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베트의 비밀스런 오지 산중에 들다
2009. 10. 26. 21:17ㆍ게시판
- [해외 트레킹] 티베트 무얼따신산
- 동티베트의 비밀스런 오지 산중에 들다
룽다 펄럭이는 해발 4,820m 산정까지 1박2일 등행
- 여름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티베트에 사로잡혔다. 동티베트 무얼따신산(墨爾多神山·4,820m). 틈새도 주지 않고 압박해오니 마음 내키는 대로 끌려가는 게 편하다. 고래(古來)로 이끌린, 찬란한 불교문화의 주변 정서가 원인이 아닌가 한다. 차마고도(茶馬古道) 루딩의 미인계곡인 단빠(丹巴)의 서하왕조(西夏王朝)와 장족(藏族)마을. 상상은 시공을 초월해 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부추긴다.
8월 1일, 자정을 넘기면서 쓰촨성 청두공항에 도착,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4시에 가주호텔을 출발하니 일행은 비몽사몽간에 말을 아낀다. 희뿌연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청두 시가지를 달리는 소형 버스는 조용하다. 2시간이 지났을까. 야안(雅安)시에 도착하니 하늘이 열리고 청일강(靑一江) 급류가 소리지르며 흐른다. 소형 오토바이가 한가한 거리를 달리고, 꽁무니에 짐 실은 자전거가 힘겹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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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상에 오르며 왼쪽으로 보이는 호수(大海子). 점점이 보이는 것은 풀 뜯는 야크. 2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갑거장채. 해발 2,300m의 장족마을이다. 3 산비탈 푸른 언덕엔 옴마니반메훔 문양이 뚜렷하고, 오색 깃 발이 휘날린다.
‘茶馬古道’라 쓰인 표지벽(標識壁)이 마음을 흔든다. 여기가 바로 이차역마(以茶易馬)가 이루어지던 천장공로(川藏公路)의 시작인가.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 쓰촨성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바꾸고, 마방을 통하여 말과 야크에 소금, 약재, 금은 보석류를 바리바리 실어 네팔, 인도까지 넘나들던 유서 깊은 현장에서 잠시 상념에 잠긴다. 칭하이성 쓰닝의 일월산에서 시작되는 천장공로는 윈난성 시반나에서 시작되는 천장공로와 함께 3대 교역로의 하나란다.
야안을 지나면서 도로가 급변한다. 폭이 좁아지고 노면상태도 불규칙하다. 이랑산(二郞山·3,500m) 줄기의 샛길을 느릿하게 달리는 차창가의 풍광은 온통 익어가는 옥수수밭이다.
오전 9시. 빗방울이 스친다. 4,175m 이랑산터널을 통과하면서 도로는 낭떠러지를 기어오르고, 구름이 산줄기를 감싼다. 드디어 장족자치주(藏族自治州)에 들어선 것이다.
깐즈(甘孜)장족자치주는 티베트 국경지대였으나 1951년 중국 통치 이후 쓰촨성에 속하게 되었다. 티베트 동쪽에 위치하고 티베트 장족이 거주하여 지금도 동티베트로 불린다. 하늘 길 험준한 오지, 오염 되지 않은 자연풍경과 티베트의 민속이 지금도 오롯이 살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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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해발 4,298m 야구의 초르텐과 나부끼는 오색 룽다. (우) 자생탑을 지키는 룽다.
티베트 민속이 오롯이 살아 있는 곳
오전 9시30분, 유서 깊은 루딩에 도착했다. 1935년 5월 19일 홍위군 대장정 때 주더·저우언라이가 2만5000 정부군에 포위되어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민병대 22명이 대도하(大渡河)를 건너 승전으로 이끈 곳이다.
22명의 조각상 아래 광장 주변을 일별하고 루딩교(瀘定橋·101m) 출렁다리를 건넜다. 폭 3m라지만 급물살이 소리 질러 흐르니 위태위태 가슴이 철렁한다. 부실했던 당시의 도하 여건을 상상해보며 조심스레 발자국을 옮기니 관음각(觀音閣)이 반긴다. 돌계단을 돌아 여기저기 살펴보고 광장으로 되돌아오니 관람 인파가 모여든다.
장족(藏族)과 강족(羌族) 가옥은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 완전한 돌(石) 구조는 강족이고, 외양은 돌이지만 나무가 보태어진 집은 장족 가옥이라나. 진시황제의 강족 멸살정책으로 변방으로 쫓겨 온 강족은 그래서 더욱 강인하단다. 1,000m 이상 올려다보기조차 어려운 곳에서 손짓하는 장족과 강족의 후예들.
