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고찰[전엽(全燁)]

2015. 10. 5. 07:38 인물열전




조선왕조실록

명종 21년 병인(1566,가정 45)

119(신해)

 

21-01-19[01] 효성이 지극한 전엽·정문창 등을 포상하다


옥천(沃川) 거주(居住) 생원(生員) 전엽(全燁)

천성이 순근(純謹)하여 사람을 성심으로 대접하고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겼다. 그의 아비인 목사(牧使) 전팽령(全彭齡)이 치사(致仕)한 뒤로 빈궁하여 끼니도 자주 어려워지자, 전엽이 힘을 다해 봉양하여 맛있는 음식을 적극 마련하였고 그 음식이 남으면 반드시 아비가 주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주고자 하였다. 혼정신성(昏定晨省)하여 슬하를 떠나지 않고 항상 옆에서 모시는 것을 임무로 삼았으며, 사환(仕宦)에는 뜻이 없었다. 기유년에 아비의 명령을 어기기 어려워 향시(鄕試)에 장원(壯元)하였으나 관직을 얻는 것에 급급하지 아니하여 회시(會試)에 응시하지 않았으니 이는 혼정신성을 빠뜨릴까 염려해서인 것이다. 평소 오가는 빈객이 그 아비를 방문하면 몸소 반찬을 마련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였고, 병을 간호할 적에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약은 반드시 먼저 맛보았으며 옷에는 띠를 풀지 않았다.

대고(大故)를 당하여서는 치상(治喪) 절차를 일체 가례(家禮)를 따랐고, ()을 마친 뒤에도 출고 반면(出告反面)을 일체 평소와 같이 하였다. 계모(繼母)를 섬기는 데 한결같이 지성(至誠)으로 하였고 족친 중에 빈궁하여 오갈 데 없는 이를 가엾게 여기어 구제해 주곤 하였다. 5촌질되는 사람의 부처(夫妻)10년 가까이 데리고 있었는가 하면 전토(田土)까지 넉넉히 주어 생계를 개척하게 하였고, 또 조카 두 사람이 몹시 빈궁하자 전토를 주어 경작하게 하였으므로 향당(鄕黨)이 그 효우를 일컫고 여리가 그 행의에 탄복하였다.

에게 문려(門閭)에 정표를 하고 벼슬로 포상하였다.


은율(殷栗) 거주 정문창(鄭文昌)

천성이 본시 화순(和順)하였다. 어렸을 때 그 조부의 상을 만나 백일이 지난 뒤에 그 아비 정식(鄭軾)이 이르기를 복제(服制)에는 각기 등급이 있는 법이니 너는 그만 육물(肉物)을 먹도록 하라.’ 하자, 정문창이 울면서 아버님이 상중에 계시는데, 제가 자식으로서 어찌 차마 육물을 먹겠습니까.’ 하고 심상 삼년을 지나 그 아비와 함께 탈상하였다. 그 조모 유씨(柳氏)가 죽어서도 먼저와 같이 하였다. 양 대왕(兩大王)이 승하(昇遐)하였을 때 그 아비 정식이 이르기를 백성은 군((()에 대해서 이를 하나같이 섬겨야 하므로, 임금의 상()에 삼가지 않을 수 없다.’ 하자, 아비와 함께 심상 삼년을 마쳤다. 아비가 병이 들자 밤낮 없이 시측(侍側)하여 잠시도 띠를 풀지 않았고, 아비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 있으면 두루 마련하여 그 입맛을 맞추었다. 병이 위독해져서는 두 차례나 대변을 맛보아 그 생사(生死)를 시험하였고, 상을 만나서는 치상 절차를 일체 예문에 따랐으며 아침 저녁으로 곡전을 하며 일체 웃는 예가 없었다. 복을 마친 뒤에도 매년 기월(忌月)을 만나면 백의(白衣)와 마승대(麻繩帶)를 하였고 주육(酒肉)을 먹지 않았다. 그 아비 정식이 충효 겸전(兼全)으로 복호(復戶)되었고, 조부 정철형(鄭鐵衡)도 뛰어난 효행으로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정철형의 딸 정씨(鄭氏)도 절부(節婦)로 정문이 내려졌다. 한 가문에서 여러 세대에 효의가 계속 배출되었다.


정주(定州) 거주 내수사 노(內需司奴) 학룡(鶴龍)

나이 겨우 9세에 그 어미가 광병을 얻어 날마다 발작하였다. 학룡이, 그 병에는 그 자식의 무명지(無名指)를 가져야만 효험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웃에 사는 동료 종을 찾아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달라고 하였다. 그 종이 의심내고 두려워하여 누차 들어 주지 않았다. 학룡이 울면서 애걸하자 그 종이 비로소 손가락을 자랐으나 본시 겁을 먹은 터이라 완전히 절단시키지 못하였다. 이에 조금도 놀라지 않고 손수 재차 절단하여 그 어미에게 드렸는데 어미의 병이 영원히 나아 지금까지 생존해 있으니, 그 성효(誠孝)의 지정(至情)이 천성(天性)에서 나왔다.은 정문을 내리고,


배천(白川) 거주 사노(私奴) 송이(宋伊)

그 어미가 악질(惡疾)을 얻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주입시켜 어미의 병이 영원히 나았다. 평소에도 어미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서부(西部) 거주 덕인부정 이용수(德人副正李龍壽)

기미년에 그 어미가 위독한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약에 넣어 드렸는데, 어미의 병이 즉시 나았고, 경신년에 그 아비가 병들자 또 손가락을 잘랐다. 이용수가 나이 어린 종실(宗室)로 별로 문견(聞見)도 없으면서 두 차례나 손가락을 잘라 약에 넣어 드렸으니 성효가 더욱 독실하다.


서부(西部) 거주 사비(私婢) 춘이(春伊)

천성이 본시 지효(至孝)로와, 그 어미가 죽자 거상(居喪)과 애통(哀痛)을 예문대로 다하였고 상()을 마친 지 얼마 안 되어 그 아비가 갑자기 중한 병을 얻어 다시 깨어나지 않으므로, 춘이가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약에 넣어 드렸는데 아비의 병이 즉시 나았다.


강음(江陰) 거주 양녀(良女) 지복(之卜)

그 어미가 열병을 얻어 의식을 잃어 버리자 지복이 스스로 작도를 가져다 왼쪽 무명지를 잘라 불에 태워 약에 넣어 마시게 하여 다시 소생시켰다.


 교하(交河) 거주 유학(幼學) 홍백령(洪百齡)의 딸 홍씨(洪氏)

천성이 본시 지효로와, 그 어미가 현훈증(眩暈症)을 얻어 의식을 잃어 버리므로, 홍씨가 손가락을 잘라 약에 넣어 드려, 마침내 효험을 보았다.는 복호하였다.


원전21 60

분류*윤리(倫理)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