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持平) ,봉산군수, 선산부사 전익희(全益禧)

2009. 10. 19. 20:38 인물열전

 

지평(持平) ,봉산군수, 선산부사

전익희(全益禧


시대  조선 중기

본관  옥천(沃川)

성  전(全)

자  자수(子綬)

호  망일당(望日堂)

 

1598(선조 31)∼1659(효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자수(子綬), 호는 망일당(望日堂). 뇌(磊)의 아들이며,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정언으로 있을 때 권신 김자점(金自點)의 죄를 탄핵하다가 북변의 외직으로 쫓겨났다.


1641년

 지평이 되고 뒤에 봉산군수· 선산부사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청덕비(淸德碑)가 세워졌다. 서예에도 뛰어났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嶺南人物考


▷정언(正言)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의 정육품(正六品) 관직으로 정원은 2원이다. 위로 대사간(大司諫: 正三品 堂上), 사간(司諫: 從三品), 헌납(獻納: 正五品) 각 1원씩 있다. 

 1401년(태종 1) 문하부(門下府)를 의정부(議政府)에 합하고 낭사(郞舍)를 사간원(司諫院)으로 독립시키면서 문하부에 속했던 좌·우습유(左右拾遺)를 좌·우정언(左右正言)으로 고쳐 사간원에 2원을 두었다. 다른 관원과 함께 간관(諫官)·언관(言官) 또는 대관(臺官)으로 불리었다.

 간관으로서 국왕에 대한 간쟁(諫諍)과 봉박(封駁)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실제 임무는 이에 제한되지 않고 사간원의 다른 관료 및 사헌부(司憲府)·홍문관(弘文館)의 관료와 함께 간쟁·탄핵·시정(時政)·인사 등에 대한 언론과 경연(經筵)·서연(書筵)의 참여 및 인사 문제와 법률 제정에 대한 서경권(署經權), 국문(鞫問) 및 결송(決訟) 등에 참여하였다. 

 [별칭] 

 습유(拾遺)


▷ 지평(持平)

 

조선시대 사헌부의 정오품(正五品) 관직으로 정원은 2원이다. 

 1401년(태종 1)에 잡단(雜端)을 고친 이름으로 지헌잡단(持憲雜端)이라고 하였다. 대사헌(大司憲: 從二品) 이하 집의(執義: 從三品)·장령(掌令: 正四品)·지평까지의 사헌부 소속의 관원을 통칭 대관(臺官)이라고 하였으며, 또 장령과 지평을 별칭 대장(臺長)이라고 하였으며, 학문(學問)과 덕행(德行)이 뛰어나 이조(吏曹)에서 대관(臺官)으로 추천(推薦)된 사람을 남대(南臺)라고 하였다. 

 모든 대관은 사헌부의 청환직(淸宦職)으로, 문과 급제자 중 청렴 강직하여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므로, 승문원(承文院), 성균관(成均館), 홍문관(弘文館) 등을 거친 젊고 기개가 있는 인재들이 임명되었는데, 그만큼 직무가 막중하기 때문이었다. 이조(吏曹)의 전랑(銓郞)과 함께 전 조선시대의 사족사회(士族社會)의 틀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였다. 

 [별칭] 

 지헌잡단(持憲雜端), 대장(臺長) 

 

▷군수(郡守) 


 조선시대 동반(東班: 文官)의 종사품(從四品) 외관직(外官職)으로 군(郡)의 행정(行政)을 맡아보았다. 군수는 일반 국민을 직접 다스리는 목민관(牧民官)으로서 광범위한 권한을 위임받고 있었으나, 그 주된 임무는 공물(貢物)·부역 등을 중앙에 조달하는 일이었다. 

 부윤(府尹: 從二品)·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 正三品)·목사(牧使: 正三品)·도호부사(都護府使: 從三品)·군수(郡守: 從四品)·현령(縣令: 從五品)·현감(縣監: 從六品) 등은 그 품계(品階)에 고하(高下)는 있었으나, 행정상으로는 상하의 차별 없이 모두 관찰사의 지휘감독을 직접 받았으며 이들을 통칭 수령(守令)이라고 하였다. 

 전국(全國)을 모두 82군(郡)으로 경기도(京畿道)에 7곳, 충청도(忠淸道)에 12곳, 경상도(慶尙道)에 14곳, 전라도(全羅道)에 12곳, 황해도(黃海道)에 7곳, 강원도(江原道)에 7곳, 영안도(永安道: 咸鏡道)에 5곳, 평안도(平安道)에 18곳을 두었으며, 군내(郡內)에 불상사가 발생하면 현감(縣監)으로 강등(降等)시키는 일도 있었다. 

