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결실을 맺어주는 와인

2009. 10. 5. 23:01혼례(결혼)

[최성순 19]

사랑의 결실을 맺어주는 와인 [JES]




선선한 바람이 불던 이맘때 쯤되니 어느 멋진 프로포즈 장면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신사동의 어느 와인바를 직접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실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오늘 프로포즈 하려고 합니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한 동안 연락이 없다가 대뜸 전화 온 반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때 우리 회사에서 행사도우미로 활동했던 친구. 지금은 어느 중장비 무역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이 친구는 보기와는 달리 쑥스러움이 많으면서도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꽤 성실한 친구였다.

“와 ! 축하해요. 그럼 조만간에 국수도 먹을 수 있나 ?“
“네… 물론 저의 프로포즈가 통과된다면 말이죠. “ 쑥스러운 듯 그가 대답했다.
“그럼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나"
“오늘 저녁 와인바에서 여자친구에게 사랑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여자친구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와인과 같은 묘한 사랑의 묘약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혹시 직접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하… 그랬구나. 그렇다면 내가 도와 주어야지”.. 와인 바를 운영했던 나는 와인과 함께 로맨틱한 사랑 고백을 계획잡고 있는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그 여자친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은 대화의 술이기도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도 더없이 좋은 마법(?) 과 같은 묘한 구석이 있다. 이른바 사랑의 묘약이라고나 할까. 어색하게 시작되는 모임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와인코스를 밟아 간다면 꽤 오랜 친구처럼 부담 없고 편한 사이가 된다. 별로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다른 술과 달리 와인을 마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아한 모습으로 취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너무 많이 마시지도 않을뿐더러 많이 마셨다 하더라도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그만 사랑고백 이벤트(?)에 난 이미 호기심과 함께 들떠 있었다. 이거 영화 한판 찍으려나?.. 그럼 와인 바부터 좀 더 로맨틱한 느낌으로 촛불 장식을 내려오는 계단부터 시작했다. 실내 조명은 조금 더 어둡게 하였고 촛불을 최대한 많이 밝혔다. 그리고 당연히.. 로맨틱 무드의 음악도 큐! 음악을 듣고 보니 온통 사랑이야기 ... 이정도면 됐다.

여자친구가 전혀 술을 못한다는 이야기에 아무래도 달콤하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그러나 기분을 띄워 줄 스파클링(발포성) 와인이 좋을 듯 했다. "로제타"... 와인 꽃 문양이 와인 병에 그려져 있는 이른바 "장미의 와인" 이다. 투명한 체리 빛의 이 와인은 거품이 있으면서도 야생 장미꽃 향기를 머금은 맛있는 음료를 마시는 느낌이 난다. 술을 못한 사람의 경우 어느 정도 마시면 약간의 취기와 함께 기분을 들뜨게 한다. 특히 여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아직까지 프로포즈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 여자친구는 전혀 모른다는 사전정보를 가지고 난 태연히 모른척... 이 와인에 대한 설명과 함께 미묘한 사랑의 암시를 전하는 것이 나의 첫번째 미션. 와인바의 한쪽 구석에서 둘은 음식과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1단계는 성공!

2번째 단계는 음악을 통한 사랑고백. 주변에 이미 자리를 잡았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남자는 그 동안 배웠던 섹소폰을 불기 시작 했다. 이 날을 위한 특별한 솔로공연이었다. 장내는 이미 조용해졌고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하는 섹소폰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영화 속에서 봄직한 장면을 내 눈으로 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2번째 단계는 감성 자극 작전으로 성공!

3번째 단계는 가지고 온 케잌과 함께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녀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확인 받는 작업이었다. 꿀과 같은 달콤한 아이스와인이 이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서빙되는 와인은 리슬링 포도품종으로 만든 아이스 와인입니다. 리슬링은 마치 첫사랑처럼 새콤 달콤한 느낌의 사랑스런 와인이랍니다. 이 아이스와인을 만들어 내려면 한겨울 영하 10도까지 내려갔을 때까지 포도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를 직접 손으로 수확합니다. 그런 후 그 즙을 짜내어 발효시켜 극도로 농축된 향기로움과 복잡미묘한 그러나 꿀과 같은 달콤한 와인으로 탄생시키죠. 많은 인고와 정성 끝에 얻어지는 고귀한 사랑처럼 이 와인은 만들어집니다. 이 와인 1병을 만들려면 아마도 포도나무 한 그루를 써야 할 것입니다... " 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이 와인을 통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스 와인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화려한 부케와 매끈함을 선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라고 설명을 하면서 난 이들의 성공적인 결혼을 상상해 보았다.

100년 후에 맛보면 더욱 훌륭한 깊은 맛을 지닐 것 같은 이 와인은 결혼하는 사람들이게 딱 어울리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당연히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비싼 만큼 그만한 가치를 하는 와인일 것이다.

그의 사랑 고백은 대성공이었다. 여자친구는 이미 와인 때문이지 그의 멋진 사랑의 프로포즈 때문이지 얼굴은 밝은 복숭아처럼 상기되어 있었고 행복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곤 몇개월 후 나에게 이들의 결혼 초청장이 날라왔다.


■ 최성순은
한땐 와인은 폼만 잡는 술이라고 무시했다. 그러던 그녀가 우연히 알게 된 와인의 끌려 아예 직업까지 바꿔버렸다. 와인 포탈사이트인 와인21닷컴(wine21.com)을 운영하면서 와인전문 칼럼을 쓰고 있다. 와인과 친해진 지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 그녀는 거의 매일 와인을 즐기는데 분위기가 좋은 날엔 심하게 즐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