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3. 22:44ㆍ게시판
고객의 입장에서 커피숍은 커피가 생각날 때 걸어들어가 한 잔 받아들어 나오는 곳이겠다. 혹은 누군가 만날 사람이 있을 때 잠시 마주 앉아 얘길 하기도 한다. 또 시험때 꽉 차있는 도서관에서 빈 자리를 찾아 헤매느니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싶을때 찾아가는 곳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고객을 맞는 입장이 되면 고객으로 오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색다르다. 손님은 왕이고 언제나 옳기 때문에 그들을 흉보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말이다. 가끔 웃음을 참기 힘들때도 있고 가끔 어안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번 "어색한 순간들"에서 몇 가지 경우가 언급되었지만 오늘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기로 한다.
우선 무뚝뚝형이 있다. 옆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카운터로 와서 "Can I get a medium size dark coffee to go... with some room for milk". 영어권에서 의례히 대화를 시작하는 "Hi" 나 "Hello" 도 없다. 더 물어볼 것도 없고, 주문한 대로 계산기를 누르고, 돈을 받고, 커피를 건네주면 그걸로 30초가 될까 말까한 짧은 만남은 끝이 난다. 이런 손님들은 대부분 하루 중 같은 시간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다음엔 허탈 주문형이 있다. 거의 매일 오는 커피숍이지만, 이들은 메뉴부터 디스플레이된 각종 제과류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뜸을 들인다. 그러다가 결심이 섰다는듯 카운터로 다가서서는 "just a regular coffee, please" 라고 한다. 처음엔 마땅한 것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매일 매일 그 메뉴를 공부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피식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또 반복 주문형이 있다. "쟈스민 차하고 베이글 토스트해서, 크림치즈말고 버터하고 주세요" 라고 주문을 한다. 그런데 다음에 와서는 "쟈스민 차하고 베이글 토스트해서 버터하고 주세요, 크림치즈 말고" 이쯤 되면 이 손님은 크림치즈를 좋아하지 않는구나를 기억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5년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토씨도 틀리지 않고 똑같은 주문을 하는 이 손님 - 왠만하면 "Would you like to have your usual?"하면서 그가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도록 배려(?)하고도 싶지만, 그 말을 꼭 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아서 뭘 주문할 지 뻔히 알면서도 그냥 그의 대사가 끝날 때까지 들어주는 예의를 베풀기로 한다.
그에 비해 반복 질문형도 있다. 손자손녀가 있을 법한 여자분인데, 가끔 친구분들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 커피숍에 나타난다. 문제는 이 손님이 항상 우리 커피숍엔 없는 크로와상을 찾는다는 것이다. 신선함이 생명인 크로와상은 초반에 시도해보았지만 우리가게 근처에서는 수요가 많지 않아서 결국 버리게 되어 포기한 아이템이다. 그런 설명도 해 드리고, 죄송하단 말도 하고 했지만, 이 손님은 항상 같은 질문을 하고, 없다는 우리의 대답을 항상 놀랍다는 듯이 반응하며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다른 것을 주문하는 것도 항상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크로와상이 없다는 것을 알면 다른 곳을 갈 수도 있겠건만, 그것도 아니고 몇 년동안을 줄곧 와서는 같은 것을 묻는 손님. 또 어떤 손님은 우리에겐 없는 것을 자주 물어옴으로써 우리에게 무언의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되도록이면 고객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반영하고자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도저히 비지니스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무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막무가내 수다형도 있다. 바로 뒤에 대여섯명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데도 어제밤에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커피숍에 오는 이유가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기 때문일거다. 별로 바쁘지 않을 때는 흥미로운 대화가 될 수 있지만, 마음은 바쁜데 그렇다고 무례하게 손님의 말을 끊을 수는 없고 곤란한 경우이다. 어떤 경우에는 뒤에 줄 선 사람들을 붙잡고 수다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던 별로 관심이 없고 자신의 얘기가 마냥 계속 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엿듣기형은 커피숍 한 구석에 앉아있다가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엿듣는다. 엿듣고 있었다는 것은 갑자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떨 때는 커피숍 직원들이 하는 얘기도 엿듣고 끼어드는 경우도 있어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 ^
친밀 과시형도 있다. 일단 커피숍에 들어서면 주문도 하기 전에 주인이 있나부터 살핀다. 커피숍 주인과의 친밀한 대화로 직원들은 물론 커피숍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식단 과민형도 자주 보인다. 우리 커피숍이 있는 지역은 유난히 채식주의자들, 각종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많고 건강한 식단에 관심이 지대한 동네이다. 한 예를 들면, 샌드위치를 만드는 빵도 하얀색 빵은 아예 갖다놓질 않는다. 왜냐면 모두 multigrain이 섞인 브라운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메뉴를 훑어보면서 vegetarian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서는 vegan을 위한 것은 있는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참고로 vegan은 육류는 물론이고, 유제품, 계란까지 금식하는 채식주의보다 더욱 철저한 식사요법이다. 커피숍 메뉴에서 버터를 포함한 유제품과 계란을 빼면 남는 것은 별로 없다. 뻔히 보이는 데도 'vegan을 위한 것이 있느냐' 고 물어오면 곤란하다. 게다가 알레르기라도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판매를 안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내가 땅콩에 알레르기가 있는 데 땅콩이 전혀 없는 것이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재료에는 땅콩이 없지만 내가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한 톨도 없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되려 발을 빼고 싶어진다. 또 5불짜리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고서 "토마토는 빼고 대신 아보카도, 마요네즈는 빼고 버터는 듬뿍, 상추와 피망도 넣고, 소금은 싫고 후추는 약간, 체다 치즈말고 스위스 치즈"등등 마치 레스토랑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하듯이 세세한 지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더 나을 듯~
가끔 슬픈 경우도 있다. 사람 좋아보이는 팔순 노인이 와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는데 싸달라고 하는 거다. 앉아서 드시고 가라고 하니 '우리 아들이 미국에서 곧 전화를 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대답을 한다.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노인은 '어제 우리 아들이 너무 바빠서 전화를 못했지만 오늘은 꼭 할 거야'면서 샌드위치를 한손에 들고 발걸음을 총총히 집으로 향한다. 마음이 안 좋아서 모르는 척 특별히 듬뿍 담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그의 손에 쥐어주기를 몇 주, 어느 날 그는 더이상 오질 않았다. 어쩐지 슬픈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래도 그가 그의 아들을 결국 만났기를 바랬던 기억이 있다.
외로운 사람들도 많이 본다. 한번은 캐나다 동부 몬트리올에서 30년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 밴쿠버로 옮긴 50대후반의 여자분이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 최소한 세번씩 커피숍에 나타났는데,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다가 가곤 했지만, 그녀의 분위기가 너무나 고독하고 깊은 슬픔에 잠긴 것이 커피숍 전체가 무거운 회색같아져서 어떤 날은 그녀가 오지 않았으면 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일자리를 잡았고 그의 아들의 가족이 그녀 곁에 살기 위해서 몬트리올에서 밴쿠버로 이주해왔고, 그 이후로 우리는 바빠진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약 반년이 지난 후 우리 커피숍을 다시 찾아온 그녀는 너무나 밝은 모습이어서 생판 다른 사람같아 보였다. 그녀는 '그 때 너무 힘들었는데 이곳 커피숍에 와서 많이 위로를 받았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커피숍 사람들 이야기... 다음 기회에 더 이어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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