각해집니다. 물건을 만들어도 사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한강의 기적은 사람의 힘으로 이룬 겁니다. 1970년 중위연령이 18.5세였습니다. 이건 성장 동력의 문제이고, 국가 존립의 문제입니다.”

-그렇더라도 어려운 재정 여건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재정 안정을 꾀하자는 것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말자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출산 대책을 않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과 당장 재정에 부담이 있더라도 저출산 대책을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덜 줄까요. 분석해 보면 불문가지입니다. 내가 복지부 장관이어서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무위원으로서 다급함을 느껴서 하는 얘기입니다. 빚을 내서라도 저출산 대책을 해야 합니다.”

-예산 당국은 복지부의 보육료 지원대상 확대 방안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요.

“애를 낳으라고 무조건 낳는 것이 아닙니다. 애 낳고 키우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보육 지원과 방과후 돌봄, 두 가지만 확실히 해주면 달라질 겁니다. 그동안 우리는 돈이 없어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이런 정책을 펴왔는데, 사실 출산장려 정책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지원정책이어야 합니다.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의 경우 앞으로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사회보장지출을 덜 쓰게 된다고 합니다. 출산장려정책은 나중에 사회보장지출을 아낀다는 점에서 예방적 투자인 셈입니다.”

-복지예산의 낭비와 누수를 어떻게 막으실 계획입니까.

“구축 중인 사회복지통합망이 가동되면 부정수급자를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의료보호와 건강보험의 낭비요인도 계속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내년엔 1조2000억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을 겁니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안은 과잉기대와 과잉우려가 혼재합니다. 해외환자를 유치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이 과잉기대라면, 의료비가 올라가고 지역 간 의료격차와 의료인 편중이 심해질 것이라는 점은 과잉우려입니다. 만약 지역 간 의료격차가 벌어진다면 국민 생명권 차원에서 해소해야 합니다. 재정부가 그런 우려를 해소할 보완책을 갖고 있는지, 더 투자할 의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11월께 연구용역이 나오면 협의할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유지돼야 합니다. 미국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의 건강보험이에요.”

-윤 장관과 유독 많이 충돌했는데.

“충돌한 적 없어요. 저는 (예산을) 달라고 한 것밖에 없어요(웃음). 윤 장관님 입장을 이해하지만 관점이 같을 수는 없지요. 최종적으로 예산은 국회에서 결정하는 겁니다. 그 전에 정부 내에서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거지요.”

이상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