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여자 혼자 위험하게 거길? 두려움 안고 떠나 자신감 안고 오다

2009. 9. 29. 17:40게시판

[대학생 김혜련의 나홀로 유럽 도전] 

 

 

이탈리아 나폴리·폼페이

 
동양여자 혼자 위험하게 거길?
두려움 안고 떠나 자신감 안고 오다
 
 
 
이탈리아는 한국인들에게 인기 관광지로 특히 로마와 밀라노 등 중부와 북부지역이 인기가 높다. 이탈리아 남부는 천혜의 매력적인 경관과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지만 치안이 불안하다는 인식이 많아 이곳을 찾는 한국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용기를 내서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 도전했다.

죽기 전에 한번 가야할 곳, 나폴리

 
▲ '산 엘모' 성으로 가는 도중 길을 잃어 지도에 나오지 않은 골목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예요?(Where are you going next?)” “나폴리요.(Napoli.)” “조심해요, 거긴 너무 위험해요.(Be carefully, it’s too dangerous.)”

내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만난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특히 ‘나폴리’를 혼자 여행한다고 하니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폴리는 오래전부터 ‘죽기 전에 꼭 한번 나폴리에 가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안풍경이 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산타루치아’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 치안이 가장 열악한 곳으로 꼽힌다. 나도 유럽여행을 계획하면서 나폴리의 치안상태에 대해 익히 들은 바 있다. 가령 ‘마피아의 집결지로 경찰도 마피아와 연관돼 있다’ ‘소매치기가 가장 많은 도시’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닌다’ 등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하지만 폼페이(로마 전성기 때 한순간의 화산폭발로 멸망한 고대도시로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소렌토(이탈리아의 대표적 휴양지) 등 나폴리와 인근의 매력적인 볼거리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로마에서 나폴리로 떠나려니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나폴리에 있는 호스텔의 숙박비를 지불한 상태였기 때문에 취소할 수도 없었다. 7월 19일 오후 2시, 나폴리로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 오르니 동양인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현지인들만 있었다. 온갖 걱정을 안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이탈리아 남자가 말을 걸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풍채가 좋고 인상이 좋았다. 그의 이름은 안드레아 페나치(ANDREA PENNACCHIA).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고향인 나폴리로 휴가차 방문했다고 말했다. 내가 “나폴리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고개를 흔들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지역과 안전한 지역을 알려주며 가방만 앞으로 메고 다니면 안전하다고 말했다. 또 산타루치아항의 아름다움과 마르게리타 피자(Pizza Margherita)에 대해 설명하며 조금씩 나의 긴장을 풀어줬다. 한편으로는 한  달 반 이상을 혼자 여행하는 나를 대단하게 생각했다. 그는 “너는 이번 여행을 통해 반드시 강해질 것”이라며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탈리아 남자는 동양 여자를 좋아한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문득 로마에서 만난 한국인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한국인 가이드는 ‘이탈리아 남자에게 대시를 못 받으면 여자인 것을 포기하라’고 할 만큼 ‘이탈리아 남자는 동양인 여자를 좋아한다’고 알려줬다. 실제로 로마에서 만난 이탈리아 남자들은 적극적이었다.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고 ‘아름답다’ ‘예쁘다’ 등 상대방 기분을 좋게 하는 ‘립 서비스(lip-service)를 많이 했다. 나는 안드레아 페나치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동양 여자의 외모는 서양인의 이목구비와 전혀 달라 매력적”이라며 “이탈리아 남자 모두가 립 서비스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약 2시간에 걸쳐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나폴리에 도착했다. 안드레아 페나치씨는 내가 걱정됐는지 자신의 명함을 주며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나에겐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로 포옹을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다시 자신감을 갖고 숙소를 찾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자신감도 잠시. 나는 15㎏이 넘는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지하철역을 헤매었고 결국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붙잡고 도움을 청했다. 메모에 적은 역의 이름을 보여주자 아주머니는 이탈리아어로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을 알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그는 고맙게도 내가 가야할 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그라찌에(Grazie·이탈리아어로 감사합니다)’를 연방 외쳤다. 1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걱정을 날려버린 항구의 음악 ‘산타루치아’


 
▲ 현대자동차 간판이 붙여진 카페 겸 자동차 판매점.
 
