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7. 09:19ㆍ 인물열전
승정원일기
고종 22년 을유(1885, 광서11)
7월 26일(임술) 맑음
좌목 22-07-26[16]
임오 식년 감시 초시에 합격한 이병오 등에게 이번 증광 감시 복시에 응시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청하는 예조의 계
○ 또 예조의 말로 아뢰기를,
“대과(大科)와 소과(小科)의 진시인(陳試人)(주1)은 초기하여 응시를 허락하는 것이 정식입니다. 임오 식년(壬午式年) 감시 초시에 입격한 유학 이병오(李炳五), 같은 해 공도회(公都會) 초시에 입격한 유학 최상규(崔庠奎)ㆍ이하식(李夏植), 계미년 합제(合製) 초시에 입격한 유학 정규달(丁奎達), 을유 식년 감시 초시에 입격한 유학 예문해호(芮文海浩)ㆍ황호연(黃浩淵)ㆍ이경렬(李璥烈)ㆍ전홍상(全泓庠)ㆍ안성탁(安性柝)이 모두 당시에 진시하였으므로 그들이 받은 공문을 취해 살펴보니 명백하여 의심할 만한 점이 없었으며, 상중(喪中)이거나 부자가 함께 응시한 경우도 진시를 허락하도록 법전에 실려 있으니, 모두 이번 증광 감시 복시에 응시를 허락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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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8년 신묘(1891, 광서17)
9월 12일(계유) 맑음
좌목 28-09-12[09]
을유 식년 감시 초시에 입격한 유학 강홍보 등을 이번 식년 감시 복시에 응시하게 할 것을 청하는 예조의 계
○ 또 예조의 말로 아뢰기를,
“대소과(大小科)에 진시(陳試)한 사람에 대해서는 초기(草記)하여 응시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한 정식이 있습니다. 을유 식년(乙酉式年) 감시(監試) 초시(初試)에 입격한 유학 강홍보(姜弘輔), 동년 증광 감시(增廣監試) 초시에 입격한 유학 김석구(金錫九), 무자 식년(戊子式年) 감시 초시에 입격한 유학 정명한(鄭命澣), 동년 3월 응제(應製)에 감시 초시 방목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김봉석(金鳳錫), 동년 8월 제술로 강을 대신한 과거에 감시 초시 방목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한정식(韓廷植)ㆍ정범화(鄭範和), 동년 12월 응제에 감시 초시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인동식(印東植), 승보시(陞補試) 초시에 입격한 유학 홍사규(洪思圭), 기축년 2월 응제에 감시 초시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윤하영(尹夏榮)ㆍ김용익(金龍翼)ㆍ정인악(鄭寅岳), 동년 3월 응제에 감시 초시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한정하(韓鼎河), 동년 4월 응제에 감시 초시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이제용(李濟用), 동년 5월 응제에 감시 초시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이익순(李翼淳), 동년 10월 응제에 감시 초시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이건호(李建鎬), 동년 11월 응제에 감시 초시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육용기(陸用琦), 승보시 초시에 입격한 유학 김학현(金學鉉), 공도회(公都會) 초시에 입격한 유학 윤신구(尹臣求), 경인년 2월 응제에 감시 초시에 붙여 주어 입격한 유학 윤병석(尹秉奭)ㆍ한상무(韓相武), 승보시 초시에 입격한 유학 전군형(全君亨), 공도회 초시에 입격한 유학 조인원(趙麟元)ㆍ서병규(徐丙奎)ㆍ송영회(宋榮晦)ㆍ조일원(趙一元)ㆍ조응규(趙應奎), 신묘년 증광감시(주2) 초시에 입격한 유학 조영봉(曺榮鳳)ㆍ김상만(金相萬)ㆍ이원신(李源信)ㆍ민의식(閔義植)ㆍ김재환(金在煥)ㆍ정재성(鄭載性)ㆍ민헌식(閔憲植)ㆍ신춘미(愼春楣)ㆍ정병선(鄭秉善)ㆍ구창서(具昌書)ㆍ전홍상(全泓庠)ㆍ김동만(金東萬)ㆍ조병숙(趙秉淑)ㆍ이정업(李廷澲)ㆍ김동수(金東洙)ㆍ김상수(金祥洙)ㆍ정필우(鄭必祐)ㆍ김창진(金昌珍)ㆍ양재사(楊在泗)ㆍ이경선(李敬善)ㆍ김기태(金泰)ㆍ김봉제(金鳳濟)ㆍ이태응(李台應)ㆍ정석제(鄭奭濟)ㆍ김봉규(金鳳奎)ㆍ장문유(張文有)ㆍ윤태동(尹泰東)ㆍ심양섭(沈亮燮)ㆍ이진용(李晉用)ㆍ민치정(閔致貞)이 모두 진시하였으므로 그 받은 공문을 가져다 살펴보니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하였습니다.
