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업체 횡포에 예비부부 '눈물'

2009. 11. 17. 18:00혼례(결혼)

 

웨딩 업체 횡포에 예비부부 '눈물'


세계일보 


계약취소 시 과도한 위약금·배째라식 영업

울며 겨자 먹는 결혼식

관련 규정 미비·과대광고로 피해 급증


[이코노미세계] #1 김 모씨는 지난해 가을 결혼을 앞두고 웨딩드레스, 사진과 앨범, 메이크업 등을 계약했다. 웨딩 사진촬영 당일 계약금액 220만원을 완납하고 한 달 뒤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계약서에 기재된 웨딩앨범 3개 중 1개만 받고 남은 2개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2009년 3월부터 지속적으로 앨범을 요청했지만 담당자는 현재까지 연락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2 웨딩컨설팅업체를 통해 결혼식을 올린 권 모씨는 본식 앨범이 오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다. A스튜디오 측에 확인 해 본 결과 웨딩 컨설팅 업체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해 앨범제작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A스튜디오 측은 "해당 웨딩컨설팅 업체와 관련된 건이 9건이나 남아있다"며 "돈을 주겠다는 확답을 하기 전에는 앨범제작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스튜디오와 컨설팅업체와의 문제로 인해 권 씨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결혼 관련 소비자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중간에 계약을 취소할 경우 상식 이상의 과도한 위약금을 물리거나 계약서에 기재된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배째라 식 영업을 일삼는 업체들로 인해 행복한 꿈에 젖어야 할 예비부부들이 눈물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상당수의 예비부부들이 일생에 한 번 뿐인 특별한 날에 불미스러운 일을 키우고 싶지 않다 며 웬만하면 문제를 덮고 그냥 넘어간다는 데 있다. 업체들은 이러한 심리를 악용하고 있다. 계약금 환불 등 관련 규정이 미비한데다 과대광고와 마케팅을 버젓이 일삼는 업체가 많아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전문직종으로 알려진 웨딩플래너의 경우 아무런 자격조건 없이도 할 수 있는 비전문가 들이고, 근무연수가 짧고 나이 어린 사람이 대부분이라 책임 있는 일처리를 하지 않은 채 쉽게 그만두는 사례도 있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한국소비자원에는 결혼 관련 피해상담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결혼 중개와 관련된 분쟁 상담건수 는 2007년 1318건, 2008년 1466건, 올해는 10월26일 현재 총 1470건으로 증가했다.


◆웨딩관련 산업 급성장


=과거에 비해 인구가 줄고 성혼 커플도 줄었지만, 웨딩관련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더 특별한 결혼식을 원하는 예비부부들이 늘어남에 따라 업계가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시장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커플 당 평균 결혼비용(예식, 신혼여행, 예물 등)은 1800만원 선으로 전체 시장 규모가 30조원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프리미엄 예식 상품을 선호하는 추세도 늘고 있다.


최근 연예인 예식을 후원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업체들이 많아졌다. 연예인의 웨딩드레스와 예물, 사진, 신혼여행지 등은 인터넷에 보도되는 즉시 일반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나도 연예인처럼 멋지고 특별한 결혼식을 하고 싶다 는 예비부부들의 욕구를 자극하면서 프리미엄 상품 구매로 이어지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탤런트 이영애가 낀 참깨다이아 결혼반지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예비 신부들이 이를 구매하기 위해 몰리면서 해당 제품이 품귀현상을 빚고 제품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기도 했다.


웨딩 관련 산업이 커지면서 웨딩컨설팅(웨딩플래닝) 업체도 함께 성장세를 타고 있다. 맞벌이 커플이 늘면서 식장 예약부터, 사진촬영, 드레스, 신부화장, 예식 뷔페, 신혼여행 상품, 예물까지 일일이 챙기기가 쉽지 않은데다 소비자들이 대부분 초보(초혼)이기 때문에 중개업체를 통한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피해 유형 다양=


하지만 컨설팅 업체만 믿고 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실제 많은 예비부부들이 겉만 번지르르한 업체들의 마케팅에 속아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6개월 전 대전에서 결혼식을 치른 임주혁(28·남)씨는 뷔페 음식이 모자라 일부 하객들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임씨는 "뷔페 음식이 모자라 늦게 식당에 간 하객들이 허술한 식사를 했음에도 업체 측은 식권 값을 그대로 다 받아갔다"며 "가족들도 그냥 얼굴 붉히지 말자며 넘어갔지만, 지금까지도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고 했다.


