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사단을 몰살시킨 세계 최강 몽골 기병

2009. 10. 27. 13:14게시판

 
유럽 기사단을 몰살시킨 세계 최강 몽골 기병
조민욱  조민욱 님의 블로그 더보기
 

 

역사상 최강의 기마군단이라면 단연 몽골 기병을 손꼽을 수 있을 겁니다.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 기병은 자신보다 덩치가 수십 배나 더 큰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150년간 세계 제국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가 정복한 땅은 시베리아에서 베트남까지, 헝가리에서 인도, 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으로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가 차지한 땅을 합한 것보다 더 넓다고 하는군요. 

 

몽골기병 src

* 영화 '몽골'의 한장면. 몽골 기병이 돌진해오면 지평선 너머로 먼저 자욱한 흙먼지가 인다고 합니다. 곧이어 하늘을 덮는 화살비가 쏟아집니다. 뒤이어 몽골 기병이 들이닥칩니다. 

 

고작 100만~200만 명에 불과했던 몽골부족이 2억 명이 넘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게 된 힘은 뭐니 뭐니 해도 몽골 기병의 막강한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12세기 후반 몽골의 초원지대는 연평균 온도가 떨어지면서 말이나 양을 방목할 풀이 부족하게 되어 유목민의 생존자체가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안에서 찾을 수 없으면 밖에서 구하는 법. 유목민족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풍요로운 농경세계를 넘보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 위한 정복전쟁이 시작된 거죠. 유목민족의 이러한 밖으로의 분출에너지를 결집시키고 터뜨린 사람이 바로 칭기스칸입니다. ‘시대가 영웅을 낳고, 그 영웅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이지요.

몽골군이 유럽까지 진출하여 1241년 독일(당시 프러시아)의 발슈타트 지방에서 유럽 연합군과 정면 대결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동원된 몽골군의 숫자는 7만~15만. 당시 몽골의 전체 인구는 100만에서 150만 명으로 추산되고요. 유럽 연합군은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침략자들을 보고 처음에는 아마 얕보았을 겁니다.

 

 

몽골 src

* 몽골과 유럽 기병이 맞붙은 전투도. 몽골의 가벼운 무장에 비해

유럽의 기사들은 중무장입니다. 

 

 

 

‘흑사병보다 무서운 공포의 군대’라는 소문과는 달리 몽골군이 몸에 갖춘 무장이라곤 고작 가죽으로 만든 갑옷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휘황찬란한 금속 갑옷을 온몸에 두른 유럽의 기사들과 비교할 때 초라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두 군대의 정면대결에서 몽골은 완벽한 승리를 거둡니다. 뿐만 아니라 몽골의 기병과 유럽의 중무장 기사단의 격돌에서도 몽골의 기병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꺼운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유럽의 기사단(시종의 도움 없이는 말에 올라타기도 힘들지요)은 가벼운 무장으로 기동력을 올리고 2인 기마전법(두 명의 병사가 한 마리의 말 등에 타 한 명은 방패로서 상대의 공격을 엄호하고 다른 한 명은 칼로 가까이 붙은 적들을 물리치는 전법)까지 구사하는 몽골 기병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몽골 기병의 강인함과 무자비함에 놀라 ‘화살도 뚫을 수 없는 구리 이마에 강철 가슴’이라고 표현합니다.

몽골 기병의 강인함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지요.

 

몽골군은 오직 기병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병은 중기병과 경기병으로 두 개의 병과가 있지요. 경기병은 두 개의 활과 두 통의 화살, 칼 한 자루로 무장합니다. 기동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갑옷도 가죽 갑옷이 아니라 비단 갑옷을 걸칩니다. 이에 반해 중기병은 가죽 갑옷 밑에 철편을 대어 방어력을 높였으며, 갈고리 달린 창이나 만도(크게 휜 초생달처럼 생긴 칼)로 무장합니다.

 

몽골 기병이 적과 맞닥뜨리면, 먼저 경기병이 달리는 말 위에서 화살 세례를 퍼붓습니다. 몽골의 강궁은 200~300m를 날아가는 당시 세계 최고의 원거리 무기로서 위력을 떨칩니다. 유럽은 석궁으로 맞서지만 석궁은 1분에 고작 2발을 쏘는 반면에 몽골군은 달리는 말 위에서 1분에 10발 이상의 화살을 쏠 수가 있습니다. 적군은 몽골군을 만나 미처 일합을 겨뤄보기도 전에 먼저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내리 꽂히는 화살에 예봉을 꺾이고 맙니다. 게다가 몽골의 화살에는 독이 발라져 있어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게 되지요. 적의 대열이 무너지면 이번엔 중기병이 돌진을 합니다.