모두 이번 식년 감시 복시에 응시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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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42년 을사(1905, 광무9)
12월 25일(계해, 양력 1월 19일) 맑음
좌목 42-12-25[19]
종2품 이준규 등에게 가자하였다
○ 종2품 이준규(李峻奎)ㆍ홍병덕(洪秉悳)을 가의대부로 올리고, 정3품 박병익(朴炳翌)ㆍ오세필(吳世弼)ㆍ김사묵(金思默)ㆍ이제영(李齊榮)ㆍ김두석(金斗錫)ㆍ강영린(姜永麟)ㆍ김홍국(金弘國)ㆍ김기중(金祺中)ㆍ김낙헌(金洛憲)ㆍ김병욱(金炳旭)ㆍ김하선(金河璿)ㆍ김도선(金道璿)ㆍ채규준(蔡奎駿)ㆍ박남현(朴南鉉)ㆍ조재명(趙載明)ㆍ김영철(金永哲)을 종2품으로 올리고, 종3품 이경호(李京鎬), 5품 김효신(金孝信)ㆍ정인희(鄭寅羲)ㆍ민재호(閔載鎬)ㆍ김용묵(金容默)ㆍ김창현(金彰鉉), 6품 임봉준(任鳳準)ㆍ강응조(姜鷹朝)ㆍ하재용(河在容)ㆍ박원형(朴遠炯)ㆍ염치윤(廉致玧)ㆍ조병휘(曺秉輝)ㆍ나성규(羅聖奎)ㆍ최동필(崔東弼)ㆍ이용구(李龍九)ㆍ최성원(崔星源)ㆍ박승준(朴勝俊)ㆍ심형택(沈亨澤)ㆍ정기봉(鄭基鳳)ㆍ박두병(朴斗秉)ㆍ전홍상(全泓庠)ㆍ신순묵(辛純默)ㆍ노백린(盧伯麟)ㆍ박시병(朴是秉)ㆍ이병구(李秉九)ㆍ홍사설(洪思說)ㆍ이원룡(李源龍)ㆍ윤석년(尹錫年)ㆍ이겸용(李謙容)ㆍ김동일(金東鎰)ㆍ문창현(文昌鉉)ㆍ조의순(趙宜淳)ㆍ김석배(金錫培)ㆍ최돈오(崔燉五)ㆍ김순제(金淳濟)ㆍ진선섭(秦善燮)ㆍ조경원(趙敬元)ㆍ이범귀(李範龜)ㆍ남궁영(南宮泳)ㆍ양재하(梁在河)ㆍ강한구(姜漢九)ㆍ강돈희(姜敦煕)ㆍ김시준(金時俊)ㆍ전흥윤(全興潤)ㆍ박정래(朴正來)ㆍ김영창(金永昌)ㆍ정문현(鄭汶鉉)ㆍ유봉근(柳鳳根)ㆍ신석로(申錫老)ㆍ한규우(韓圭祐)ㆍ김영훈(金榮薰)ㆍ이정화(李廷和)ㆍ이우범(李祐範)ㆍ노경상(魯景相)ㆍ진승종(陳昇鍾)ㆍ문종엽(文鍾燁)ㆍ권병추(權丙錘)ㆍ박하영(朴夏瑛)ㆍ유장렬(劉章烈)ㆍ최효순(崔孝順)ㆍ오은영(吳殷泳)ㆍ최기찬(崔基燦)ㆍ김홍진(金鴻鎭)ㆍ박정희(朴廷煕)ㆍ곽경순(郭坰順)ㆍ우경명(禹敬命)ㆍ이승현(李升鉉)ㆍ유병률(劉秉律)ㆍ구철현(具哲鉉)ㆍ정우교(鄭禹敎)ㆍ박희용(朴羲用)ㆍ오우영(吳禹泳)ㆍ남상직(南相稷)ㆍ김병일(金秉一)ㆍ신형우(申亨雨)ㆍ이지현(李志賢)ㆍ김형수(金瀅洙)ㆍ김유직(金裕稷)ㆍ김중구(金重九)ㆍ김영수(金英洙)를 정3품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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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진시[ 陳試 ]
유형 제도
시대 조선
성격 과거, 인사, 관리선발제도
정의
초시(初試)에 합격한 자가 사정상 예조에 사유를 적은 진시장(陳試狀)을 제출하고 다음 기회에 회시(會試)를 보는 제도.
내용
