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문신 동계(桐溪) 정온(鄭蘊)은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다 겪은 선비입니다. 남명 조식의 학맥을 이은 동계는 유학의 가르침에 따라 올곧게 살려고 노력하여 충절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이 시를 언제 지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시가 참 아기자기합니다. 어찌 보면 어린아이 때 지은 동시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파란 많은 세월을 다 겪고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깊이 성찰한 시기에 지은 철학시 같기도 합니다.
70세(1638년) 때인 정축년 봄, 병자호란을 겪으며 지친 그는 여생을 초야에 숨어서 지내리라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덕유산(德裕山) 남쪽 골짜기인 ‘모리(某里)’로 들어갑니다. 모리는 예전 사람이 이곳에 어울리는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해 결국 이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골짜기가 깊지도 않고 산이 높지도 않아 밖에서 보면 골짜기가 있는 줄도 모를 정도인 곳입니다. 지대가 평평하지만 아래에서 보면 평평한 줄을 모르고, 볼만한 경치도 뚜렷한 방위(方位)도 말할 수 없어 그저 ‘어떤 마을’이라는 뜻의 ‘모리’라는 이름을 얻은 곳. 이 시는 혹 이곳 ‘모리’에서 지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초승달을 보고 묻습니다. 오기를 어디에서 왔느냐고. 지면 어디로 가느냐고. 그리고 가녀린 모습으로도 제 빛이 필요한 곳이면 구석진 곳까지 두루두루 빛을 전하는 것을 보고 흐뭇해합니다.
달은 날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데, 모양에 따라 보는 사람이 받는 느낌은 다릅니다. 보름달을 볼 때면 마음이 원만해지고 넉넉해지면서 둥근달처럼 모든 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초승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게 되지는 않는 듯합니다. 어쩌면 기도할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그 고운 모습에 매료되어 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낚싯바늘 같은 모양새를 하고 가만히 하늘 한 편에 있다가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이른 새벽 일터로 나가는 이의 눈길을 한 번에 낚아채곤 하니까요.
어울리는 계절과 자리도 조금씩은 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보름달 하면 가을밤 하늘 중천에 휘영청 떠 있는 것이 떠오른다면, 초승달은 잎새를 다 떨군 겨울 나뭇가지 사이나 중천에서 비스듬히 기운 자리에 걸린 듯이 누워 있는 것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달은 달이라 초승달 또한 마음에 빛을 보내는 것은 다 같습니다. 덜어낼 것을 다 덜어낸 후 아직도 세상에 웃을 일은 많이 남았다는 듯 실눈을 뜨고 웃는 모습은 보름달만큼이나 여유롭습니다.
처음 생겨난 것은 풀이건, 동물이건, 사람이건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시인이 본 그 초승달이 오늘 저의 마음을 간지럽힙니다. 보름달이 기울기가 무섭게 초승달이 뜰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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