임 씨의 경우 웨딩컨설팅 업체에서 소개해 준 예식장과 뷔페를 이용했으나 문제가 생기자 컨설팅업체는 책임을 회피하고, 식당측도 평소에 준비하던 물량만큼 준비했다며 누구하나 책임을 지거나 보상을 하지 않았다.


강 모(34·남)씨는 지난 2월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양가 사정으로 급히 예식을 미루게 됐다. 정확한 날짜를 확정짓지 못한 채 일단 예식을 취소하려고 업체 측에 연락을 했더니 계약금뿐만 아니라 예상 매출액(뷔페 식사 등)의 50%를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강씨는 "한 달 전 계약취소로 업체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점은 인정하지만, 위약금을 과다하게 청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소비자원에 접수된 결혼 관련 피해 유형은 다양하다. 계약서에 없는 금액을 추가로 요구하거나 과도한 위약금 물리기와 더불어 수개월 전에 계약을 해지해도 계약금을 환불하지 않거나 계약서에 기재된 사항을 지키지 않는 등 가지가지다. 또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 등과 같이 명확히 피해라고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도 많아 이용자들이 계약 전에 해당 업체를 꼼꼼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예식업계 한 관계자는 "웨딩 중개업체가 우후죽순 난립하고 이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거나, 과도한 위약금 등을 통해 손해를 만회하려고 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화려한 마케팅에 속아 업체를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무자격 업체·웨딩플래너 난립=


웨딩컨설팅업체는 초기 자본이 거의 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진입장벽도 낮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다. 연예인이 웨딩컨설팅 사업을 쉽게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얼굴 마담으로 나서 홍보를 한 뒤 손님을 끌어 모은다.


이들 업체는 말 그대로 중개업이기 때문에 예식장이나 스튜디오, 여행사 등을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따라서 컨설팅업체는 수수료를 많이 주는 업체를 선호할 수밖에 없고, 서비스의 질보다는 수수료 율에 따라 이용객들에게 업체를 추천하고 계약하게 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스튜디오나 웨딩숍 입장에서도 대부분 계약이 컨설팅업체를 통해 성사되기 때문에 최대한 수수료를 많이 챙겨줘야 일거리를 잡을 수 있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 때문에 서비스의 질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청담동의 한 예물업체 직원 박 모 씨는 "중개업체를 통해 들어온 주문은 수수료를 떼어줘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윤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이럴 경우 보석 등급을 낮추거나 세공을 소홀히 하게 되는 등 질 낮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국 떼이는 수수료만큼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셈이다.


웨딩플래너 자격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 웨딩플래너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는 채용 현장에서는 별 필요가 없다. 의무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뛰는 상당수의 웨딩플래너가 비전문가들이다. "젊고 예쁜 여성이면 된다."는 이야기가 만연해 있다.


회사원 문은영(29)씨는 "2년 전 결혼 때 인터넷을 통해 한 웨딩플래너와 상담하면서 친절하다는 느낌에 덜컥 계약을 했는데, 사진 촬영과 드레스 선정 등 중요한 일정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나중에 스튜디오 직원들을 통해 알아보니 근무한 지 3개월도 안 된 초보였다"고 했다.


◆일부 업체에 시정명령 …관행 개선될까=


공정위는 지난 7월 일부 웨딩 관련 업체가 과도한 위약금을 부과해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해당 업체에 관련 규정을 수정 또는 삭제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들 업체는 취소 날짜에 따라 예상 매출액의 최대 100%까지 위약금을 물리기도 했다. 실제 예식계약 관련 한국소비자원 상담건수 중 총 70% 이상이 과도한 위약금 부과로 인한 민원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이 같은 조치는 권고사항 일 뿐 강제성이 없어 상당수의 업체들이 이를 '무시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소규모 업체가 난립하면서 이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것도 문제다. 자금 압박으로 컨설팅업체가 서비스업체에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계약취소 시 소비자에게 과도한 위약금을 물려 자금 압박을 만회하고자 하는 일도 다반사다.


특히 중간에 부도가 날 경우 피해를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안고 있다. 이에 따라 일정 금액 이상의 자본금을 확보한 업체에만 사업허가를 내준다든지, 문제 발생 업체에 삼진아웃제를 두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위약금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중소 업체까지 이를 지킬 수 있도록 강제해야 소비자 피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웨딩플래너도 자격 기준을 높여 교육과정 이수자 중 일정 수준을 통과한 자 등으로 제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삼미 기자 sml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