 
나폴리의 중앙역은 가이드북에 나온 것처럼 더럽고 무질서했다. 특히 동양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빛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버스를 타고 나폴리 시내 중심지인 산타루치아 항구로 향했다. 중앙역에서 벗어나니 나폴리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달걀성’이란 뜻을 가진 ‘카스텔 델로보’ 앞에서 듣는 ‘산타루치아’의 음악은 나폴리의 두려움을 싹 가시게 했다. 우연히 시내를 둘러보던 중 ‘현대(HYUNDAI)라고 적힌 간판’을 발견해 다가갔다. 알고 보니 ‘현대자동차’ 판매점으로 카페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카페 앞은 사람들로 붐볐고 우리나라 기업을 보니 반갑고 자랑스러워 나도 ‘현대(HYUNDAI)’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나폴리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커피를 마시다 밀라노에서 온 커플과 합석하게 됐는데 이들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밀라노’ 출신이라고 소개해 미묘한 지역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정치색이 강한 우리나라의 지역감정만큼 지역감정이 심한 나라 중의 하나가 바로 이탈리아다. 19세기가 돼서야 최초로 통일 국가를 이룬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사실보다 나폴리 출신, 밀라노 출신, 피렌체 출신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특히나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는 극심한 소득격차와 함께 뿌리 깊은 지역감정으로 유명하다. 서서히 해가 지자 나는 나폴리의 야경을 보기 위해 보메로(Vomero) 언덕에 있는 ‘산 엘모’ 성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산 엘모’ 성으로 가는 길을 잘못 들어 지도에 나오지 않은 골목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됐다. 현지인들은 동양인을 처음 본 것인지 이탈리아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고 아이들이 뒤를 따라오기도 했다.

보메로 언덕으로 가다 길을 잃다

골목을 빠져나와 보메로언덕 중턱으로 올라왔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나는 ‘산 엘모’ 성으로 가던 중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두 가지 갈림길을 만나 어디로 갈지 고민을 했다. 결국 오르막길로 정하고 길을 걷던 중 이곳 현지인을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더 올라가면 나폴리에서 가장 위험한 동네가 나온다”며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조언대로 반대편으로 내려갔고 ‘산 엘모’성에서 바라보는 나폴리의 야경도 보지 못했다.

▲ 나폴리 보메로 언덕에서 바라본 야경.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하니 저녁 10시가 됐다. 밤의 중앙역 모습은 낮에 보았던 모습보다 더 험악했다. 노숙자들이 중앙역 근처로 몰려들었고 관광객들도 서둘러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중간 중간 경찰들이 보였지만 밤이 되니 다시 긴장이 됐다. 숙소에 도착해서 독일 베를린 출신의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 그는 “유독 아시아인들이 나폴리에 지레 겁을 먹는 것 같다”며 “독일만큼 치안이 안정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관광을 포기하기엔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했다. 겁을 먹었던 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너무 많은 걱정은 여행의 묘미를 떨어뜨리는 것도 사실. ‘치안’이 가장 열악한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2박3일 동안 머물면서 나폴리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홀로 여행’의 자신감도 얻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 폼페이

▲ (위)베수비오 화산이 보이는 폼페이의 신전. (아래)화산폭발 당시 고통스럽게 죽어간 개의 형상.
 