조선시대의 과거제는 중국과는 달리 초시에 합격한 자가 회시에 합격하지 못하면 다음에 실시되는 과거에서는 초시부터 다시 시험을 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초시에 합격한 뒤에 기복(朞服) 이상의 상을 당하였거나 부자가 동시에 초시에 합격하였을 경우에는 소거관(所居官)을 통하여 진시장을 예조에 제출하면 다음의 회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년초시 진시인은 식년복시(式年覆試)에, 증광초시(增廣初試) 진시인은 증광복시에 응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식년시와 증광시는 시험과목이 거의 같으므로 숙종대의『수교집요(受敎輯要)』에서는 식년초시 진시인이 증광복시에 응시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영조대의『속대전』에서도 증광초시 진시인이 식년복시에 응시하는 것을 허용하여 서로 통용할 수 있게 하였다. 다만 정시초시(庭試初試) 진시인이 식년시·증광시·별시(別試)에 응시하는 것은 금하였다.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전율통보(典律通補)』
『한국(韓國)의 과거제도(科擧制度)『(이성무, 한국일보사, 1976)
「학제(學制)와 과거제(科擧制)」(조좌호, 『한국사』10, 국사편찬위원회, 1974)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진시 [陳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주2)증광시[ 增廣試 ]
유형 제도
시대 조선
성격 과거, 인사, 관리선발제도
시행일시 1401년(태종 1)
정의
조선시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식년시 이외에 실시된 임시과거.
내용
임시과거시험으로 식년시와 마찬가지로 소과(小科)·문과·무과·잡과 등이 시행되었다.
1401년(태종 1)에 처음으로 실시된 증광시는 본래 임금의 등극을 축하하는 의미로 즉위년 또는 그 이듬해에 실시하던 것이었으나, 선조 때부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실시되었다. 증광시는 식년시와 똑같이 운영되었다.
예컨대, 증광문과의 경우에는 식년문과와 똑같이 초시·복시·전시 등 세 단계의 시험이 있었으며, 그 선발인원도 식년문과와 똑같이 초시에서 240인, 복시·전시에서 33인을 선발하였다.
고시관도 초시·복시·전시를 막론하고 식년문과와 똑같았다. 고시과목은 초시·전시는 식년문과와 같았으나 복시만은 달라 초장(初場)에 부(賦) 1편, 표(表)·전(箋) 가운데 1편, 종장(終場)에 대책(對策)을 시험하여 사서삼경의 강경(講經)이 없었다. →과거
참고문헌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대전회통(大典會通)』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증광시 [增廣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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