 

▷봉산군 [鳳山郡]

 

황해북도 서부에 있는 군. 

면적  436.04㎢ 

행정구분  1읍 1노동자구 18리 

면적 436.04㎢이며 도 면적의 5.35%를 차지한다. 북쪽은 연탄군, 동쪽은 서흥군, 남쪽은 은파군· 인산군(린산군), 서쪽은 사리원시와 접한다.

북부에 정방산맥이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이곳에 천녀봉(657m)과 가마봉(481m)·보명산(594m)·줄암(590m) 등이 솟아 있다. 다른 경계 지역에는 차일봉(607m)·구산(507m)·감투봉(489m) 등이 있다.

지형은 정방산맥이 뻗어 있는 북부와 차일봉에서 뻗어내린 지맥들이 있는 남부가 높고 중부에는 구릉지대와 평탄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해발고도 200m 미만의 평야와 구릉지대는 전체면적의 약 70%이며 그밖의 지역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은 남부를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서흥강과 정방산맥에서 발원하여 서흥강에 유입되는 봉산천·흥수천·검수천 등 14개의 지류가 있다. 길이가 5㎞ 이상인 하천이 11개, 5㎞ 이하의 하천이 40여 개나 되며, 서흥강의 길이는 군 내에서 40.5㎞이다. 그밖에 황해북도의 바다라고 부르는 서흥호를 비롯하여 4개의 큰 저수지가 있다. 서흥호(면적 16.83㎢)는 봉산군뿐만 아니라 주변 6개군에 관개용수로 공급된다.

산림은 군 면적의 50.6%이며 그중 침엽수가 48%, 활엽수가 52%를 차지한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잣나무, 잎갈나무, 자작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느릅나무, 고로쇠나무, 아까시나무, 밤나무 등이다.

정방산맥과 차일봉, 구산 일대에는 솔새, 억새, 말굴레풀, 기름새, 은방울꽃, 둥글레, 산련풀, 우산나물 등의 초본식물들이 많이 자란다. 그밖에 산에는 머루·다래·고사리 등의 산나물, 산과일, 삽주·천남성 등과 같은 여러 약초들이 많다. 청계리·구연리 일대에는 노루와 꿩이 많다.

지층은 하부원생대층과 그위에 상부원생대 상원계층이 놓여 있으며 재령강분지와 봉산분지의 일부지역에 중생대층 및 신생대 제3기층이 분포한다. 또 이 지층을 뚫고 올라온 중생대 압록강암군과 신생대 봉산암군이 있다.

지질구조는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는 정방산배사구조와 묵천향사구조, 그 사이의 층상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배사구조와 향사구조는 정방산맥과 차일봉산맥의 높은 산에 드러나 있지만 층상단층은 사당우통 탄산염암층 속에 발달하였으며 그 위에 제4기층이 덮여 있다.

지하자원은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을 비롯하여 점토·규석·유연탄·초무연탄 등이 풍부하다. 석회석은 마산리·청계리·구연리 일대에 많이 매장되어 있고 지탑리에 유연탄, 토성리에 초무연탄, 구연리·관정리 일대에 고령토가 많다. 그밖에 중정석·아연·구리·형석 등도 여러 곳에 매장되어 있다. 토양은 하천 연안에는 충적지토양이 발달하였고 그밖의 지역에는 갈색산림토와 논토양이 분포한다.

연평균기온 10℃, 1월평균기온 -6.6℃, 8월평균기온 24.5℃이며, 연평균강수량은 937.8mm이다. 첫서리는 10월 13일에, 마지막 서리는 4월 18일에 내린다.

 

▷선산군 [善山郡] 


경북 서부, 중앙지대에 위치하여 1895년 이래 1994년까지 존속한 행정구역. 

면적 494.3km2. 신라시대에 일선군(一善郡)·숭선군(嵩善郡), 고려시대에 선주(善州)·일선현(一善縣)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처음으로 선산군이 되어 뒤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895년 다시 선산군이 되고 1914년 9면 113동으로 개편되고 1978년 구미읍이 구미시로 승격하여 선산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1월 관내 선산읍과 무을(舞乙)·옥성(玉城)·도개(桃開)·해평(海平)·산동(山東)·장천(長天)·고아(高牙) 등 7개 면을 들어 구미시와 통합, 도(都)·농(農) 복합형의 새로운 구미시로 개편됨으로써 행정구역상으로는 1978년 이전 선산군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통합 당시의 인구는 6만 4000명을 헤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