 
2000년 전 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뒤덮이면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매캐한 화산 연기에 코를 막으며 죽은 사람, 임신한 몸으로 죽은 여인, 엎드린 채 죽은 아이. 화려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다가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한순간에 멸망하고 만 전설의 도시. 이 같은 사실만으로도 폼페이를 방문하기에 충분했다. 폼페이는 나폴리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부푼 마음을 갖고 폼페이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중 관광객이 제일 많이 몰린 곳이 있어 들어가 보니 바로 창녀촌이었다. 이곳은 작은 방마다 돌침대가 놓여있고 방문 입구 위에는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이 아직도 색이 바래지 않고 남아있었다. 문 위에 걸린 성행위 그림은 방마다 각기 다르게 표현되어 있었다. 당시 해상무역이 발달한 폼페이는 외국인들이 많이 출입했기 때문에 방문 입구에 그려진 체위의 그림을 보고 의사소통을 대신했다고 한다.

창녀촌이 있던 골목을 걷다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폼페이시의 돌 포장이 된 길에는 마차 바퀴에 의해 팬 자국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창녀촌 입구부터는 바퀴자국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모두 바퀴가 달린 탈것에서 내려 창녀촌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매춘이 폼페이에서도 가장 오래된 ‘산업’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20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시대나 현대의 사람 사는 모습은 다를 게 없었다. 비록 가이드 설명도 없고 해박한 사전지식도 없었지만 기원전에 만들어진 수준 높은 도시를 보며 지금의 문명이 가장 발달된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오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139년 된 피자집 ‘다 미켈레’

이탈리아 피자의 자존심… 마라도나도 반한 맛

▲ (위)완성된 마르게리타 피자 (아래) 피자를 장작화덕에 굽고 있는 요리사.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자 어색해했다.
 
 
나폴리에서 가장 유명한 마르게리타 피자(Pizza Margherita)를 먹기 위해 다 미켈레(Da Michele) 피자집을 방문했다. 유명한 피자집 명성과 달리 가게는 허름하고 초라했다. 하지만 식사시간이 되니 가게 안은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1870년 피자집을 개업해 139년 동안 변하지 않은 피자 맛을 유지한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축구영웅 마라도나의 단골집으로 수많은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됐다. 가게 한쪽 벽면엔 가게의 역사를 증명하는 사진과 함께 마라도나가 방문한 기념사진이 걸려있었다. 이곳은 피자 만드는 전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주방이 오픈돼 있다. 이 집의 피자 종류는 단 2가지뿐이다.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왕비인 마르게리타에게 바쳐서 유래된 마르게리타 피자와 피자를 좋아하던 가난한 어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마리나라 피자(Pizza Marinara)가 있다. 나는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를 재료로 한 마르게리타 피자를 주문했다. 그들은 주문을 받자마자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는 아주 간단했다. 아주 얇게 편 반죽 위에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치즈를 뿌리고 2개의 바질 잎을 얹은 후 화덕에 구웠다. 이탈리아에선 우리나라처럼 여러 종류의 토핑을 한꺼번에 얹은 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토핑 한두 가지만으로 맛을 낸 피자가 대부분이며 빵도 더 얇고 바삭하다. 특히 나폴리는 이탈리아 피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폴리 자체적으로 까다로운 ‘피자비법’을 고수하고 있었다. 반죽은 반드시 손으로 치며 도우의 두께는 얇아야 한다. 토핑은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치즈, 바질잎만 사용하며 구울 때는 반드시 장작에 구워야 하고 전기는 금지된다. 또 돌화덕이 피자의 맛을 결정하는데 베수비오 화산의 돌로 만든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피자는 5분 만에 구워져 나왔다. 겉면은 조금 탄 듯 바삭하지만 안쪽은 쫄깃하다. 담백하면서 고소한 치즈가 입에 착 붙는다. 3가지 재료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특히 로마에서 먹었던 마르게리타 피자는 도우가 더 두껍고 기름져 담백한 나폴리 피자와 확연히 비교가 됐다. 마라도나가 피자를 먹기 위해 나폴리까지 방문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나폴리·폼페이 = 글·사진  김혜련 hry11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