 

 

몽골 src

* 몽골 기병은 달리는 말위에서 자유자재로 활을 쏠 수 있습니다.

네 개의 발을 지그재그로 옮기는 몽골말의 독특한 주법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구려 벽화에서 본 모습과도 많이 비슷하지요.  

 

 

접근전에서 몽골기병의 전투력을 감당할 수 있을 군대는 극히 드물 것입니다. 몽골 병사는 기본적으로 체격이 유럽인에 못지 않게 크고 힘이 좋습니다. 또한 그들이 주병장기로 사용하는 만도는 날이 크게 휜 칼로써 기병이 마상에서 적을 향해 휘두르기에는 최적의 무기입니다. 또한 몽골말은 비록 체격은 작지만 지구력이 유럽말에 비해 뛰어나 오랜 주행과 백병전에서도 지치지 않는 투지를 보여줍니다.

 

적의 방어가 튼튼해서 웬만해서 대열이 무너지지 않으면 ‘망구다이’ 유인 작전을 씁니다. 경기병들이 접근했다가 겁먹은 것처럼 도망치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쭐해진 적이 진형을 스스로 무너뜨린 채 뒤를 쫓아 옵니다. 어느 정도 적의 본대와 멀어지면 그때까지만 해도 말꼬리가 빠지도록 도망치던 경기병들이 순식간에 재집결, 추격해오는 적을 향해 화살을 퍼붓습니다. 적의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면 몽골의 중기병들이 밀고 들어와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러한 유인책은 발슈타트 전투에서도 적용되어 적의 선봉을 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몽골 기병의 뛰어난 기동성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몽골 기병은 하루 평군 12km에 최대 200km를 주파했다고 합니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군대는 하루 최대 이동거리가 30km밖에 되지 못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기동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동력을 위해서 몽골군은 장거리 원정의 경우, 군인 한 명당 세필의 말을 지급하였습니다. 타던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갈아타면서 그 먼거리를 쉬지 않고 이동한 것이죠. 전투식량은 양고기를 말려서 가루 낸 것으로 해결합니다. 가죽주머니에 양 반마리 분의 고기가루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먹을 때는 이를 물에 끓여서 미숫가루처럼 마시는 겁니다. 또한 여분의 말들은 비상시에는 식량으로도 활용하였지요.

몽골 src

* 창과 만도를 휘두르며 돌진해 오는 기병 군단은 적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겁니다. 영화 한 장면. 

 

 

몽골군이 기마전만 수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초원의 결투와는 달리 중원이나 유럽을 정복할 때에는 무수한 공성전(성을 함락시키는 것)도 치렀습니다. 말만 타던 사람들이 성벽을 기어오르고 성문을 부수는 전술에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었겠죠. 여기서 몽골과 칭기스칸의 힘을 알 수 있습니다. 몽골군은 저항하는 민족은 철저하게 학살했지만, 항복하는 민족은 완벽히 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우수한 문화를 서슴없이 받아들이고요. 공성전에 사용된 기술도 한족에게서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평소 수렵을 통한 무기개발에 노력해온 기마민족이므로 병기를 만드는 장인을 ‘다르항’이라 부르며 상당히 우대했다고 합니다. 

 

몽골 src

* 몽골의 전선 

 

 

또한 몽골군은 물에서는 약하다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오랜 전쟁을 통해 수전(水戰)에서도 상당한 노하우를 지녔다고 합니다. 몽골의 수군은 서하(西夏)나 금(金) 같은 국가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수없이 많은 하천(河川)을 건너 작전을 벌인 경험을 쌓았고, 전선(戰船) 1만척에 이르는 막강한 전력을 자랑했다는 합니다. 몽골군은 1221년 금나라 군대와 수전을 벌여 크게 승리했고 1236년 남송(南宋) 군대와의 대규모 수전에서 선박 300척을 노획하는 전공을 거둡니다. 이 때문에 최근 몽골의 한 학자는 “몽골군이 고려의 강화도를 정복하지 못한 주요 원인은 수전(水戰)에 약해서가 아니라 당시 주공격 대상이 금과 남송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과연 놀라운 몽골 기병이 아닌가요.

이러한 몽골 기병에 대적할만한 기병이 또 있을까요.

다음 기회엔 조선의 기병을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기대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