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배와(坯窩) 김상숙(金相肅)*이 나에게 말했다. “그대가 일본에 갈 때 큰 바람이 불어 타고 가던 배의 돛대가 꺾이자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사색이 되었는데 그대만 선실 문을 닫고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잠을 잤다고 들었네. 그대는 무슨 수로 그렇게 할 수 있었나?”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공은 제가 심성을 수양하여 마음을 안정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때는 생사가 배 한 척에 달려 있었을 뿐입니다. 만일 배에 도움이 된다면 제가 정말 누구보다 먼저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움될 게 없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구경거리가 있었다면 다른 사람을 따라 나와서 구경을 했을 테지요. 그렇지만 하늘과 물이 맞닿고 바람과 파도가 서로 요동을 치는데 배 위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문을 닫고 자느니만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잘 알았을 뿐입니다. 제가 잠을 잔 것은 그때만이 아닙니다. 사행에서 돌아오다가 오사카에 이르렀을 때 최천종(崔天宗)**이라는 사람이 왜놈의 칼에 찔리자 일행이 겁을 내며 동요하여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구설수에 낄까 두려워 병풍을 둘러치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밥때가 되면 나와서 밥을 먹고 밥을 다 먹으면 다시 들어가 잤지요. 30일을 그렇게 하다가 옥사가 끝난 뒤에야 나오니 일행은 저를 그저 잠만 자는 사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제야 희이(希夷)***가 1000일 동안 잠을 잔 것이 바로 세상을 피하여 숨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배와도 웃었다.
* 배와(坯窩) 김상숙(金相肅): 1717~1792. 자는 계윤(季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명릉 참봉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천성이 바르고 출세보다는 내면의 득도에 관심이 깊었다고 한다. **최천종(崔天宗): 성대중이 서장관으로 일본에 갔을 때 사행의 도훈도(都訓導)였는데 오사카에서 왜인에게 살해되었다. *** 희이(希夷): 송나라의 도사(道士) 진단(陳摶). 희이는 송 태종이 내려준 호이다. 벼슬을 단념하고 수련을 하였는데, 한번 잠을 자면 1000일 동안 잤다고 한다. [원문]
金坯窩謂余曰: “聞君入日本時, 大風發船, 檣摧桅拉, 舟中皆無人色, 而君獨閉蓬戶, 睡若無事, 君何術而能此?” 余笑曰: “公以我爲有定力耶? 是行也, 生死爭一船耳. 苟益於船, 我固先衆而憂矣, 顧無益, 故不爲也. 如有可觀, 固亦從衆出也, 天水相接, 風浪相拍, 船上安所觀哉? 故不如閉戶睡爾. 我能解此而已. 然我之能睡, 不獨此也. 使還至大坂, 崔天宗被刺於倭, 一行恇撓, 唇舌百端. 吾恐其與也, 乃以屛風圍可函席, 入睡其中, 飯至則出食, 已復入睡. 三十日而獄完乃出, 一行但笑我渴睡而已, 乃知希夷千日之睡, 直爲避世方也.” 坯窩亦笑. - 성대중(成大中, 1732~1812),『청성잡기(靑城雜記)』 권3 「성언(醒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