풍광명미를 즐기며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2시 야구(4,298m)에 들르니 티베트 불교문화의 영역에 빠져드는 듯하다. 금범(錦帆·룽다)이 웅장하고 겹겹으로 장식한 오색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금범과 오색 깃발은 티베트 장족들의 신앙적 상징이다. 청색은 하늘, 녹색은 식물, 백색은 구름, 황색은 땅, 홍색은 태양을 상징하며, 오색 깃발엔 라마 경전이 씌어 있어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낭송 효과로 행운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동행한 유재경님은 놀랍게도 준비한 하얀 천에 가족 이름을 써 오색 깃발에 합류시켰다. 가족과 가문의 행운을 기원하는 님의 모습이 부럽다.
협소한 길은 갈수록 진흙탕이고 엔진소리는 요란하지만 차량은 요동을 반복하며 소걸음이다. 다른 차와 교행시 정차시간이 오히려 길다. 몇 주 전 세기의 개기 일식 날 있은 폭우로 인해 열악한 도로 사정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단다. 목적지 단빠에 오늘 중 들어갈 수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차창 밖으로 펄럭이는 오색 깃발을 위안 삼으며 인내심을 발휘한다.
이내 검은 그림자가 내리고, 깊어가는 이역만리에서 차창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슴을 때린다. 동녀국(東女國)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웠다. 청두에서 560km 거리를 무려 20시간 달려왔다면 믿을 사람이나 있을까. 그래서 쓰촨성 이어가는 길은 하늘 길보다 어렵다고 했나 보다.
8월 3일,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깨보니 6시를 알린다. 6층 침방에서 커튼을 걷어 올리니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절벽을 이룬 산이 압도한다. 올망졸망 달라붙은 집들의 옥상에서 수탉이 홰치는 소리가 정겹고, 좁다란 오솔길엔 부부인 듯 보이는 한 쌍이 조깅을 한다. 시원한 바람을 따라 현관에 나와 보니 널따란 호텔 광장에 운동시설이 즐비하다. 어젯밤 보지 못한 동녀국호텔의 전경이다. -
- 하루에 1,700m나 고도 높여야 해
8시15분, 가벼운 등산 차림으로 차에 올라 장족마을인 갑거장채(甲居藏寨·2,300m)로 향했다. 칭기즈칸에 의해 멸망한 서하왕조(西夏王朝·1038~1227년)의 후예로 추정되는 가융장족(嘉絨藏族)이 살고 있는 마을 입구에는 세 여인의 조각상이 의젓하다. 2005년 ‘중국국가지리’에 의해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세 자매의 기념상이다. 조각상의 주인공으로 우측에 있는 계화(桂花)가 오늘 잠시 우리를 안내하니 기쁨이 배가된다. 그녀가 손수 빚은 수유차를 시음하며 한동안 즐거움을 나눴다.
큰형이 장가 들면 동생들은 혼인하지 않고 한집에서 형수와 함께 기거하면서 한가족이 된단다. 시동생들과 형수 사이에서 자손이 태어나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동생들이 다른 여자들과 가정을 이루면 결국 티베트 정신은 흩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조선족 가이드 김철군의 장족 가족문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몽골 유목민의 과객혼(過客婚)도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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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대금천교(大金川橋·1,900m). 이 다리를 건너며 본격적으로 산행은 시작된다. (우) 무얼따신산 오름길에는 폭포도 있다.
오전 10시40분 ‘쓰촨성 무얼따신산 자연보호구(四川省 墨爾多神山 自然保護區)’ 표지판을 보면서 우측으로 대금천(大金川) 출렁다리를 건넜다. 해발 1,900m.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감돈다. 산뜻한 기분이다. 거슬러 오르는 대금천 풀숲 오솔길이 싱그럽다. 호두, 사과나무에 매달린 파릇한 열매가 살랑거리고 숲 속 정자에선 매미소리가 경쟁하듯 목청을 돋운다. 건너편 산곡(山谷)을 휘둘러 띄엄띄엄 숨어 있는 장족 가옥이 한 폭의 그림이다. 제임스 힐튼의 샹그릴라(Shangri-La)가 따로 없다.
발길을 재촉하여 오전 11시30분 무얼촌에 도착하니 흑돼지 한 마리가 꼬리치며 반긴다. 침목을 밟고 골목길로 돌아드니 집집마다 사과나무, 배나무, 푸렁이, 밀감 열매요 틈새마다 옥수수가 지천이다.
오늘 자생탑까지의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 1,700m 이상의 고도를 높여야 하는 일이 부담도 되거니와 사전답사 없는 초행길이라 여유만 부릴 수 없다. 빵 종류의 행동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아카시아 숲 속을 헤쳐 지나니 하얀 물줄기가 다가온다.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을 몇 차례 건너다 보니 호랑가시나무 지대가 나타난다. 자갈색 으름열매를 발견하고 일행은 돌팔매를 던지며 동심으로 돌아갔다.
오후 1시30분, 사포마을을 지났다. 호두나무가 우람하고 주위엔 온통 옥수수 밭이다. 발자국을 옮기니 보리수 무르익는 산 속 분지다. 2,700m 고지에 부처님이 들어와서 보리수를 심었을까. 새콤달콤 입맛 다시며 너도나도 탄성이다. 계곡물 소리, 원시삼림 속으로 빠져들며 포근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오후 2시40분, 신선동(神仙洞·2,750m)으로 들어섰다. ‘옴마니반메훔’, 바위에 새겨진 하얀 문양을 보면서 계곡물을 좌우로 건넜다. 30m나 됨직한 힘찬 세력을 과시하는 폭포를 지날 때는 오후 3시30분을 가리켰다.
오후 5시, 바위가 지붕이 된 아늑한 보금자리를 발견했다. 솥단지가 걸려 있고 주방 그릇 몇 가지가 널려 있다. 족히 2, 30여 명은 쉴 수 있는 곳이다.
계속 오르막길에 발자국 옮기기가 버겁다. 수려한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벗 삼아 자생탑(自生塔·3,638m)에 도착하니 오후 7시50분이다. 스님의 배려로 마차(馬茶) 한 그릇을 단숨에 들이켜니 천하를 얻은 듯하다.
절벽 한쪽에 살그머니 올려놓은 부처님의 작품인가. 솟아오른 암봉 사이에 버티고 자란 짙은 거목(巨木) 숲 속에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보금자리인 사원 자생탑이 서 있다. 4~5명씩 짝을 이뤄 25명의 휴식 공간이 우리 일행 12명을 맞이하니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 김치찌개 겻들여진 저녁밥이 처음 맛보는 진수성찬 같다.
8월 4일, 빗방울 소리에 잠을 깨니 아침 6시다. 모처럼 숙면으로 심신이 가뿐하다. 이 일대의 풍치는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우의를 둘러 입고 출발을 서둘렀다. 부슬비를 맞으며 오전 8시 식당 뒤 왼편으로 오르는 일행의 각오가 대단하다. 식수와의 전쟁이라나. 흘리는 땀을 주체할 수 없고 산행시간 일정이 불분명하니 사전 준비가 최상이다.
쇠줄 잡고 등정 후 고된 하산-
- ▲ 심산유곡 절벽 한편에 자리 잡은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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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분이나 걸렸을까. 왼쪽 방향을 가리키는 따신산(多神山)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 있다. 정글 숲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천천히를 다짐하며 고개를 쳐들자 울창한 거목에 비단 명주실 같은 것이 치렁치렁 걸려 있다. 열대우림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싼과민(山瓜面)은 수림과 어울려 이색풍광을 연출한다.
산은 항상 계속 오르라는 법이 없다. 한참을 곡예하며 내리쏟더니 왼쪽으로 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난코스 서너 군데를 통과해 해발 4,300m 초원에 도착했다. 야크하우스(양이나 소 축사) 한 동이 나타나고 곧 이어 올망졸망 돌탑이 모여 있다. 전방에 하산 길도 보이는데 시야에 잡힐 듯 정상이 손짓한다.
삼거리 산릉에서 왼쪽 능선으로 선회한다. 호수 주변에 점점이 흩어진 야크 무리도 보인다.
해발 4,600m쯤부터 너덜겅이 힘겹다.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고, 쉬는 시간도 잦아진다. 그러고 보니 점심용 주먹밥도 배낭에 그대로다. 오후 1시가 넘었다. 가자! 다시 올 수 없는 이 길, 자신을 다그치며 발을 옮길 때 유명곤·이희두님이 등정하고 내려온다. 반가움에 하이파이브가 이어졌지만 추위와 고소로 하산을 서둘렀단다.
해발 4,700m에 이르니 정교하게 쪼아서 귀를 맞춘 석경(石逕)이 예술이다. 오를수록 오색 깃발 펄럭이고 난간용 쇠줄이 정상으로 안내하여 4,820m 무얼따신산을 감싸안는다. 오후 2시30분, 여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표지석이 보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초르텐을 중심으로 펄럭이는 오색 깃발이 현란하다. 일행은 무언중 나무아미타불, 합장 배례하고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본다.
등정은 항상 보람 있는 일이다. 산중의 왕, 가융장족이 추앙하는 성스런 곳에서 일행은 함께 얼싸안고 기쁨에 사로잡혔다. 양동관, 김문수, 김영희, 이종완, 유재경, 이호섭, 조문이, 먼저 하산한 유명곤, 이희두, 김석재, 양순권님의 이름 석 자도 외쳐 본다.
하산길은 정말 힘들었다. 능선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서 라포파(羅布坡·3,300m), 나찡(納頂)도 확실히 확인하지 못한 채 미로의 숲 속을 빠져나와 악찰촌을 겨우 찾았을 때는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아침 출발시간이 늦은 게 잘못이지만 하루를 더하면 무리 없는 일정으로 사려된다.
장족이 살고 있는 단파마을 길 접근이 정말 어렵게 된다면 어떨까. 티베트 고유문화는 더욱 온전히 보존되지 않을까? 자정을 넘겨 승합차에 오르면서 역설적인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
/ 글 양재철 광주요산회
사진 유명권 영광전자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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